눈에서 비늘이 떨어져야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05/27 [15:06]

 

▲ 지난 4월 15일실시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현장.     


한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가 흥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완전히 부정선거래. 몇 놈이 사전투표결과를 조작했다는 거야. 3.15부정선거 때문에 4.19 혁명이 일어났는데 이번에도 그런 시위가 일어날 거야.”

 

“어떻게 부정을 했다는 건데?”

 

내가 되물었다.

 

“사전선거에서 컴퓨터의 수치를 조금 조작해서 몇 석 정도 더 늘릴라고 했는데 실수를 해서 왕창 올라가 버린 거지. 내가 통계학을 배웠는데 학문적으로도 증명을 할 수 있어. 엄 변호사는 칼럼도 쓰고 사회적 영향력이 있잖아? 그러니까 가만히 있으면 안 돼. 정말 나쁜 놈들이야.”

 

친구는 이미 바위 같은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는 평범한 치과의사였다. 나는 그의 얘기를 다 들어준 후 말했다.

 

“내가 질문을 하나 할게. 우리는 구경꾼 비슷하지만 선거판에서 출마하는 후보들은 죽기 아니면 살기의 싸움판이잖아? 선거부정이 있었으면 피해자가 가만있겠어? 목숨을 걸고 물어뜯겠지. 그런데 그런 당사자가 아니고 왜 뒷골목에서 치과의사를 하는 사람이 열을 내냐고?”

 

그는 내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일응 수긍이 되는 눈치였다. 그가 잠시 후 이렇게 근거를 제시했다.

 

“이 사람아 이건 통계학적으로 바로 증명이 되는 거야.”

 

“광우병 사태 때도 선동하는 방송은 어쭙잖은 과학을 들이밀었어.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 의혹 때도 의혹을 제기하는 의사들은 의학적 근거를 댔지. 가짜뉴스나 허위를 보면 요즈음은 꼭 전문가라는 소품이 등장하더라구. 자네가 통계학을 얘기하는데 출마하는 당사자들은 예민하게 여론조사를 몇 번씩이나 할 거 아니야? 그런 것도 다 통계학 아닌가?

 

자기네들이 예측한 통계하고 선거결과가 엄청나게 다르다면 가만히 있었을까? 통계학이 어떤 일부만 독점하는 건 아니잖아?”

 

그는 대답이 궁색한 것 같았다. 그가 이렇게 방향을 돌렸다.

 

“우리나라 전자개표기가 문제가 있대. 너무 보안이 허술하다는 거야. 우리나라 전자개표기를 사간 이라크에서도 선거부정이 있었대. 미국에서도 그랬고 유엔은 각국에 한국산 전자개표기를 쓰지 말라고 권고했대.”

 

고정관념이 되어 버린 그의 인식은 변하기 불가능해 보였다. 다음 날 아내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여고 동창생한테서 카톡이 왔는데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철저한 부정선거래. 이런 부정을 보고 침묵하는 건 진정한 우파가 아니라는 거야. 내가 아주 나쁜 사람이 된 기분이야.”

 

진실은 하나다. 그러나 진영으로 나뉘어지고 선동이 판치는 이 사회에서는 항상 진실은 두 개였다. 거짓이 진실이 되기 때문이었다. 거리에 나선 대중의 숫자와 높은 목소리가 진실이었다.

 

광우병 사태 때였다. 백만 명이 모였다는 광장에서는 미국산 소고기만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게 진실이었다. 광장 한 복판에서 젊은이 하나가 “미국산 소고기를 먹어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습니다”라고 외쳤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그 청년을 욕하고 침을 뱉었었다.

 

나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독이 서린 소리들을 믿기가 힘들다. 선거는 수 많은 사람의 눈이 불을 켜고 보고 있다. 입후보자측 사람들의 눈이 가장 예민하다. 그외 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 참관인, 경찰관, 우편 집배원 등 수많은 사람들이 공모를 해야만 부정선거가 가능하다. 그게 가능할까?

 

컴퓨터 프로그램 조작이라고도 의심하는데 선거에 관련해서 컴퓨터 시스템은 계산기에 불과하지 않을까.

 

정확한 사실이 파악되기 전에 편견과 선동으로 흔들리면 안된다. 한쪽에서 피리를 분다고 꼭 춤을 출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진영논리의 시각은 우리 편이면 거짓도 진실로 믿어주고 적 편이면 진실도 거짓으로 매도하는 걸 본다.

 

박원순 시장 아들의 소재지를 알려주면 보상금을 준다는 현상 광고를 붙인 트럭을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본 적이 있다. 시장 아들 병역기피 의혹의 진실을 밝히는 변호사가 되어 당시 연세대 병원에서 공개검진을 한 적이 있다.

 

그날 이백 명 가량의 기자들을 부른 가운데 진행했었다. 최첨단 과학적인 검사를 근거로 대학병원의 여러 명의 교수가 의학적 진실을 그곳에 모인 기자들 앞에서 발표했다.

 

나는 공개검진을 시도한 변호사였고 직접 진실을 봤고 법정에 가서 증언을 했다. 그래도 안믿는 사람들은 지금도 안믿는다. 그들에게는 진실을 보여줄 방법이 없다. 그들은 그날의 공개검진이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려면 연세대학교병원에서 근무하는 여러 명의 의사뿐 아니라 의료기사나 직원 등 수 많은 사람들이 공범이 되어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

 

현실에서 그건 불가능하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거짓에 오염된 세상에서 살아왔다. 거짓에 능한 사람이 정치판에서 당선이 됐다. 거짓과 술수를 잘 쓰는 범죄인과 변호사가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소비자를 잘 속이는 장사꾼이 돈을 버는 사회였다.

 

거짓의 영이 매연같이 이 나라를 뒤덮고 있었다. 거기에 진영논리가 눈에 비늘같이 덮여버렸다. 중증의 불신병은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우리들의 눈에 박혀있는 진영논리의 비늘이 떨어져 나가야 한다. 그리고 개개인의 영혼이 먼저 정직해져야 한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