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 생물학자가 생각하는 생명이란?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 본 인간의 현주소

글|김환기 사진|권순형 | 입력 : 2020/05/27 [15:28]

 

▲ 본지와 열정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분자생물학자 양지연 박사     © 크리스찬리뷰


지난 5월 19일, ‘분자 생물학자’인 양지연 박사와 인터뷰를 했다. 생물학이란 단어도 어색한데 ‘분자’까지 붙어 있으니, 기자에게는 너무 생소한 분야였다.

 

양 박사는 1989년 골드코스트의 그리피스 대학의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호주 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 3D 직종과 같은 위험하고 단순한 작업은 호주 젊은이들이 기피하던 시절이었다. 3교대로 AIDS 감염자의 피를 원심분리기에 돌려 혈장 (Plasma)과 혈청(Platelet)을 분리 후 혈장의 에이즈 바이러스를 추출해 내는 작업이었다. 안전을 위해서 두 겹의 고무장갑과 겉에는 마치 중세 기사들이 끼는 것과 같은 주사바늘 찔림방지장갑을 끼어야만 했다.

 

당시에는 토요일과 주일 야근을 하면 평일의 3배를 받을 수가 있었다. 이틀만 일해도 일주일치 봉급을 받았던 것이다. 매사에 열심히 일하는 그를 눈여겨본 연구소 소장은 그에게 공부할 것을 제안하였다.

 

얼마 후 소장은 ‘호주국립대학’(ANU)에 입학할 수 있는 추천서를 써 주었다. 인생을 살다보면 세 명의 은인을 만난다는,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ANU에서 석사를 마치고 대학교 연구원으로 일하던 중, 독일에 갈 기회가 생겼고, 1999년 프랑크푸르트 쾨테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2005년 귀국을 했다. 16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지난 세월만큼이나 많이 변해있었고 낯설기도 했다.

 

가톨릭 의대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중, 호주 대사관에서 편지를 받았다. 호주 영주권자는 5년마다 갱신을 해야 하는데, 3번째 갱신을 위해 서류를 제출하자, 당장 호주로 들어가던지 아니면 영주권을 포기하라는 내용이었다.

 

2011년, 양 박사는 아들레이드 대학교 연구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2016년 큰 아이가 시드니 대학에 입학하고 다음 해 둘째도 맥콰리 대학에 입학하자, 양 박사도 2017년 말 시드니로 삶의 터를 옮기게 되었다.

 

그는 자연과학자이지만 인문학의 냄새가 물신 풍기는 ‘르네상스인’과 같았다. 인터뷰 내내 겸손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 답해 주었다.

 

생물학이란 무엇입니까?

 

생물학이란 말 그대로 살아있는 것들과 그것들의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세포로 되어 있습니다. 세균은 하나의 세포로 살아가는 단세포 생명체이며, 인간은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다세포 생명체입니다.

 

생명이란 정말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원자, 분자, 고분자들이 모여서 생명 현상이 일어납니다. 모든 것은 물질인데 물질이 모여서 생명이 된다는 것은 물질 이상의 플러스 알파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라디오 부속품을 다 모았다고 해서 라디오가 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세포가 모여서 조직이 되고 조직이 모여서 다양한 장기가 되고 장기가 모여서 ‘독립적인 개체’(organism)가 됩니다.

 

‘개체’는 ‘개체군’(population)을 형성하며 주변의 환경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생태계’(ecology)가 됩니다. 즉, 생물학은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생명체의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분자 생물학이란 무엇입니까?

 

생물학은 포괄적인 학문입니다. 학문 발생의 시대적 순서를 보면, 철학에서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순으로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생물학이 다시 세분화되어, 분자 생물학, 유전학 등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분자생물학이란 분자 수준 (단백질, 지질, 핵산 DNA 등)에서 생명 현상을 이해하고 규명하는 학문입니다. 분자생물학의 응용 기술은 진단, 예방, 치료 분야와 노환성 질환, 암, 순환기계 질환, 심장질환 및 대사성 질환 등 난치병들의 근본적인 발생기작과 유전자 치료 등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저는 서로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론은 믿음의 문제이고, 진화론은 검증 가능한 사유체계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되는 이론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인간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교만에 빠져 있었으나, 이제 바이러스의 공포 속에 외롭고 고독한 자가 격리만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하면서, 인간의 현주소를 자각하게 되었다고 느껴집니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지금 많은 사람들이 세균과 바이러스를 혼용하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세균과 바이러스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세균은 하나의 세포로된 생명체이고,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것과 무생물(유기물)의 중간 존재입니다.

 

세균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먹이를 구하고, 배설하고,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며, 분열하고 성장할 수 있으나, 바이러스는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으며 대사작용도 없고, 다른 생명체의 세포를 숙주로 이용하지 않고서는 스스로 자기 복제를 할 수 없습니다.

 

항생제는 세균은 죽이는 화학물질이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데는 별 쓸모가 없지요.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죽었다’ 또는 ‘살았다’ 라는 표현보다는 ‘불활성화된 상태 또는 활성화된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러스는 어떤 종류가 있습니까?

 

▲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 약리독극물학 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의 양지연 박사.     © 양지연

 

제가 대학다닐 때는 바이러스의 종류는 숙주에 따라 분류했습니다. 동물이 숙주이면 동물성 바이러스, 식물이 숙주이면 식물성 바이러스, 세균 숙주이면 세균성 바이러스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바이러스가 가지고 있는 유전물질에 따라 DNA 바이러스, RNA 바이러스 등 8개 정도의 바이러스 그룹으로 나눕니다.

 

     © 양지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COVID-19)는 단일 RNA 가닥(ssRNA, single stranded RNA) 바이러스에 속합니다. 주기적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사스, 신종 바이러스, 메르스, 에볼라, 지카, COVID-19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유령’의 공포 속에서,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엄중한 위기상황은 인간의 물질 만능주의, 도시화, 환경파괴, 세계화의 필연적 산물이라고 생각됩니다.

 

면역체계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선천성 면역체계 (innate immunity)와 예방주사나 병에 걸렸다 나음으로써 후천적으로 갖게된 면역체계(acquired immunity)가 있습니다. 유럽은 오랜 세월 동안 천연두, 홍역, 흑사병 등 바이러스나 세균성 질환이 창궐했고, 여기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예는 이런 질환에 대한 선천성 면역체계를 갖게 되는 가운데 대양의 시대가 열리고 유럽인들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인들은 남미를 침범하면서 아즈텍, 잉카, 마야 문명 등이 멸망했습니다. 사실 총칼에 죽은 원주민보다 바이러스로 죽은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원주민들은 유럽인이 가진 면역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속절없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었습니다.

 

세계 1차 대전은 참호 전쟁이었습니다. 1918년, 습기 찬 참호 속에 ‘스페인 독감’이 창궐하면서 약 4천500만 명이 죽었습니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은 1천500만 명인데, 바이러스로 죽은 사람은 3배가 넘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전쟁은 서둘러 종전하게 됩니다. 당시 조선에서도 ‘무오년 독감’으로 14만 명이 죽었습니다.

 

백신이나 치료제는 언제쯤 나올 것 같습니까?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의 게놈(유전정보)을 보면, 2002년 중국 광둥성에서 발생한 사스나 2012년 중동에서 시작된 메르스와 함께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 그룹에 속합니다.

 

매번 복제될 때마다 돌연변이가 쉽게 일어나는 RNA 바이러스의 특성상 서로 다른 개개인을 감염시킬 때마다 돌연변이가 만들어져 모든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는 백신 개발을 어렵게 만듭니다.

 

현재 특별한 백신과 치료제는 없는 상황이나, 2020년 5월 19일 바이오테크 회사 ‘moderna’가 백신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주식의 폭등을 노린 가짜뉴스가 아니길 바랍니다.

 

이전에 발생했던 다른 종류의 RNA 바이러스인 사스, 메르스가 창궐할 당시, 늦어도 18개월 뒤에는 백신이 개발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재까지도 백신은 개발 단계에 머무르고 있지요. 다만 신종 바이러스 치료제인 테미플루 등이 COVID-19에도 효과가 있는지 가능성을 놓고 세계 각국에서 임상 실험 중입니다.

 

전염병에 등급이 있습니까?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전염병의 등급을 6단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1단계는 동물 사이에 한정된 단계로 사람에게는 안전한 상태입니다. 2단계는 동물 사이에서 전염되다가 소수의 사람들에게도 전염된 상태입니다. 3단계는 사람들 사이에 전염이 증가된 상태입니다. 4단계는 사람들 사이의 전염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하여 세계적 유행병이 발생할 수 있는 초기 단계입니다. 5단계는 최소한 2개국에서 병이 유행, 전염병 대유행이 임박한 상태로 ‘에피데믹’(epidemic)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6단계인 ‘펜데믹’(pandemic)은 전 세계로 전염병이 확산되는 상태입니다. 지금 우리는 6단계 펜데믹 상태입니다. 펜데믹이 선언되면 국가적인 규제장치가 발동되어 이동 제한 및 자가 격리 등 경제 사회 및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의 자유 또한 통제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어떻게 될 것으로 예측합니까?

 

저는 미래학자가 아니라서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렵지만, 이번 사태로 소위 선진국이라고 말하던 나라가 마스크 한 장도 생산 못하는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세계화로 인한 분업화 생산 시스템 한 곳에서만 문제가 생겨도 전체 시스템이 멈추는 현상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아마 세계화 대신 지역주의가 강화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호주도 그동안 원자재를 팔고 완제품을 수입했는데, 이번 사태로 제조업이 활성화될 것을 기대하여 봅니다.

 

사회 문화적으로는 비대면 접촉의 재택근무가 일상화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Normal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New Normal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지금까지 과학 만능주의 속에 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우리는 외롭고 고독한 자가 격리만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당분간은 혼돈 속에서 이런 사회적 기조가 유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요즘 베드로후서 3:10절의 말씀을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 암이란 무엇입니까?

 

‘암은 상처받은 또 하나의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치료가 어렵지요. 현재 암을 치료하는 방법에는 외과적 수술, 화학요법, 방사선, 항암 면역요법 4가지와 이것들의 조합적 적용이 있습니다.

 

4가지 방법에 각각의 문제점이 있는데, 예를 들면 외과적 수술은 암세포가 신체의 다른 부위로 전이 되는 것을 촉진하며, 화학요법은 환자 자신의 면역 시스템을 망가뜨리며, 방사선 치료는 암세포를 죽이지만 주변 정상 세포에 돌연변이를 유발 새로운 발암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암 치료 방법이 공격적이다 보니 더 악화시킬 수도 사망을 촉진할 수도 있습니다. 유방에 암이 있으면 유방암이라고 부르지만, 2백 명의 유방암 환자는 2백 가지 이상의 상이한 발병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암발생 초기에 암을 진단하는 것은 2020년 현재의 의술로도 쉬운 일은 아니며, 보통 암이 발견 되었을 때는 상당히 시간이 경과한 경우가 많지요. 최근 공격적 치료방법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상처받은 나 자신’을 위로하는 방식의 치료방법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 코로나19 사태로 이제 당분간은 “혼돈 속에서 방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양지연 박사.     © 크리스찬리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인류는 과학의 발전으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생명체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게된 것은 사실이지만, 살아있는 것도 아닌 존재인 바이러스 앞에 격리된 채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과학 만능주의적 오만과 미신적 사이비 종교의 위험성을 동시에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 박사는 분자 생물학자로 한양대와 ANU 석사(단백질 구조 결정) 그리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에서 생물정보학 박사학위(암 발생 매카니즘)를 취득했다. 아주대 의대와 가톨릭 의대 등 대학과 연구소에서 암세포를 통해 생명현상을 연구해 왔다. 현재는 시드니에 살면서 식약청 호주 통신원 및 한국, 호주, 독일 바이오업체와의 컨설팅 일을 하고 있다.

 

김환기|본지 영문편집인

권순형|본지 발행인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