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적인, 너무나도 서민적인

시드니 대한민국 총영사관 홍상우 총영사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입력 : 2020/06/29 [14:36]

 

▲   7월/2020 커버 페이지 © 크리스찬리뷰

  

▲ 시드니총영사로 부임한지 일 년을 맞아 홍상우 총영사가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 크리스찬리뷰


시티로 나가는 길은 여전히 한산했다.

 

홍상우 총영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시티 마켓 스트리트(Market St)에 있는 주시드니총영사관을 방문했다.

 

홍 총영사는 지난해 5월 시드니로 부임했다. 기자는 그동안 크고 작은 행사장에서 총영사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총영사를 만나본 분들은 동일하게 느끼겠지만 참 서민적인 사람이다. 기자가 만나본 공직자 가운데 가장 겸손하고 서민적인 분이라고 단정한다. 서민적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더 다른 말을 붙이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그는 꾸밈이 없고 수수하다.

 

그의 말과 행동은 상대방을 의식하고 포장에서 나오는 예의가 아니라 몸에 배어 있는 자연스런 그의 삶의 태도로 느껴진다.

 

쌀집 아저씨

 

오래전 한국에서 유행했던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 프로듀서의 별명이 ‘쌀집 아저씨’였다. 그는 검은 뿔테 안경에 수염도 정리하지 않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연예인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같이 일을 했던 연예인들이 적어도 명색이 PD인데 행색이 꼭 ‘쌀집 아저씨’ 같다고 PD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 주 시드니 대한민국 총영사관 집무실에서 업무 중인 홍상우 총영사.     © 크리스찬리뷰

 

기자도 홍 총영사를 몇 번 만난 후 ‘쌀집 아저씨’같다고 표현하였다(물론 그는 꾀죄죄하지도 수염을 기르지도 않는다). 그 정도로 편안하고 부담감이 없다는 표현이었다. 그랬더니 그는 ‘쌀집 아저씨’도 본인에게는 과분하다고 겸손하게 반응한다.

 

얼마나 편안하고 다가가기에 부담스럽지 않았으면 기자가 총영사에게 감히 ‘쌀집 아저씨’라고 표현했을까? 이것은 총영사의 인간미를 알 수 있게 하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 한국 전쟁의 숨은 영웅 호주 참전 용사 8인의 70년 전 얼굴을 담은 대형 사진들이 6.25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지난 6월 24일부터 시드니 경전철(Sydney Light Rail) 한국전 캠페인을 시작했다. 사진은 지난 6월 24일 오전 8시 중앙역(Central Station)에서 열린 ‘Lest Korea Forget’ 캠페인 미디어 오프닝 행사에서 홍상우 총영사와 한국전 참전용사 이안 크로프트 예비역 해군 제독(오른쪽, 88)이 경전철 앞에서 기념촬영을 가졌다. 시드니 경전철 한국전 캠페인은 7월 26일까지 운행될 예정이다.    ©시드니한국문화원

 

보이지 않는 손길

 

그는 연세대학교 영문학과에 재학 중 카투사(KATUSA)로 군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데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그만 그의 군생활 가운데 돌아가셨다. 그는 원래 교사나 기자 같은 직업을 갖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난 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내무반의 고참들이 행정고시나 외무고시 등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본인도 외무고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 덜컥 붙게 된 것이다(이것은 그의 표현이다).

 

“실은 아버지가 제가 군생활하는 도중 돌아가셨어요. 제가 졸지에 가장이 된 거예요. 그래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일종의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빨리 졸업하고 경제적 안정을 찾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고참들 중 많은 분들이 행정고시나 외무고시 같은 것을 준비하는 거예요. 그리고 고참 중 한 분이 저에게 ‘너도 여기서 뭐라도 공부를 해라’ 해서..., 그래서 저도 단순한 동기에서 외무고시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보았는데 운도 좋게 일찍 붙게 된 것입니다.”

 

그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군생활 중에 보게 된 외무고시가 합격되어 자연스럽게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가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나 소명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길이 열렸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상 외교관이다. 그를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그는 누구와도 가깝게 지내기 쉬운, 편한 사람이다. 그의 소탈한 성품과 몸에 배인 겸손한 인격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그의 나이가 이제 지천명(知天命)을 넘었으니 거의 30년 가까운 외교관의 길을 걸어왔다. 지금껏 여러 나라에서 외교관의 길을 걸어온 것을 더듬어 볼 때 그는 자기 힘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게 아니라고 고백한다.

 

“지금까지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되고 지금 시드니 총영사로 와있기까지의 모든 과정들, 한 30년 가까운 과정이었는데 그런 과정들을 생각해 볼 때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힘으로, 저의 힘으로 이룬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것들을 예전에 깨닫지 못했는데 이제 50이 넘으면서 뒤늦게 철이 들면서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과정이 내가 잘나서 내 능력이나 내 노력가지고 된 게 아니구나!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보이지 않는 손길이 도와주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다. 그렇게 보여집니다.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도움, 예를 들어 어머니의 기도라던가 주변 분들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 시드니총영사로 오기 직전까지 청와대 의전 비서관실에서 선임행정관으로 봉직했던 홍상우 총영사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했다.   ©홍상우     

 

그리고 제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어려운 시기가 있었을 때마다 항상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힘들 때마다 위기 때마다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좋게 말하면 인복이고요. 이렇게 지금까지 보면 지금의 저는 하나에서 열까지 제가 이룬 것이 아니고 다 이룸을 받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게 제 의지로 온 게 아니고 인도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은 시드니로 오게 되는 과정에 있어서도 뭐 공무원들에 있어 인사라는 게 다 그렇지만 제 의지보다도 어떤 보이지 않는 손길의 도움의 힘이 닿았다고 봅니다.”

 

어머니를 비롯하여 동생들 그리고 그의 외가쪽은 신앙이 깊은 분들이 많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가족 중에서 가장 신앙심이 깊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가 표현하는 고백에서조차 그의 겸손함이 묻어나온다.

 

하나님, 주님 등의 기독교적 용어는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그의 고백을 듣고 있노라면 구약의 ‘에스더서’를 읽는 느낌이 든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글자도 등장하지 않지만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사용하여 풍전등화의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 손길’이 등장한다.

 

홍 총영사가 ‘에스더서’를 읽고 설교를 들은 기억이 있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종교적이지 않은 신앙고백을 듣고 있노라니 더욱 보이지 않는 손길(?)의 힘이 가깝게 느껴진다. 

 

▲ 크리스찬리뷰 창간 30주년 기념예배 및 북콘서트에서 축사하는 홍상우 총영사 (2020. 2)     © 크리스찬리뷰

 

▲ 브리즈번에서 열린 한국-퀸즐랜드(QLD)주 비지니스 포럼에 참석한 홍상우 총영사 (2019. 9)   ©시드니총영사관    

 

권위 없이 권위를

 

그는 시드니 총영사로 오기 직전까지 청와대 의전 비서관실에서 선임행정관으로 봉직했다. 그는 전문 외교관료였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국정기획 자문위원회 외교분과의 전문위원으로 문재인 정권 인수위원회에 파견되어 근무하게 되었다.

 

그 인연으로 청와대 의전 비서관실로 옮겨져 근무하게 되었다. 그는 청와대 의전 비서관실에서 약 2년 동안 근무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제가 의전 비서관실에서는 선임행정관으로 약 2년여간 일을 했었고 떠나기 전 약 4개월은 의전비서관 직무대행을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참 의미있고 보람있는 시기이기도 했었고, 또 한편으로는 참 버겁고 힘겨운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능력, 역량의 부족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덕분에 문 대통령을 가까이서 뵐 수 있었는데 굉장히 신실하시고, 국민에 대한 애정, 그리고 사명감 그리고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감명 깊게 봤었습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는 굉장히 엄격하시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따뜻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적인 면모도 많으시고, 제가 옆에서 뵈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문 대통령은 권위의식하고는 거리가 먼 분이었습니다. 그 소탈함, 그러면서도 항상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에 도전을 많이 받았습니다.”

 

홍 총영사도 권위의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에게서 어떤 권위의식도 찾아볼 수 없다. 기자가 그를 몇 번 만난 후 가깝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가 총영사임에도 불구하고 관료주의에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함이었다. 얼마나 편했으면 ‘쌀집 아저씨’라고 불렀을까? 진정한 권위는 스스로 세운다고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인격과 품성에 감동되면 상대방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일어 그 권위를 인정하게 된다.

 

▲ 한국전 캠페인 시드니 경전철 미디어 오프닝 행사에서 인사하는 홍상우 총영사 (2020.6)   ©시드니한국문화원     

 

▲ 개성공업지구 김진향 이사장 초청 강연회에서 축사를 전하는 홍상우 총영사(2002. 2)     © 크리스찬리뷰

 

외규장각 의궤 반환

 

그는 93년부터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주 프랑스 2등 서기관, 주 라오스 1등 서기관, 경수로 사업지원 기획단 국제 협력과장, 주 노르웨이 참사관, 외무부 서유럽과장, 주 독일 공사 참사관, 국정기획 자문위원회 외교분과 전문위원, 대통령 비서실 의전 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거쳤다.

 

그가 2010년 외무부 서유럽과장으로 있었을 때 일이다. 154년 전인 병인양요(1866)때 프랑스 함대에 의해 강탈되어 갔던 외규장각 도서를 프랑스로부터 반환 받는 일을 감당했었다.

 

모두 알고 있듯이,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공격했다. 이때 강화도 외규장각이 소실되고 그곳에 보관되어 있던 많은 도서들이 방화되었다. 그리고 도서 일부는 프랑스 군대에 의해 약탈되어 갔다. 약탈해간 ‘의궤: 의식의 궤범 -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행사 내용을 정리한 기록물’ 297권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것을 지난 2011년 5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반환받았다. 그때 홍 총영사는 외무부의 서유럽과장으로 있으면서 실무적으로 협상과 일을 처리했다.

 

“외교관으로서 인상 깊고 가장 보람 있었던 부분은 제가 본부에서 서유럽 과장을 담당할 때였어요. 2011년 프랑스에서 외규장각 도서들을 반환 받아들여온 거예요. 그 당시 실무적으로 프랑스와의 협상이 아주 지난했어요. 마지막 들여오기까지 굉장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때 과정이 기술적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굉장히 힘든 협상의 과정이었습니다.

 

프랑스내 반발도 심하였고 마지막까지 얼마나 양국간 신경전과 애로사항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다행히 일이 잘 진행되어 외규장각 의궤 도서들이 반환되어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 145년 만에 고국품으로 돌아온 외규장각 도서. 외규장각은 1782년 조선 정조가 왕실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강화도에 세운 국가도서관으로, 의궤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함에 의해 약탈되었다.  


사실 외규장각 의궤 반환 건은 정말 아주 오랜기간동안 한-불 정상 차원을 비롯해서 양국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성과입니다. 저는 이미 거의 다 이루어진 상태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맡았습니다. 당시 특히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에서 협상 최선봉에서 제일 큰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그는 당시의 지난하고 힘들었던 기억을 회상하듯 잠시 템포를 늦춰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골몰히 생각하는 그의 표정을 보며 당시 협상의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이 된다.

 

그때 얼마나 애가 탔으면 “마지막까지” “마지막까지”를 연거푸 이야기할까? 다행히 외교협상이 잘 성사되어 강탈되었던 외규장각 문서들이 대한민국으로 반환되었다. 외교가 이루어 낸 쾌거였다.

 

잃어버렸던 외규장각 도서들이 무사히 한국으로 잘 반환된 것은 국가적인 경사이다. 그런데 이 일을 실무적으로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일이 잘 성사되었으니 개인적으로도 영예로운 일이 되었을 것이다.

 

총영사관이 하는 일

 

홍 총영사는 2019년 5월 시드니 총영사로 발령받아 부임, 교민사회의 여러 행사에 방문해서 교민들을 격려하고 위로했다. 그는 큰 행사뿐만이 아니라 교민들의 작은 모임에도 관심을 갖고 찾아 주었다. 덕분에 기자도 총영사를 교민 모임에서 몇 차례 마주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총영사관의 업무는 재외국민 보호가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볼 수 있다. 외국에서 자국민이 범죄에 휘말리게 된다는지 혹은 경찰서로 연행이 될 경우 또는 사고를 겪게 될 경우와 같이 위험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자국민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통 알고 있다시피 비자발급부터, 여권 혹은 각종 증명서 발급과 같은 재외국민들을 위한 행정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영사관의 일차적인 업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때도 총영사관이 발벗고 나서서 자국민을 보호하고 도움을 준 일이 많이 있었다.

 

“최근에 파푸아 뉴기니 근처에서 원양어선 선원들이 타고 있었던 한국선박이 침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게 한 달 정도 밖에 안됐어요. 다행히 그분들이 배가 침몰되기 전에 전원 구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파푸아뉴기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면 의료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분들이 빨리 한국으로 귀국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주 호주 대사관과 저희 총영사관이 나서서 그분들이 브리즈번을 통해 전원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도록 도와 드렸습니다. 알다시피 이때가 코로나 사태가 심각했을 때여서 항공편이 어려울 때였습니다. 그래도 호주정부와 상의해서 예외적인 인도적인 지원 등의 규례들을 통해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수의 워킹홀리데이 청년들과 유학생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원하는 청년들도 비행기 수급이 원할하지 않아 돌아갈 수 없었다. 이때 홍 총영사는 항공사에 도움을 요청하여 무려 8천여 명이나 되는 청년들을 고국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워킹홀리데이 청년들의 생존을 위해 시드니 한인회, 각 지역 상우회, 한인의사협회 등과 협조하여 청년들을 도왔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새로 발생한 업무는 세 가지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첫째는 코로나19 감염 의심이 되는 분들을 상담하고 의료지원을 하는 일을 했습니다. 워홀러들이고 유학생들은 저희가 지원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상담하고 병원을 소개해 주고, 호주정부와 긴밀히 연락하면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다행히 확진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취약 계층들, 주로 워홀러나 유학생들이죠. 이 분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했었습니다. 한인회나 여러 상우회들과 연계하여 스트라스필드, 리드컴, 이스트우드 등 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도시락이든지 코로나 관련 여러 정보들을 제공해서 취약계층을 지원했습니다.

 

세 번째는 재외국민 귀국 지원이죠. 고국으로 돌아가기 원하는 청년들이 많았는데 아시다시피 항공편이 다 막혀 있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지점장들에게 공문도 보내고 지원을 부탁드려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항공사에서도 도와주셨지만 사실 여기 사시는 동포 여행사에서도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분들이 수요도 파악해 주시고 항공사와 계약도 해주셨습니다.”

 

▲ 홍상우 총영사는 마가렛 비즐리호주 NSW 주총독을 부임 인사차 예방하고 한-호주 협력관계 강화, 한인 동포사회 발전 및 한반도 정세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2019. 6)   ©시드니총영사관     

 

위기가 진가를 보여준다

 

그는 이번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한인 동포사회가 안정감이 있고 정감이 넘치는 따뜻한 커뮤니티라고 칭찬한다. 사실 이번 코로나 사태 때 여러 곳의 한인 커뮤니티에서 워홀러들과 유학생들을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서 주었다. 한인청년들이 많이 거주하는 시티, 스트라스필드, 리드컴, 이스트우드에서는 지속적으로 도시락과 여러 생필품들을 지원했다.

 

도움을 받은 워킹 홀리데이 청년들과 유학생들이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를 여러 통로를 통해 전해 들었다.

 

홍 총영사 역시 외교관으로 여러 나라들을 다녀 보았지만 자신이 보기에 호주 한인사회가 가장 안정적으로 보여지고 화합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 곳이라고 추켜 세운다.

 

“제가 시드니에 온지 일 년 밖에 안되었지만 좋은 곳에 좋은 분들이 계시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안정감이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장년층에게는 따뜻한 정감 같은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었고, 중년층이나 청년들은 참으로 유능하고 뛰어난 분들이 참 많다. 그러니까 시드니 동포사회가 어느 동포사회 못지 않은 훌륭한 인적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시드니 동포사회를 보면 학력이 높고 전문직에 계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 균질된 동포사회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시드니 동포사회는 갈등보다는 필연적으로 화합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어느 동포사회를 가더라도 ‘화합’이 단골메뉴인데 시드니 동포사회는 굳이 ‘화합’하자고 외칠 필요 없는 구조적으로 갈등보다는 ‘화합’할 수밖에 없는 동포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총영사관은 동포사회와 같이 갑니다

 

그가 외교관이 된 것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연이 닿았거나 상황이 이끈 단순한 동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외교관 직업은 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외교관의 덕목들을 두루 갖추었다. 지면상 다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생각하는 외교관의 덕목은 열린생각과 따뜻한 마음이었다. 긴박하게 변하는 국제 정세에서 빨리 시대를 파악하고 적응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통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따뜻한 가슴이 필요하다.

 

세계의 평화와 인류 공영이라는 대 주제도 사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공허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 애정을 가지고 있는 따뜻한 사람처럼 보여진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동포사회에 부탁하는 말을 물어보았다.

 

▲ 홍상우 총영사는 본지와 인터뷰를 마친 후 주시드니총영사관 민원실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 크리스찬리뷰

 

“이민 1세대가 짧은 이민 역사에도 불구하고 호주내에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한인 커뮤니티를 정착시켰지만 젊은 세대로 이어지면서 점차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세대들은 고령화되는데 젊은 세대들의 참여가 저조하기 때문인 것이죠. 이는 비단 호주 동포사회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대부분의 동포사회의 거의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호주에도 한인회를 비롯해서 수많은 동포단체들이 있는데, 청년층의 참여는 매우 우수한 인적자원과 잠재력에 비해 매우 저조합니다. 젊은 세대의 참여가 저조한 것은 물론 그분들이 한창 가정과 커리어에 몰두해야 하는 시기적인 요인에 기인한 점이 크겠지만, 근본적으로 기성세대의 활동에 대한 무관심이나 실망에 기인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동포사회에 대한 차세대의 참여 문제는 740만 재외동포사회의 공통적인 과제입니다. 호주 동포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선도적인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시드니 동포사회에는 정말 많은 단체가 구성되어 있는데, 차세대들의 눈에 기성 단체들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지는가에 따라 한인동포사회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단체장들께서는 사실 생업까지 뒤로 젖혀 두면서까지 커뮤니티 활동을 하시고, 상당한 규모의 개인적인 지출까지 감수하시며 희생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들의 평가나 인식은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홍상우 총영사     © 크리스찬리뷰

 

차세대들을 포용하려면 그들의 시각에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한인 단체나 단체장의 가치는 순수하게 봉사와 헌신 그 자체에서 보람을 느낄 때 청년층을 비롯한 미래 세대들로부터 더 큰 신뢰와 존경을 얻을 수 있고, 한인사회의 확장과 결속도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인단체의 역할과 리더쉽에 대해서도 기독교적인 가치에 대한 성찰이 늘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드리고 싶은 말씀은 총영사관은 언제나 동포사회와 같이 갑니다. 절대 위에서 내려다 보지 않을 것입니다.”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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