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에 부르는 신앙의 노래

양병구/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07/27 [16:12]

 

어느 나라나 민족을 막론하고 변곡점을 지나는 큰 일이 있을 때, 그것을 국경일로 제정하고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그 역사적인 의미와 정신을 기념하고 지키려고 한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서도 삼일절(3월 1일), 제헌절(7월 17일), 광복절(8월 15일), 개천절(10월 3일), 그리고 한글날(10월 9일)을 5대 국경일로 제정했다. 그리고 1949년 10월 1일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그 해 10월 20-30일에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새해의 노래, 공무원의 노래를 공모했다. 이렇게 제정된 노래가 정인보 작사, 윤용하 작곡의 광복절 노래이다.

 

광복절 노래

 

광복절 노래는 첫 소절부터 감동적이다. 36년간의 일제 침략과 통치로부터 벗어나 빛을 되찾은 기쁨과 감격을 시인은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라고 노래한다.

 

늘 보아왔던 흙도 일제의 통치 속에 있었던 흙과 광복된 오늘의 흙이 다르다는 감격과 환희의 외침이다. ‘바닷물도 춤을 춘다.’는 시인의 외침은 광복을 되찾은 나라의 기쁨과 감격은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덩실덩실 춤을 추는 바닷물에도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그토록 광복을 그리워하며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던졌던 선열들을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어른님’은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순국선열(殉國先烈)과 이들을 자녀로 둔 부모님들을 뜻하고, ‘벗님’은 해방을 함께 맞이한 동시대의 사람들을 뜻한다.

 

그리고 나라를 잃은 40년의 세월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피 흘린 순국선열들의 뜨거운 피가 엉긴 자취로 표현하면서 그렇게 되찾은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길이길이 지켜’ 나가자고 외치고 있다. 8월은 이렇게 대한민국 광복의 감격과 환희의 외침이 있는 달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대한민국 대법원이 일본 전범기업들을 향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일본정부는 작년 7월 4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그리고 에칭가스)에 대해서 대한민국에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그 동안은 간소하게 진행되었던 이 3개 품목을 한국에 수출하려면 90여 일간 일본정부의 승인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자국의 high technology 핵심 수출품목에 대해서 대한민국으로의 수출을 막았던 일본 경제제재조치에 대해서 우리가 현 시점에서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일련의 제재 조치로 인해서 대한민국 국민들 안에서는 더 이상 일본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맞서 대응하려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No재팬운동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대한민국 기업들 안에서는 그동안 일본 의존도가 높았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입선 다변화라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한민국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협력해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이 판정승을 거둔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 맞는 올해 광복절에 광복절 노래를 부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감회가 남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모세가 지어 부른 노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치고 부르게 하라고 말씀하셨다(신 31:19).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맹세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들이신 후에 그들이 배부르고 등 따시게 되면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게 될 것임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모세는 그날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다.

 

노래, 찬양이라는 히브리어는 ‘바라크’(barak)나 ‘할랄’ (hallal)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신명기 31장 19절에서는 노래라는 말을 ‘쉬르’(shir)라는 말을 사용한다. 바라크(barak)와 할랄(hallal)과는 다르게 ‘쉬르’(shir)라는 말은 ‘기억하여 기록하고 가르치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어서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해도 시간이 지나면 곧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40년 광야생활에서 경험한 구원의 감격과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노래를 지어서 백성들에게 가르쳐 부르게 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인도하셨고,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어떻게 실패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들을 가나안 땅에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을 드러내실 지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게 하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셨다.

 

다윗, 노래를 잘하는 자

 

성경은 다윗을 ‘노래를 잘 하는 자’라고 묘사하고 있다.(삼하 23:1) 다윗은 악기를 잘 다루고 실제로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경에서 다윗을 ‘노래를 잘 하는 자’라고 증언했을 때, 그 말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노래를 더 잘 부르고 악기를 더 잘 연주했다는 뜻이 아니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시 108:1)”라고 노래했다. 다윗은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께 노래를 불렀다. 고난의 순간에도 기쁨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생각했던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서 아름답고 진실한 노래를 불렀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부르신 그 순간부터 언제나 다윗과 함께하셨다.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칠 때도, 골리앗 앞에 섰을 때도, 사울에게 쫓기는 광야와 아둘람 굴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다.

 

고난이 다가올 때 다윗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은혜를 입었을 때는 감사했으며, 죄를 지었을 때는 목숨을 걸고 회개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다윗의 노래가 되었다. 다윗의 노래는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걸어간 그의 삶의 발자취였다.

 

신앙인들,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악기들

 

성도들은 자신의 노래 실력이나 악기 연주 실력과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품에 안겨 하나님의 손에서 켜지는 악기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손에서 편하고 자연스럽게 연주되어질 수 있는 인생으로 훈련되고 다듬어지는 사람을 말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잡혀 있다면서 사실은 자기 스스로가 소리를 내고 연주자가 되려 한다. 자기 스스로 최고의 품질의 악기이고 최고의 가격의 악기이며 최고로 웅장한 연주장에 진열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만이고 교만이다. 최고 품질의 악기 여부는 악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악기를 잡고 있는 연주자의 손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나라는 악기의 품질 탓하지 말자. 비록 볼품없는 악기라 할지라도 주님의 손에 들려지기만 하면 그 악기의 존재 가치는 180도로 달라진다. 최고의 연주자이신 우리 주님의 손에 우리 자신을 맡기자.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질 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연주되는 찬양의 악기가 될 수 있다.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서 맞이하는 광복절에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기쁘시게 사용하실 수 있도록 훈련되고 다듬어지고 깎여져서 주님 품에 안겨 노래 잘하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세워지기를 기도하자. 우리 모두 최고의 연주자이신 하나님의 악기가 되기를 기도하자.

 

주님, 나를 통해 주님의 아름다움을 연주하는 찬양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양병구|골드코스트온누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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