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누구인가? 기독론(基督論) III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07/28 [16:22]

 

이분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기독교의 기원은 유대교와는 달리 예수그리스도에게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의 기독론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베드로의 고백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에서 출발했다. 여기서 예수는 역사적 인물의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신학적 표현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막 8:29)라는 베드로의 고백은 베드로가 어떤 문헌이나 기록을 보고 고백한 내용이 아니다. 예수라는 실재와의 인격적인 만남에 의해 생성된 고백이다.

 

원래 그리스도(Christ)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메시야(Messiah), 다시 말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유대인에게 ‘메시야’(Messiah)-기름 부음 받은 자의 전통적인 의미는 그들을 구원할 자라는 의미이다(물론 왕, 선지자, 제사장을 세울 때 기름을 부어 세웠지만 예수는 신학적으로 이 세 가지 모두에 해당된다).

 

베드로는 또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과 같은 신성을 가진 분’으로 고백하고 있다. 베드로가 경험한 예수는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가 살았던 시대에 예수를 직접 만나고 경험한 사람들의 고백을 통해 예수가 어떤 분이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를 보면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예수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을 볼 수 있다.

 

“권위로 가르치는 이분은 누구인가”(막 1:27)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진 이분은 누구인가”(막 2:7)

“바람과 바다라도 복종하는 이분은 도대체 누구인가?”(막 4:4).

 

예수를 직접 만나고 경험했던 자들은 한결같이 “이분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라는 생각들을 품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이분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의 공통적인 생각속에는 이분은 우리와는 다른 품성을 가진 분이라는 것이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 가운데 구원의 경험을 한 자들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예수를 만난 자들 모두의 공통적인 고백은 “이분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였다.

 

성경외의 기록들

 

사실 1세기 역사에 대해 기록한 문서들이 많지 않지만 우리는 성경외의 다른 증거들을 통해서도 예수에 대한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18권 2장을 보면 본디오 빌라도는 네로가 로마 황제로 있을 당시 발레리우스 그라투스의 후임으로 유대에 부임하게 되 었다.

 

요세푸스는 빌라도의 취임 후 그와 유대인들과의 갈등을 언급한 후에 바로 예수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한편 바로 이때 예수라는 지혜로운 사람- 너무나 신기한 일들을 많이 행했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인간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면- 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쁜 마음으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선생이었다. 그는 수많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그의 곁으로 끌어들였다. 그가 바로 그리스도였다. 빌라도가 유대의 유력인사들의 청에 의해 그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으나 그를 처음부터 사랑했던 자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지자 들이 그에 관해 예언한 대로 삼 일 만에 다시 살아 나서 그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이뿐 아니라 그에 관해서 수많은 놀라운 일들을 예언했었다. 그의 이름을 본 떠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다.

 

이상을 보면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 역사가의 객관적 자료에서도 예수의 실존은 물론 예수의 신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예수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아니지만 AD 1세기경 로마의 역사학자와 행정관리들이 로마황제에게 보낸 기록들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의 신앙을 지키는 모습들을 통해 우리는 초기기독교의 공동체가 얼마나 나사렛 예수를 확신하며 따르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황제 폐하, 확신이 서지 않는 사안들에 대해 폐하에게 문의드립니다. 한 번도 ‘그리스도인 들을 재판해 본적이 없기에, 어떤 행동을 어느 선까지 처벌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

 

그들은 해가 뜨기 전에 특정한 날을 정해 집회를 가지며, "그리스도"를 찬양하기를 마치 신께 찬양 드리듯이 하며, 거짓말, 도둑질, 간통, 약속 파기, 기탁금 횡령 등을 행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며,….

 

-비티니아 총독이었던 플리니(Pliny)가 로마 트라쟌(Trajan) 황제에게 보낸 편지 중-

 

전통적 기독론

 

이외에도 우리는 초기 1세기경의 많은 기록들을 통해 예수를 만난 자들의 감동적인 신앙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복음서의 기록과 바울서신을 통해 볼 수 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의 실존적인 구원 체험을 보여주는 기록이고 또한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목적으로 쓰여진 기록이다.

 

그래서 초대교회 공동체는 예수그리스도를 실제로 만났던 자들의 증언과 그들의 구전과 전승을 통해 예수에 대한 고백을 신앙 고백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예수에 대해 잘못된 이론들을 전개하는 이단들에 대항해서 초대교회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 규명 (전통적 기독론)도 필요했다.

 

기독교의 출발

 

기독교와 유대교가 믿고 신앙하고 있는 하나님은 같다. 둘다 구약을 믿음과 신앙의 정경으로 인정하고 따르고 있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기독교는 유대교와 다르다. 기독교는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의 대상이요 출발로 삼고 있는 점에서 다르다.

 

사실 기독 (基督)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를 한자로 음역한 단어이다. 기독교(基督敎)는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교’이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것처럼(행 11:26) 그 의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라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예수그리스도’가 빠지거나 무시된다면 기독교의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다면 기독론에 대한 탐구는 분명 기독교를 자리매김하고 기독교를 의미 규정하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교리 임에는 틀림없다. 그도 그럴것이 초대교회 이후 조직화되고 제도화된 고대 기독공동체에서는 예수그리스도가 도대체 누구인가?에 대한 의미를 규정하기 위해 무려 400년 동안이나 논쟁을 해왔다.

 

이 고대 기독론의 주요 논쟁의 요점은 존재론적으로 “예수는 누구였는가?”를 밝히는 것이었다.

 

바로 예수의 존재론적 규정을 어떻게 내리는냐에 따라 정통과 이단이 구별되었다. 유대교나 기독교 모두 구약의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고 섬기지만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강조한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믿고 수용하고 이해하고 해석할 때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에 대한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 이야기되어 질 때 그것은 기독교 신학이라고 일컬어질 수 없는 것이다.<계속>

 

 

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 ACC(호주기독교대학) /AC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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