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과 건국일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올해는 광복 75주년이고, 한국전쟁 70주년이다.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념하여 달링하버의 ‘국제컨벤션센타’(ICC,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re)에서 "1950-53 Australians in the Korean War"란 주제로 8월 6일부터 9월 2일까지 야외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전쟁은 미국을 중심으로 21개국의 유엔군이 한국을 도와주었다. 16개국은 전투병을 파병하였고, 5개국은 의료를 지원해주었다. 호주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참전한 국가이며 1만 7천여 명을 파병하였고, 그중 339명이 전사하고, 1천500여 명이 부상당했다.

 

광복과 분단 75년

 

한반도는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분단이 되었다. 38선은 미국의 제안에 의하여 일본의 무장해제를 위한 지도상에 그은 선이다. 1945년 8월 8일 소련군은 일본에 선전포고 후 파죽지세로 한반도로 밀려오고 있었다.

 

트루먼 미 대통령은 미군이 상륙하기 전에 한반도가 소련의 손에 넘어갈 것을 우려했다. 그는 지도를 꺼내어 한반도의 중심인 북위 38도 선에 줄을 그었다. 트루먼은 “북쪽은 소련이 점령을 하여 일본을 무장해제하고, 남쪽은 미군이 점령하여 무장해제하자’고 제안했다.

 

스탈린은 트루먼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38선 이북을 점령한 후 김일성을 전면에 내세워 북한을 공산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반도의 분위기를 잘 표현한 구호가 있다. “미국 놈 믿지 말고, 소련 놈에 속지 말고, 일본 일어나니, 조선사람 조심하라” 명목상으로는 조선을 위함이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들의 세력을 위한 계획이 있었다.

 

북쪽은 공산주의인 소련이 점령하였고, 남쪽은 미국의 군정이 시작되었다. 한반도는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고, 3년 후 북한은 1948년 9월 9일 공산국가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DPRK,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을 세웠고, 남한은 1948년 8월 15일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ROK, Republic of Korea)을 세웠다.

 

남한 주둔 미군은 1948년 9월부터 철수를 시작해 1949년 6월 철수를 완료했고, 북한 주둔 소련군도 1948년 12월 철수했다. 미군과 소련군은 군사고문단을 남겨 국군과 인민군의 훈련을 계속 담당했다.

 

1950년 1월 5일 미국의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타이완 섬이나 중국 본토에서의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국민당의 내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7일 후 미국의 국무장관 애치슨은 "한국은 미국의 영향권 밖에 있다"라고 했다. 소위 ‘애치슨 라인’을 발표했던 것이다.

 

그 후 6개월이 조금 넘어, 김일성은 침공할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소련과 중국의 지원 하에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4시 탱크를 앞세워 남침을 감행하였다.

 

3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끝나고, 1953년 7월 27일 ‘38선’은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으로 바뀌고, 지금까지 한반도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있다. 세월은 흘러, 75년이 지났지만 허리가 끊긴 한반도는 아직도 아파하고 있다.

 

건국기념일

 

대한민국에서는 건국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4월 11일과 8월 15일이다. 1919년은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날이고,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날이다. 1919년 건국론은 임시정부의 수립이 곧 대한민국의 건국이라는 주장으로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민주공화제 정부 수립과 임시정부 법통을 명시한 현행 헌법 전문에 기인하고 있다.

 

1948년 8월 15일 건국론은 임시정부는 민의를 총체적으로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었으며, 국가의 3요소인 국민, 국토, 주권을 보유하지 않았고 더구나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견해이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대한제국’(1897-1910)에서 연유되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1919-1948)에서 처음으로 썼다.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 수립 과정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성의 계승임을 밝혔고, 이후 헌법에도 임시정부의 법통계승을 명시하였다.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구세군라이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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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8/25 [16:13]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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