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있는 설교자

최주호/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10/26 [15:55]

 

       ©Unsplash     


미국의 유명한 작가인 마크 트웨인에게 물었다

 

“연설문은 길고 대대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좋습니까,아니면 짧고 간결한 것이 좋습니까?”

 

마크 트웨인은 직접적인 대답은 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느 일요일에 나는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어느 선교사가 사람을 감동시키는 어조로 아프리카 선교를 하면서 겪은 고생담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5분 정도 이야기했을 때 나는 곧 그 의미 있는 일에 50달러를 기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가 이어서 10분을 더 이야기하자 나는 그때 기부금을 25달러로 줄여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고 청중들에게 기부금을 요청했을 때 나는 결국 한 푼의 돈도 기부하지 않았습니다.”(나와 세상의 비밀을 푸는 경의로운 심리법칙에서)

 

아무리 좋아도 길고 장황한 설교는 청중이 듣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말에 은사가 있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말해야 하는 지를 더 배워야 훌륭한 설교자가 될 수 있는데 목사가 평생 해야 할 훈련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제자훈련을 하면서 필독 도서로 추천했던 책이 리 스트로벨의 ‘예수 사건’과 ‘믿음 사건’이었다. 지금은 제목이 달라져서 출간되지만 당시 그 책을 처음 보았을 때에 큰 감동을 느꼈다.

 

이유는 시카고 트리뷴지의 기자 출신인 저자가 평소에 기독교인이 느꼈던 그 아리송한 질문들을 기자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필체로 그 문제에 해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 기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베이직 교회의 조정민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20여 년 전에 보았던 예수 사건의 저자인 리 스트로벨이 소환된 이유는 기자 출신이 설교하는 방식이 알게 모르게 비슷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생각난 단어다

 

‘촌철살인’

 

한 마디의 말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그런 의미로써의 말의 무게감을 느꼈다.

도대체 말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조정민 목사의 케이스를 모델 삼아서 몇 가지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았다.

 

목소리

 

아나운서 출신 목사의 스피치는 명쾌하게 들리는 강점이 있다. 분명히 빠른 템포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한마디가 정확하게 들려지는 이유는 아나운서 생활의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가끔 사투리를 구사하는 설교자들을 대할 때마다 어떤 사투리는 구수하게 들리지만 어떤 사투리는 듣다가 그만 듣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부정확한 발음과 불편한 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구수한 사투리 설교를 위해서 부단히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속도

 

내 개인적으로는 1.2~1.5 배속으로 설교를 해야 집중이 잘된다고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난 설교에 속도감이 있어야 듣기가 편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속도보다 더 가속이 붙어 빨라지면 역효과가 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만약 속도가 느린 설교를 하기 원한다면 영적으로 깊이 있는 통찰력과 감칠맛 나는 언어 구사와 명확한 논리가 장착된 설교를 해야 한다.

 

논리

 

모든 설교는 결국 논리 싸움이다. 얼마나 내가 전하는 논리가 듣는 이에게 정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되는가의 문제가 결국 설교를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다.

 

그냥 꿩잡는 게 매라는 식으로 설교하는 많은 설교자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은 바로 설교 전개의 논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논리가 부족한 설교를 하는 이유는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글쓰고 말하는 훈련을 체계적으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실수를 많이 저질렀고 또 저지르고 있는데 어느 한 주제 생각을 몰입하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주제와는 동떨어진 엉뚱한 곁길로 설교가 전개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비논리적인 설교는 청중들의 귀에 소음처럼 들린다.

 

적절한 비유

 

옥한흠 목사가 강의에서 했던 말이다. 전도 설교를 준비하는데 그 설교를 빛내줄 한 방의 예화가 없었다. 그래서 아침까지 사용해야 할 예화 고민을 하다가 아침에 우유에 빵을 드시면서 우유각에 나온 미아 찾아주기 캠페인용 광고를 보게 된다.

 

유레카~

 

그 미아 찾기 광고를 예화로 쓰셨다는 말을 들었다. 목사는 예화 사냥꾼이다. 내가 말하는 예화 사냥꾼이라는 말은 들으면 한방에 날려 버리는 강력한 예화가 아닌 성경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비유나 예화를 찾는 수고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한다. 이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출세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겠다고 하는 간교한 자들의 교훈을 빗대어 말하는 예수님의 비유다.

 

이런 작은 비유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비유들을 사용하신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성도들의 이해를 돕는 비유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성

 

아무리 말을 잘한다고 설교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말주변이 정말 없는 사람도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는 설교를 할 수 있다. 설교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다름 아닌 영성의 덕목이다.

 

설교자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 있는가의 문제가 그 설교자의 설교 퀄러티를 결정한다.

 

사도행전은 성령 행전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초대 교회에 불었던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데 나는 사도행전을 설교행전이라고도 부르고 싶다. 그 이유는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설교들은 성령으로 충만했던 사도들의 설교였기 때문이다.

 

실은 사도들뿐 아니라 집사였던 스테반의 설교도 성령이 역사하는 설교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준다.

결국 영성이 설교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80-90년대 교회에 풍미했던 ‘교회 성장학’에서는 교회를 성장시키는 설교에는 나름의 특징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교회 성장학을 신봉했던 목사들은 교회를 성장시킨 목사들의 설교를 모아서 분석하고 정리하고 짜집기 해서(?) 교회 성장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설교를 만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교회 성장용 설교로 교회를 성장시킨 경우는 없다.(혹시나 내가 모를 수도 있어서 단정은 못하겠지만~)

 

잠시 교회 성장학의 방식을 차용해서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던 교회도 있지만 이런 교회도 결국은 건강하게 부흥하지는 못했다.

 

심지어는 교회 성장학 박사가 야심차게 개척한 교회를 보더라도 그 설교로 대단한 성장을 이루지 못한 것을 보면 인위적인 방식의 교회 부흥은 망상이다.

 

“교회는 영적인 공동체다.”

 

그렇기에 든든하게 세워진 건강한 교회는 영성(?)있는 목회자가 사역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영성 있는 목회자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기도와 말씀으로 영성의 칼을 갈고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겨 그 영혼을 사랑하는 눈물이 있는 목사다.

 

그냥 조정민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것인데 조정민 목사가 설교 때에 하신 말씀으로 마치겠다.

 

“목사 설교 100편 듣는 것보다 예수님 설교 1편 듣는 것이 낫습니다”

 

제발 목사의 조미료 섞인 설교보다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좀 보라는 말인데 나부터 듣고 많이 찔렸다.

 

지난 주일에는 13년 전에 개척했던 현지인 교회가 창립 기념 예배를 드렸는데 교회를 거쳐간 사역자들의 소감을 영상에 담았다

 

세월 참 빠르다.

 

 

최주호|멜번순복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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