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교회와 선교의 적인 교회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10/26 [15:58]

 

개신교에서는 10월의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주일로 지킨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항의 반박문을 붙인 날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모든 사건에는 '직접적 원인'과 '간접적 원인'이 있다. 인연(因緣)은 원인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이다. ‘인’이란 직접적 원인을 의미하고, ‘연’이란 ‘인’를 돕는 간접적 원인을 의미한다.

 

종교개혁의 원인

 

종교개혁의 직접적 원인은 베드로 성당의 건축이다. 무려 100년이 넘게 건축했으니 건축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러한 엄청난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교황청은 면죄부를 발매했던 것이다. 면죄부는 '죄를 용서받는 증서'이다. 자신의 죄뿐 아니라, 연옥에서 고생하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죄까지 용서받을 수 있다고 했다.

 

면죄부를 가장 잘 판 ‘테첼’이란 사람이 있었다. 타고난 수사학자였고, 뛰어난 설교가로서, 그의 설교를 들으면 면죄부를 안 살 수가 없었다.

 

"여러분의 동전이 부모를 구해낼 수 있습니다. 동전이 궤 속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납니다."

 

당시의 교황청은 적폐의 원산지였다. 성직을 매매하기도 하고, 높은 성직을 돈으로 사기도 하고, 비밀 결혼까지도 성행했다. 성직 매매를 시모니즘(simonism)이라고 하는데,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시몬이 은사를 돈 주고 사려는 데서 유래되었다.

 

간접적 원인은 십자군 이후 봉건 사회가 점차 무너지면서 상업의 발달로 농업 경제가 상업 경제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사회구조의 변화가 생겼고, 르네상스로 인하여 유럽의 지적인 생활에 근본적인 중세의 사상적 기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복음주의 (Evangelism)

 

개신교 신학을 '복음주의'(evangelicalism)라고 한다. 복음주의란 용어는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의 핵심사상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복음주의(evangelicalism)는 복음 자체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복음적'이란 말은 한 가지 의미가 아닌,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이단적인 것에 반(反)하여 정통적인 것, 로마 가톨릭 교회적인 것에 반하여 프로테스탄트 교회적인 것, 그리고 자유주의적인 것에 반(反)하여 전통적 또는 보수적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

 

구세군도 복음주의 교단 중에 하나이다. 구세군의 정체성을 요약한 선교 선언문이 있다. "구세군은 복음주의 교단으로 message는 성서를 바탕으로 하고, ministry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mission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차별없이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전도와 선교(Evangelism and Mission)

 

전도를 영어로 ‘evangelism’이라고 한다. 복음주의와 전도는 ‘복음’을 뜻하는 헬라어 ‘유앙겔리온’이란 어원을 같이 하고 있다. 개신교는 복음주의의 사상을 가진 전도하는 교회이다.

 

일반적으로 ‘전도와 선교’를 혼용하여 사용하지만 엄격하게 구분하자면 선교는 전도보다 포괄적인 용어이다. 전도는 불신자의 ‘영혼구원’에 주력하고, 선교는 인간의 ‘전인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최대의 명령’(the great commission)이다. 선교(mission)는 라틴어 동사 mitto(보내다)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사도(apostle)란 단어도 '파견'이란 단어인 '아포스텔로'의 파생어이다.

 

우리는 ‘던져진 존재’에서 예수님을 만나, ‘보내진 존재’가 되었다. 베드로전서 2:9절은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가’를 설명해 주고 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전반부는 우리의 정체성이고, 후반부는 선교의 사명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왜 사느냐?”고 묻거든 “선교하기 해서 산다”고 대답하자. 교회의 DNA는 선교이다. 교회는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 하고, 교인은 모두 선교사이다. 선교적 교회란 선교가 본질적 사명이고, 존재의 목적인 교회이다.

 

교회가 선교적이지 않으면 ‘선교의 적’이 될 수 있다.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구세군라이드교회

▲ 김환기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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