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론(救援論) III
 
주경식/크리스찬리뷰

구원의 서정(Order of Salvation)

 

다시 강조하지만, 일반적으로 조직신학의 구원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객관적인 구원사건을 성령께서 우리 개인에게 주관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론은 소위 구원의 서정 (Order of salvation)이라고 부르는 구원의 순서 또는 단계들을 다룬다.

 

학자들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보통 개혁주의 구원론의 순서로는 부르심(소명)–거듭남(중생)-회개(회심)-믿음(신앙)–칭의-성도의 견인-성화-영화의 순으로 나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 구원의 순서가 시간상의 순서라기보다는 논리적인 순서로 이해해야 한다.

 

안토니 후크마(Anthony A. Hoekema)가 지적한 대로, “구원의 서정에 나타나는 여러 단계들은 전자가 후자를 대치하는 일련의 연속적 단계가 아니라, 그것이 시작된 후에 동시적으로 함께 진행되는 구원 과정의 다양한 측면들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헨리 티슨(Henry C. Thiessen) 역시 회개, 칭의, 중생, 그리스도와의 연합, 입양 등에는 시간적인 순서가 없고 이 모든 사건은 동시에 일어난다고 강조한다.

좀 더 쉽게 풀이하면, 우리의 구원이 소명–중생-회심–신앙–칭의–견인-성화의 시간적인 순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원이 시작된 후에 부르심–중생–회심–신앙–칭의 –견인-성화가 동시적으로 함께 진행되기에 구원의 순서가 논리적인 순서이지 시간적인 순서는 아닌 것이다. 다음은 구원론에 있어 구체적으로 부르심(소명)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부르심(소명, Calling)

 

일반적으로 부르심(소명)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로 표현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객관적 구원사역,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을 우리 인간이 받을 수 있도록 죄인을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를 부르심, 즉 소명(calling)이라고 한다.

 

이 부르심은 외적인 부르심도 있고 내적인 부르심도 있다. 성령께서는 외적인 부르심과 내적인 부르심 양쪽에서 다같이 역사하신다. 또한 외적인 부르심과 내적인 부르심 양쪽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부르심의 도구로 사용된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외적인 부르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나, 내적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에게만 임한다고 보는 것이 개혁주의적 관점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복음적 부르심, 즉 말씀이 전하여 지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효과적이 아닌 것으로 본다. 오히려 성령께서 말씀을 인간의 심령에 구원적으로 적용시키는 성령의 사역에 의해 효과적이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개혁주의에서는 부르심을 ‘일반적인 부르심’과 ‘효과적인 부르심’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외적인 부르심(External Calling)

 

외적인 부르심은 복음이 만민에게 차별 없이 전파되는 것으로 성령의 특별한 역사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은 일반적인 부르심, 즉 외적인 부르심과 효과적인 부르심, 즉 내적인 부르심을 구분하고 있는 용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되지만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믿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이러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반적인 복음전파는 외적인 부르심이라고 부를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느 시대, 어느 민족, 어느 계급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제한되지 않고 복음을 듣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차별 없이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의인과 악인, 선민과 버림받은 자에게 다 같이 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이런 외적인 부르심에 대해 부르심은 받았으나 오지 않는 자들이 있는 것(마 22:2-14; 눅 14:16-24)과 복음이 전하여졌지만 배척받는 것(요 3:36; 행 13:46; 살후 1:8)을 묘사하고 있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령 (마 28: 19; 막 16:15)을 통해 외적인 부르심을 증거한다.

 

내적인 부르심(Internal Calling),

효과적인 부르심(Effectual Calling)

 

내적인 부르심은 외적인 부르심을 통하여 전해진 복음의 말씀이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진정한 부르심을 받은 죄인의 마음속에서 효력을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회개와 신앙으로 응답하도록 하시며 확실히 그렇게 되어지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내적인 부르심을 다른 말로 효과적인 부르심(Effectual Calling)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적인 부르심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구원적으로 적용되는 부르심이다(고전 1:23-24). 그러므로 이것은 능력 있는 부르심이며 구원에 이르게 하는 부르심이라고 할 수 있다(행 13:48; 고 전 1:23,24).

 

이것은 또한 후회가 없는 부르심이며, 변하지 않으며, 취소되지 않는 부르심이다(롬 11:29). 이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확실히 구원받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되

 

이처럼 효과적인 부르심은 구속받지 않은 자들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고, 예수 그리스를 진정한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이게 하는 특별한 역사이다. 사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기 전에 우리는 우리 자의대로 살며 방황하고 또 그리스도를 거부했다.

 

그러나 효과적인 부르심을 통하여 오래 전부터 변함없이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부르심에 따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깨달은 자들이 고백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자기 뜻과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이러한 부르심은 우리가 잘나서 부르신 것도 아니고 지혜가 많아서 부르신 것이 아니다.

 

형제들아 너희 부르심을 생각하여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택하사...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30)

 

이상을 볼 때 하나님의 부르심은 분명히 큰 은혜이고 무한하신 사랑의 표현이다. 하지만 성경과 역사, 그리고 실제 우리 삶을 통해 볼 때 인류의 많은 사람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인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도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22: 14).” 라고 말씀하시며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많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ACC(호주기독교대학) /AC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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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29 [15:38]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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