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외교의 길을 넓힌 한·호 축구 홍보대사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입력 : 2021/01/27 [14:40]
▲ D2-01: 2004년 캉카컵 홍보대사로 위촉된 이갑순 선생은 지난 15여 년 동안 한호 축구 교류를 통해 한국을 호주에 알리고 한국 청소년들에게 호주 문회를 체험하게 했다.   © 크리스찬리뷰


지난해 12월 중순 캔버라를 다녀왔다. 캔버라 출장은 이미 지난 호에 보도한 ACT 자유당 당대표인 이슬기(Elizabeth Lee)의원 인터뷰(2021년 1월 호 참조) 및 캔버라 교민사회에서 한·호 축구 홍보대사로 민간외교의 길을 넓혀온 이갑순(Keith K. S. Lee, Gungahlin Anglican Church) 선생을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이갑순 선생을 기자 일행이 묵고 있는 파빌리온 호텔(Pavilion Hotel)에서 만났다. 그를 보니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가 민주평통자문위원(호주협회)이기도 한 까닭에 기자와도 민주평통 모임에서 여러 차례 만났던 것이 기억났다.

 

필립스 전자 평사원에서 이사까지

 

▲ 2015 AFC 아시안컵에서 박지성과 함께 한 이갑순 선생 부부. ©이갑순  


그는 한국에서 전자공학과가 몇 개 없던 시절 연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 필립스전자에 1976년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성실하고 열심히 일한 덕으로 ㈜ 필립스 전자의 이사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후에 ㈜ 카본 로렌 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 필립스-대신그룹 합작회사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동안 그가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해왔는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일화가 있어 소개한다.

 

“지금은 ㈜ 송원자동자 조명으로 바뀌었지만, 그 당시 제가 ㈜ 필립스-대신그룹 합작회사 부사장으로 일할 때였어요. 그때 제가 부천공장으로 출근할 때였는데 대신그룹쪽 공장장이 얼마나 까칠하게 굴고 텃새를 부리던지 제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 공장장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매일 오전 7시면 출근해서 공장을 돌아보고 사람들을 다그치는 거예요. 자기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니까 사실 사람들이 거기에 토를 달기도 힘들었죠.

 

저도 부지런한 사람인데 도무지 그 사람을 당해내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결심했습니다. 네가 7시에 출근하면 나는 6시 반에 출근한다. 그래서 한 일 년을 별을 보면서 새벽 6시 반에 출근했습니다.

 

▲ 아시안컵 홍보대사 공로패를 수상한 이갑순 선생   ©이갑순   

 

그때 제가 서울 서초동에 살 때인데 부천까지 가려면 집에서는 새벽 5시 반에는 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최소한 4시 반에서 5시에는 매일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꼬박 일 년을 하고 나니까, 그 공장장이 저한테 ‘부사장님은 못 당하겠습니다.’ 하고 손을 들더라고요.”

 

이렇게 열심히 일한 덕에 그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 곳의 큰 회사에서 이사 및 대표이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50대 중반인 2000년 호주 ACT 주정부의 초청을 받아 캔버라에 정착했다.

 

호주 이민 및 캔버라 정착

 

호주에서 사신 분들은 알겠지만, 나이가 들어 이민 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호주에서 필요한 인력이 아니면 쉽게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신청하는 독립기술이민은 제일 중요한 점수 포인트가 나이와 영어여부 그리고 호주가 필요로 하는 직업군이다.

 

이 세 가지를 합하여 점수를 환산하여 이민성에서 이민을 허락해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50대 중반이 넘은 사람들은 투자이민이나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면 호주로 이민을 오기가 쉽지 않다.

 

이갑순 선생은 처음에는 뉴질랜드로 이민을 희망하여 필립스 뉴질랜드에서 일할 기회를 찾았다. 그러나 그때 사람들은 뉴질랜드는 인구가 적어 한국사람이 적응하기가 쉽지 않고 ㈜필립스 뉴질랜드는 ㈜ 필립스 호주가 관장한다고 호주의 필립스를 소개해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필립스 호주는 그때 다른 회사에 매각되어 기회가 없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호주의 모든 주정부에 자기의 경력을 정리하여 편지를 보냈다. 주정부 초청 이민을 신청한 것이다.

 

▲ 2015년 캉가컵 개막식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이갑순 선생의 부인 전윤기 권사(가운데)는 매년 개막식에 초대되어 애국가를 부른다.©이갑순 

 

그런데 2000년 호주 ACT 주에서 가장 먼저 연락이 왔다. 그가 그동안 다국적 기업인 필립스에서 오랫동안 일을 한 것이 인정되어 ACT 주에서 개발하는 비공공분야(Private Sector), 비즈니스 분야에 도움이 되는 인물로 인정되어 이민을 허락한 것이다.

 

그리고 캔버라에 정착한 그는 2000년에서 2003년까지 컴퓨캣(Compucat) 회사에서 GPS를 상용화하는 프로젝트를 맡아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에는 GPS를 운동선수들에게 적용시켜 운동량을 측정하는 연구를 하는 GP Sport 회사의 경영 컨설던트겸 투자자로 자리를 옮겼다. 이러한 가운데 자연스럽게 호주 경제인들과 정치인들을 만나는 기회가 늘었다.

 

호주 캔버라 축구협회 회장과의 만남

 

“제가 2000년 호주에 막 왔을 때 스티브 도즈폿(Steve Doszpot) ACT 주의원이 저를 인터뷰했어요. 그때 이분이 한·호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저를 인터뷰하면서 한국의 산업과 경제계 소식을 물어와서 제가 알려주고 나이도 비슷해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습니다.

 

▲ 2012 캉가컵 우승을 차지한 신곡초등학교 12세 팀이 준우승팀(호주)과 우정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갑순     

 

▲ 2015 AFC 아시안컵 홍보대사 감사장을 수상한 이갑순 선생  ©이갑순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분이 호주 캔버라 축구협회(Capital Football-ACT Football federation) 회장이었던 겁니다. 그때 제가 비즈니스로 한국에 출장을 많이 가니까 그분이 저에게 여기 호주에 국제청소년 축구대회, 캉가컵(Kanga Cup) 대회가 있는데 한국에 소개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저를 2004년에 캉가컵 홍보대사(ACT 축구협회 명예대사)로 위촉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호주 축구홍보대사가 된 것입니다.”

 

그는 2004년 캉가컵 홍보대사가 된 후 바로 그 이듬해인 2005년, 한국에 있는 신곡초등학교 축구팀을 호주 캉가컵에 참가시키는 것을 성사시켰다. 캉가컵 청소년 축구대회는 호주 국가 축구연맹(FFA)과 아시아 축구연맹(AFC)에서 공인하고 있는 전 세계가 참여하고 있는 국제적인 토너먼트 축구대회이다.

 

9세부터 18세까지 연령별, 남녀 팀으로 구성되어 한 해에 보통 200~250개 팀이 참가하는 대규모 축구대회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캉가컵이 열리면 보통 캔버라에 4~5천 명 가량이 운집하여 5일 동안 약 7백~1천여 경기가 진행되는 명실공히 남반구 최대 청소년 축구대회라 할 수 있다.

 

더구나 2015년 아시안 컵을 호주가 개최한 이후에는 참가 팀이 350팀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 규모면에서는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큰 규모의 청소년 축구대회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개최하면 호주 ACT주와 캔버라에 커다란 경제적, 문화적 이익을 가져다 준다.

 

캉가컵(Kanga Cup) 홍보대사

 

이 캉가컵은 우리가 잘아는 캔버라 꽃축제(Floriade), 다문화축제 등과 함께 호주 수도 캔버라의 3대 명물 행사로 손꼽히고 있다. 이 캉가컵의 목적은 “세계의 청소년들을 축구를 통해 단합시키는 것”이다.

 

▲ 2015 AFC 아시안컵 한국 대 이라크 4강전에서 평생 동반자 전윤기 권사와 함께 한 이갑순 선생.(시드니 ANZ스타디움) ©이갑순     

 

▲ 2016 캉가컵에 참가한 신곡초등학교 팀과 기념촬영(오른쪽 뒷줄 이갑순 선생 부부) ©이갑순    


그는 2004년 캉가컵 홍보대사가 된 후 그해 한국 대한축구협회를 방문해서 호주 캉가컵을 소개하고 호주 캉가컵에 참여할 수 있는 청소년 축구팀을 소개받았다. 그때 대한 축구협회에서 추천해준 축구팀이 바로 의정부에 있는 ‘신곡초등학교 축구팀’이었다.

 

신곡 초등학교 축구팀은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캉가컵 12세 이하 토너먼트 대회에 무려 13회를 참가하여 11번이나 우승하는 쾌거를 이룬다. 이외에도 서울지역 초등학교 축구 연합팀인 Seoul U12 Boys가 2015년부터 4회 참가하였고, 그외 포항 스틸러스 유소년팀, 충북 예성여중고, 14세, 16세, 18세 이하팀 그리고 대구 동부여고 18세 이하팀이 참가하였다.

 

이 모든 팀들이 참가하는 데 이갑순 선생 부부의 안보이는 헌신과 봉사가 있어왔다.

 

한국의 초등학생들이 물 설고 낯선 이국 땅에 와서 적어도 2주 이상 머물면서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손길들을 필요로 한다. 그들을 공항에서 픽업하고, 숙박하고, 먹고, 이동하고 따라다니면서 통역하는 것까지 15년 동안 일일이 뒷바라지를 다해왔다.

 

이러한 안 보이는 섬김의 공로를 인정받아 ACT 축구협회(Capital Football)로부터는 2008년 공로상 (Award of Distinction)을 수상했다.

 

부부의 헌신

 

“사실 아내의 도움과 협조가 없었다면 본인의 홍보대사 역할은 그리 오래 지속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내는 한국에서 아이들이 오면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과 함께 이동하며 안내하고 보살피고 갖가지 통역을 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호주의 가정에서 홈스테이 할 수 있도록 호주 부모와의 가교역할을 해주고, 아이들이 집 생각하지 않고 외지에서 지낼 수 있도록 현지 엄마 역할을 감당해 주었습니다.

 

호주 축구협회에서도 이를 잘 알기에 본인이 초청받는 축구관련 행사에 함께 초청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 아내도 캉가컵과 아시안컵 홍보대사로 같이 위촉해 주었습니다.”

 

그의 고백대로 어떻게 보면 아내의 도움이 없었다면 홍보대사 역할들을 오래 하기가 힘들었지도 모른다.

 

▲ 2012 캉가컵에서 조태용 대사(왼쪽 3번째)와 함께 결승전을 관전하고 있는 이갑순 캉카컵 홍보대사(왼쪽 2번째)   ©이갑순     

 

처음 몇 년 동안은 캉가컵 결승전이 끝나면 그 다음 날 1백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한국 선수들과 동행 임원들과 홈스테이 호주가정)을 집에 초청하여 한국 음식으로 송별연을 베풀었다. 이러한 초대를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이 수반되었겠는가?

 

그랬더니 거기에 감동을 받고 당시 호스팅클럽 회장이었던 모나로 팬더(Monaro Panthers) FC의 존 바릴라로(John Barilaro, 현 NSW주 부수상) 씨가 자기 집에서 하겠다고 인수해 갔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매년 캉가컵 참가 후 선수단이 한국으로 떠나기전 전날에 스포츠 클럽 등에서 송별연이 끊이지 않고 거행되고 있다.

 

민간 외교 대사

 

호주는 스포츠가 일상화되어 있는 나라다. 흔히 생활체육이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한 가지 이상 스포츠를 배우도록 장려하며 스포츠를 통하여 사회와 인간관계를 배울 수 있도록 스포츠맨십이 강조된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를 통한 일반인들의 교류는 삶의 가장 깊은 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화교류인 동시에 민간외교라 할 수 있다.

 

지난 15년 동안 이갑순 선선 부부는 캉가컵 홍보대사로 한·호 축구교류를 통하여 한국을 호주에 알리고 한국 청소년들에게 호주문화를 체험하게 했다.

 

어디 이뿐인가? 2008년부터는 호주 팀도 한국에 가서 한국 가정에 홈스테이 할 수 있도록 주선함으로 한국의 문화를 호주에 소개하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국을 직접 방문하고 나면 한국을 좋아하게 된다. 이것은 국위선양과 최전선에서 민간외교를 감당하는 일인 것이다.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무한경쟁시대를 맞이하여 민간외교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그동안의 외교는 국가와 정부주도의 외교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국외 거주동포들이 민간외교가 더욱 강조되어야 할 때이다.

 

그런 점에서 자기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가면서 지난 15년 동안 민간외교의 최전선에서 한국을 알리고 소개한 이갑순씨 부부의 봉사와 섬김은 사실 정부가 나서서 격려해 주어야 할 일이다.

 

▲ 2019 캉가컵 18세팀에서 우승을 차지한 대구 동부여고  ©이갑순   

 

“상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닙니다. 제가 좋아서 한 일입니다. 그리고 호주 사람들 만나면 자연 한국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한국 문화도 소개하고 한국 역사와 한국 전통에 대해 알려 주고 이렇게 한국을 알리는 것도 제가 좋아하는 일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호주 구석구석에서 민간외교를 통해 한국을 알리는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이 많아 지길 소망해 본다.〠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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