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8년 2월 3일, 호주 최초의 기독교 예배

글/정지수 사진/권순형 | 입력 : 2021/01/27 [14:56]
▲ 1788년 1월 26일 포트 잭슨 항구에 진입하는 첫 함대 석판화. 1888년 E. Le Bihan에 의해 그려졌다.     © 크리스찬리뷰


첫 번째 함대(First Fleet)

 

호주를 처음 발견한 유럽인들은 네덜란드 탐험가들이었다. 그들은 17세기에 호주를 발견하고 해안 지역들을 탐험했다. 그들은 이 땅을 뉴 홀랜드(New Holland)라고 불렀다. 이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호주 탐험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비용이 많이 들고 당장에 수익이 나지 않아 탐험을 중단하였다.

 

이후, 1770년에 영국의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뉴질랜드와 호주를 탐험했다. 그는 시드니 보타니 베이(Botany Bay)에 상륙했다. 영국으로 돌아간 제임스 쿡 선장은 호주에 대해 보고를 했고 영국 정부는 호주에 대해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영국에서 죄수들이 늘어나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1776년에 독립을 선언하자 영국 정부는 호주를 새로운 식민지로 개척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1787년 5월 13일에 영국 정부는 호주로 11척으로 구성된 함대를 파견했다.

 

‘첫 번째 함대’(First Fleet)라고 불려진 이 함대에는 영국에서 추방된 남자 죄수 582명, 여자 죄수 193명, 그들의 자녀 14명이 타고 있었고, 정부 관리 15명, 선원 323명, 해병 247명, 그들의 배우자와 자녀 46명이 타고 있었다. 총 1천420명이 영국을 떠나 호주로 가는 긴 여정에 올랐는데, 이들 중에는 새로운 식민지를 통치할 아서 필립(Arthur Phillip) 총독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에서 호주로 가는 길은 매우 멀고 험했다. 8개월 동안의 항해에서 여러 사람들이 죽었고, 11명의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났다. 총 1천373명의 영국 사람들이 1788년 1월 19일에서 20일 사이에 호주에 무사히 도착했다.

 

▲ 아서 필립 총독     © 크리스찬리뷰

 

▲ 아서 필립 총독은 1788년 1월 26일 함대를 정박하고 새로운 식민지에 영국 국기를 게양, 록스 지역에 정착촌 건설을 시작했다.     ©크리스찬리뷰

 

무사히 시드니에 도착한 아서 필립(Arthur Phillip) 총독은 처음에 보타니 베이(Botany Bay)에 정착촌을 건설하려고 했지만, 이 지역에 정착촌을 건설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좀더 북쪽으로 올라가 시드니 코브 (Sydney Cove, 시드니 시내 록스 지역)에 정박하고 정착촌을 건설하기로 했다.

 

드디어 1788년 1월 26일에 아서 필립(Arthur Phillip) 총독은 영국 깃발을 세우고 새로운 식민지 정착촌 건설을 시작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날을 호주의 날(Australia Day)로 지키고 있다.

 

리차드 존슨 목사(Rev. Richard Johnson)

 

‘첫 번째 함대’에는 호주 식민지의 영적 필요를 돌볼 리차드 존슨(Rev. Richard Johnson) 목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영국을 떠나기 바로 전에 결혼을 했고, 아내와 함께 호주로 와서 아들과 딸을 낳았다.

 

리차드 존슨 목사는 영국 성공회 목사로, 1784년 옥스포드 주교에게 안수를 받았고, 같은 해 10월 24일 영국 정부로부터 뉴 사우스 웨일즈(NSW)주의 목사로 임명받았다.

 

그가 뉴 사우스 웨일즈(NSW)의 목사로 임명받은 것은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의 공이 컸다. 당시 수상이었던 윌리엄 피트(William Pitt) 수상은 자신의 동료이자 영국의 노예제도 폐지운동을 이끈 윌리엄 윌버포스에게 호주 식민지에서 활동할 목회자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 호주의 첫 번째 함대 목사 리차드 존슨 목사를 추천한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 씨. 그는 영국의 노예제도 폐지운동을 이끌었다.     © 크리스찬리뷰

 

▲ 1787년 노예제도 반대 캠페인 일환으로 만든 메달리온. “나는 남자와 형제가 아닌가?”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 크리스찬리뷰


윌리엄 피트 수상는 윌리엄 윌버포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새로운 식민지에 교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언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언급하셨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문제인 사역자를 찾는 일을 도와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이 일이 빨리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윌리엄 피트 수상의 편지를 받은 윌리엄 윌버포스는 리차드 존슨 목사를 추천하면서 다음과 같이 답장을 썼다.

 

▲ 시드니 시내 한복판에 호주에서의 첫 교회가 세워졌던 자리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크리스찬리뷰

 

“우리는 수상님께서 복음의 도구가 되셔서 지구 남쪽에 있는 호주 땅에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는 길을 열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리처드 존슨 목사가 호주로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열매를 가져올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습니까?

 

호주 선교 사역을 건축에 비교한다면, 리차드 존슨 목사를 파송하는 것이 아주 작은 기초석을 놓는 것 같은 일이지만, 모든 위대한 일들이 이 작은 일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33년전 1788년 2월 3일 오전 10시

커다란 나무 아래서 호주에서의 첫 예배

 

1788년 1월 20일, 호주에 도착한 리차드 존슨 목사는 2주 후, 즉 1788년 2월 3일 현재 시드니 중심부인 헌터 스트리트와 블라히 스트리트(Hunter St & Bligh Streets) 모퉁이의 커다란 나무 아래서 호주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죄수들은 깨끗이 자기 몸을 씻어야 했고, ‘첫 번째 함대’로 호주에 온 모든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해야 했다. 이날 오전 10시에 해병대가 연주하는 북소리에 맞추어 예배가 시작되었다.

 

리차드 존슨 목사가 설교를 했는데, 설교 본문은 시편 116편 12절 말씀이었다.

 

▲ : 호주 최초의 성직자 리차드 존슨 목사 (1753-1827)     © 크리스찬리뷰

 

“여호와께서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내가 어떻게 다 갚겠습니까?(시편116편 12절, 우리말 성경)”

 

설교 원고는 전해지지 않아 그가 어떤 설교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가 호주에서 처음 드리는 예배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는 설교를 했을 것 같다.

 

8개월간의 향해 기간 동안 32명이 죽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사히 호주 시드니까지 와서 정착촌을 건설하고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며, 새로운 정착촌에서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삶을 살자고 설교했을 것 같다.

 

당시 예배에 참석했던 왓킨 텐치(Watkin Tench) 선장은 “예배에 참석한 죄수들과 해병들 모두가 다 경건하게 예배를 드렸다”고 말했다.

 

▲ 지난 2015년 2월 3일(주일), 호주에서 처음 예배 드렸던 장소(기념비 앞)에서 호주기독민주당(총재 프레드 나일 목사)이 주관한 227주년 기념예배 ▼기념비에는 존슨 목사가 최초의 목사였다는 기록과 함께 첫 예배가 드려진 1788년 2월 3일 주일의 첫 설교 제목과 1793년 8월 25일 헌당하여 1798년 10월 1일 불에 탔다라는 기록이 적혀 있다.     © 크리스찬리뷰

 

리차드 존슨 목사는 호주에 첫 번째 교회 건물을 건축하기 원했다. 하지만, 총독들은 리처드 존슨 목사에게 비협조적이었다. 아서 필립(Arthur Phillip) 초대 총독은 리처드 존슨 목사에게 도덕적 주제만 설교하라고 명령했다. 두 번째 총독으로 부임한 프란시스 그로스(Francis Grose) 총독도 노골적으로 리처드 존슨 목사가 교회 건물을 건축하는 것을 방해했다.

 

두 총독들의 방해로 교회 건물 건축이 어려웠었다. 약 4년 반 동안 사람들은 커다란 나무 아래나 커다란 상점에서 예배를 드려야 했다. 리처드 존슨 목사는 시드니와 파라마타에 있는 정착촌을 오가며 침례식, 결혼식, 장례식 등을 인도하였다.

 

또한 그는 사형식에도 참석해 사형당하는 죄수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가는 마지막 길을 지켜 보았다. 이 뿐만 아니라, 그는 병에 걸린 사람들을 심방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식들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자신의 농장에서 땀 흘려 일을 해야만 했다.

 

존슨 목사 자비로 예배당 건축

 

하지만,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교회 건물을 짓겠다는 존슨 목사의 열정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는 총독의 도움 없이 자기 스스로 교회 건물을 건축하기로 마음 먹고 건축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재정을 투입해 교회 건물을 건축하는데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하고,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지불했다. 오직 소수의 죄수들이 교회 건축에 도움을 주었다.

 

▲ 제1함대 도착 5 년 후 지어진 호주 최초의 교회당.     © 크리스찬리뷰

 

▲ 첫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미지     © 크리스찬리뷰


호주에서 첫 예배를 드린 후 약 4년 반이 지난 1793년 8월에 드디어 교회 건물이 완성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호주에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 건물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감격했다. 그가 건축한 교회 건물은 T자 모양의 건물로 진흙과 짚으로 만들어졌다.

 

이 교회는 지금의 리차드 존슨 스퀘어(Richard John- son Square, Cnr of Hunter and Bligh Sts, Sydney)에 위치해 있었는데, 약 5백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아서 필립 (Arthur Phillip) 초대 총독이 교회에 사용할 유리를 따로 보관해 놓았는데, 그의 후계자인 프란시스 그로스 (Francis Grose) 2대 총독이 그 유리를 숨겨 두고 내어주지 않았다.

 

한편, 리차드 존슨 목사는 예배에 필요한 성찬식 도구와 테이블과 설교단 등을 영국에서 가져왔으며, 1793년 8월 25일에 새로 건축된 교회당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이날 예배에 프란시스 그로스 (Francis Grose) 제2대 총독의 부인을 포함해서 여러 장교들과 그들의 아내들과 죄수들이 참석해 교회 건물 완공의 기쁨을 나누었다.

 

하지만, 제2대 총독인 프란시스 그로스(Francis Grose)는 이날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그래서 리차드 존슨 목사는 설교 시간에 20명이 모인 것은 거의 100명이 모인 것과 같다고 했다.

 

▲ 리차드 존슨 목사가 사용하던 성경, 기도서와 성찬 기구들은 세인트 필립스교회에 보관되어 있다. 세인트 필립스교회는 2월 3일 오후 6:30 동교회당에서 233주년 기념예배를 드린다. 코로나19로 인해 참석을 원하면 사전에 등록해야 한다. *등록= https://reopen.church/r/ST17kNdF     © 크리스찬리뷰

 

예배 순서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기 때문에 예배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리차드 존슨 목사가 영국 성공회의 1662년판 공동 기도서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날 예배에 8월 25일 아침 기도 본문인 예레미야 38 : 1-14과 고린도 전서 6장이 예배 시간에 낭독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교회 건물은 주중에는 기독교 학교 건물로 사용되었고 주말에는 교회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5년 후에 이 교회 건물은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인해 전소 되어 버렸다.

 

현재 호주의 첫 번째 교회 건물이 있었던 자리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우리는 당시 신대륙이었던 호주에서 영국의 죄수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교회 건물을 건축한 리처드 존슨 목사의 수고와 노력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정지수|본지 영문편집위원

권순형|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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