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목사와 선한 목자
 
서을식/크리스찬리뷰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한복음 10:11)

 

지뢰밭이다. 한국에서 왕왕 들려오는 소위 ‘악한 목사님 뉴스’를 말함이다. 상상 초월 엽기 행각이 사회 전체에 핵폭탄급 파장을 몰고 온다. ‘전도를 방해한다.’ 이 정도는 아주 얌전한 표현이다. 실제로는 기독교 생태계 전체의 생존을 위협한다. 시한폭탄이 장착된 집안에 칼 든 강도가 설치는 형국이다.

 

호주는 무풍지대인가? 불미스러운 사건이 빙산의 일각처럼 터지면, 무조건 조용히 덮고 넘어가려는 합의가 암묵적으로 작동하는 한인사회가 은혜로운가? 소비자 위주로 시장이 심히 왜곡된 한인 사회의 기독교는 더 큰 위험을 끌어안고 있다. 사안에 따라 적절히 사과하는 최소한의 양심과 공감, 대처를 고민하는 분별과 책임, 뼈를 깎는 회개와 개혁이 상실됐음을 가슴 아파하자.

 

하얀 가운을 뒤집어쓴 원흉, 흰개미를 ‘희다’는 이유 하나로 ‘순결하다’ 말하는 희망 고문을 멈추지 않으면, 이는 결국 기둥의 속을 갉아 먹어 영혼 없이 허우대만 멀쩡하게 서 있는 좀비 교회의 줄초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포도원을 허는 여우는 잡아야 하고, 흰개미는 박멸해야 한다. 정의의 대척점에 은혜가 있지 않다. 오히려 가장 정의로운 것이 가장 은혜롭다. 더럽혀진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정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순전한 사랑 이야기로 가득한 나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이 땅, 현재 삶의 자리로 보냄 받았다.

 

희망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9장에서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 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셨다. 이로 인해 논쟁이 일어난다.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9:27).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9:28-29).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제자인 자신들이 오히려 더 종교적으로 권위 있는 위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버린다. 예수님의 영적 권위를 여지없이 부정한다. 이런 배경에서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설교를 접하자.

 

바리새인들의 이해와 달리, 예수님께서는 “나는 양의 문이라”(7절), “나는 선한 목자라”(11, 14절)라고 주장한다. 이는 오직 구원은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단지 양을 보호 보양할 뿐 아니고, 목숨을 내어주는 자신이 전정한 목자라고 주장한다.

 

예수님 자신이 진정한 권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 드러내신다. 양의 문이요 선한 목자로서 오직 예수님만이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예수님 외에 그 누구도 양이 들어가는 구원의 문이 될 수 없다. 예수님은 양의 구원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주는 선한 목자다. 예수님의 교훈과 설교를 본문으로 읽고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사람 중에, 자기 스스로 구원의 문이 되고 선한 목자가 되어 오히려 양으로 자기를 살찌우는 악한 목사가 있다. 따르는 자도 멸망으로 끌어들인다.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마태복음 15:14). 이 말이 비정하게 느껴지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구원은 모두를 위한 선물이 아니었다.

 

목자에게는 자기 양이 있다.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온다(3~4절).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10~12절).

 

가히 설교의 홍수 시대를 맞았다. 인터넷에서 평생을 들어도 다 듣지 못한다. 때가 때이니, 나도 유튜브에 매주 함량 미달의 설교를 올리지만, 쓰레기를 더하는 듯하여 미안하다.

 

높은 강단과 먼 모니터 뒤로 실생활이 감춰진, 악한 목사의 현란한 간증이나 달콤한 말로 오감 만족을 추구하기보다, 선한 목자 예수님의 가르침을 성경에서 탐구하고 주님의 세미한 음성과 밝히 드러난 행하심을 듣고 보며 따라가는 순종을 훈련하자. 행동해야 동행할 수 있다.〠

 

서을식|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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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1/27 [15:05]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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