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rch Hill Anglican, 233년 전 호주에서 최초의 예배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입력 : 2021/02/22 [10:47]
▲   3월호 / 2021  © 크리스찬리뷰

 

 

▲ 시드니 시내에 있는 세인트 필립스교회에서 지난 2월 3일 저녁 ‘호주 최초의 기독교 예배 233주년 기념예배’가 열렸다.     ©크리스찬리뷰

 

지난 2월 3일(수) 저녁, 시티에 있는‘Church Hill’이라고 불리우는 세인트 필립스 성공회 교회(St Philip’s Anglican Church)를 방문했다.

 

1848년 머릿돌을 놓고 1856년 3월 27일에 봉헌한 이 예배당은 당시만 해도 서큘러 키(Circular Quay)에서 볼때 높은 언덕 위에 있었기 때문에 처치 힐(Church Hill)이라고 불리우는 욕크 스트리트(York St)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하버 브릿지로 들어서는 입구에 있으며 욕크 스트리트 3번지이다.

 

바로 233년 전 1788년 2월 3일 호주에서 최초로 예배를 드린 날을 기념하는 ‘First Christian Service’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매년 2월 3일이 되면 호주에서 최초로 예배를 드린 날을 기념하기 위해 시드니 시내에 있는 세인트 필립스교회당에서 ‘First Christian Service’ 기념 예배를 드린다.

 

올해는 233년째 되는 기념예배였다. 1월 중순부터 시드니에는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비상등이 켜져 예배 등 다시 제약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기자 일행은 교회 사전에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예배 참석 신청을 하고 정부 방침을 따랐다.

 

예배 시작 30분 전에 교회에 도착해 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행사 진행위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QR 코드 등록을 했으며,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입장이 안 되었다.

 

Church Hill Anglican

 

“호주 최초의 기독교 예배 233주년 기념예배”(이하 기념예배, The 233rd Anniversary of the First Christian Service)는 오후 6시 30분 정각, 세인트 필립스교회의 저스틴 모팻(Rev. Justin Moffatt) 목사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넓은 예배당은 코로나 정부 방침에 따라 사전에 등록을 마친 120여 명의 사람들만이 2미터 거리를 유지하며 띄엄띄엄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 호주에서 첫 교회가 세워졌던 시드니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리차드 존슨 스퀘어에 리차드 존슨 목사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크리스찬리뷰

 

예배 시작 전 저스틴 목사가 나와 오늘 예배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하고 묵상기도 후에 예배는 장엄한 오르간 반주에 맞춰 시작됐다.

 

호주교회들은 찬송을 부를 때 성도들이 다 일어서서 찬송을 부른다. 첫 번째 불렀던 찬송은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다 찬양하여라, 전능왕 창조주 주께”(Praise to the Lord, The Almighty)였다.

 

예배 참석자들은 일어났지만 코로나 규정상 찬양을 할 수 없었다. 대신 솔리스트가 나와 전 회중을 대신해서 오르간에 맞춰 찬송을 불렀다. 기자도 아는 찬송이어서 흠잉으로 속으로 따라 불렀다.

 

찬송을 속으로 따라 부르면서, 233년 전 리차드 존슨 목사가 죄수들과 함께 호주에서 첫 번째 예배를 드리는 장면을 상상해보니 감격이 무량했다. 독자들도 한번 상상해 보기 바란다.

 

시드니 항구에 11척의 배가 정박되어 있다. 이 배들은 1787년 5월 13일 당시 775명의 죄수와 247명의 해군 그리고 323명의 선원들과 15명의 장교와 그 가족들을 포함 총 1천420명이 11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영국 포츠머스(Ports- mouth) 항구를 떠나 장장 8개월간의 거친 항해를 걸쳐 1788년 1월 20일 시드니 보타니 베이(Botany Bay)에 도착했다.

 

그러나 보타니 베이는 사람들이 정착하기에는 적절한 장소가 아니라고 판단을 하고 아서 필립(Arthur Phillip)총독은 새로운 식민지 부지를 시드니 코브(Sydney Cove, 시드니 시티 록스 지역)로 옮겼다.

 

그날이 바로 1월 26일 토요일이다. 1월 27일 일요일에는 하역, 토지 개간 및 텐트 치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2월 3일 주일 아침 아직 예배당도 없는 상태였지만 뉴사우스 웨일즈 식민지 최초의 기독교예배를 드렸다.

 

죄수와 선원들과 군인들이 뒤섞인 채 리차드 목사의 인도 아래 시드니 하버 근처(현재 Cnr Hunter St & Bligh Streets)의 커다란 나무 아래서 호주 역사상 최초의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니 뜨거운 감격이 올라온다.

 

그들은 오랜 항해로 심신이 지쳐 있었고, 새로운 대륙에서 어떻게 적응해야 하나? 일종의 두려움과 불안이 닥쳐왔을지도 모른다.

 

▲ 포트 잭슨(시드니항구) 입구로 진입하는 첫 함대. (1788. 1.27) 윌리엄 브래들리 작.NSW 주립 도서관 소장.             ©State Library of NSW

 

그때 리차드 존슨 목사는 시편 116편 12절 말씀을 본문으로 호주에서 최초의 설교를 했다.

 

현재 리차드 존슨 목사와 그들이 함께 모여 예배들 드렸던 장소인 캐슬리 스트리트(Castlereagh St.) 끝자락, 서큘러 키(Circular Quay)의 헌터 스트리트(Hunter St)와 블라이트 스트리트(Bligh St)의 리차드 존슨 스퀘어에는 리차드 존슨 목사의 기념비(Foundation Stone & Richare Johnson Obelisk)가 세워져 있다. 서큘러 키를 여러 번 방문한 사람들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 기념탑이 무엇을 기념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 세인트 필립스교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리차드 존슨 목사의 성경책, 기도서, 성찬기 등을 관람하고 있는 예배 참석자들.     © 크리스찬리뷰

 

▲ 찬기는 당시 영국왕 죠지 3세가 리차드 존슨 목사에게 하사품으로 증정한 유물이다.     © 크리스찬리뷰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233년 전 유형지 호주 땅에서 첫 번째 예배를 드릴 때 리차드 존슨 목사는 시편 116편 12절 말씀을 본문으로 전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시편 116:2)

 

지난 2월 3일 233주년 기념예배에서도 그날 말씀을 전한 존 딕슨 목사(Rev Dr John Dickson, 리들리 칼리지 교수)도 똑 같은 본문으로 설교를 했다.

 

존 딕슨 목사는 호주 첫 번째 교목이자 선교사였던 리차드 존슨 목사와 호주 초기 역사에 대해 프로젝트를 이용하여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설교는 복음적이면서도 열정적이었다.

 

왜 리차드 존슨 목사는 8개월의 고된 항해 끝에 심신이 지친 죄수와 선원 그리고 군인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나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하는 종류의 설교 대신 오히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와 같은 ‘헌신’을 강조하는 설교를 행했을까?

 

▲ 호주 최초의 기독교 예배 233주년 기념예배를 마친 후 리차드 존슨 목사의 성경책 등 유품들을 구경하기 위해 긴 줄을 선 참석자들.     © 크리스찬리뷰

 

존 딕슨 목사는 그것은 바로 최초의 호주 목사인 리차드 존슨 목사가 복음주의자요 선교적 열정을 가진 목자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날 드린 기념예배는 많은 기도문 낭독과 성경 읽기, 찬송 등 예배의식이 많았지만 정확히 한 시간을 지켰다.

 

뿐만 아니라 존 딕슨 목사의 설교의 내용은 전체 예배의식과 어우러져 감동이 넘치는 예배였다. 예배 후에는 리차드 존슨 목사가 사용했던 성경과 앵글리칸교회의 기도서, 성찬기 등을 관람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기자 일행도 1788년 당시의 성경과 기도서 그리고 성찬기를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Original St Philip’s Church

 

1788년 2월 3일 시드니 코브(Sydney Cove)의 큰 나무 밑에서 호주에서 최초의 예배를 드린 후에 리차드 존슨 목사는 교회 건물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래서 총독에게 예배당 건축의 협조를 구했지만 아서 필립(Arthur Phillip) 총독은 비협조적이었다.

 

리차드 존슨 목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건축을 하기로 작정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투입해 교회 건축을 시작했다. 건축에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하고,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지불하고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재정으로 감당했다.

 

▲ 군인으로 NSW 부지사였던 프란시스 그로스와 리차드 존슨 목사.     © 크리스찬리뷰

 

오직 소수의 죄수들만 교회 건축에 노동력을 제공했다. 드디어 4년 반의 건축 끝에 호주 최초 예배를 드렸던 장소(현 Cnr Hunter St and Bligh St)에 초가 지붕과 흙바닥으로 이루어진 T자 형태의 예배당 건물이 1793년 8월에 완공되었다.

 

▲ 1793년 완공된 호주 최초의 교회(왼쪽)와 교회 위치를 알리는 지도.  ©크리스찬리뷰 자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박한 예배당은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고 이곳에서 리차드 존슨 목사와 그의 아내 메리(Mary)는 주중에 150~200명의 아이들을 가르쳤던 학교로도 사용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예배당은 1798년 10월 1일 죄수들의 방화에 의해 소실되고 말았다. 그달 말에 존 헌터(John Hunter) 총독은 첫 번째 교회를 대체할 수 있는 석조교회를 건축할 수 있도록 지금의 랭 공원(Lang Park)이 있는 언덕에 기초를 닦았다.

 

그리고 1800년 10월 새로운 총독 필립 기들리 킹(Philip Gidley King)은 최초의 세인트 필립스교회(St Philip’s Church)가 세워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석조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 세인트 필립스교회의 근대와 현대의 모습. ©크리스찬리뷰, © State Library of NSW     

 

▲ 세인트 필립스교회는 봉헌 당시 8개의 종(White- chapel bells)을 주조하였고, 6번째 종은 사고로 인해 깨졌는데 새로운 종을 2001년 에 주조했다.     © 크리스찬리뷰


1810년에 완공된 두 번째 교회인 세인트 필립스교회는 석조 건물로 지어졌지만 빈약한 재료로 지어져 “기독교시대의 가장 볼품없는 교회”로 명명되기도 했다. 이 두 번째 교회에는 45미터 높이의 둥근 시계탑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두 번째 건축된 교회는 1856년까지 현재의 랭 공원(York St, 욕크 스트리트 반대편)에 세워져 초기의 교회의 역할을 다했다.(현재는 소실되고 없다).

 

세인트 필립스교회와 개리슨교회

(St Philip’s Church & Garrison Church)

 

그 후 현재 욕크 스트리트(3 York St, Sydney)에 있는 세인트 필립스교회는 세 번째 건축된 예배당이자 처치 힐(Church Hill)에 세워진 두 번째 교회 건물이다.

 

1848년 5월 1일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 최초의 성공회 교구목사) 목사는 현재의 건물 위치에 기초석을 놓았고 1856년 3월 27일 새 교회 건물을 완공한 후 하나님께 봉헌했다.

 

현 예배당은 빅토리아 시대의 고딕 스타일로 건축되었으며 에드먼드 블랙킷(Edmund Blacket)이 설계했다. 에드먼드 블랙킷은 세인트 필립스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의 골조를 직접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세인트 필립스교회 탑에서 바라본 북쪽. 멀리 하버브릿지가 보인다.(1932. 4) 교회(욕크 스트리트)에서 바라본 시드니 시내. 시드니 타운홀이 보인다. 욕크 스트리트 평면도 그리고 교회 탑에서 바라본 시드니 시내(1937). *사진 설명= 상단 왼쪽부터 시계 방향.  ©City of Sydney Archives     

 

▲ 개리슨교회는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 크리스찬리뷰


교회 동쪽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은 영국에서 직접 수입되었고 당시 가격은 200파운드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에드먼드는 시드니대학과 세인트 앤드류(St Andrew) 대성당을 같은 빅토리아 시대의 고전적 고딕양식으로 설계했는데 세인트 필립스교회는 에드먼드가 빅토리아 시대의 고딕양식으로 설계한 마지막 교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세인트 필립스교회라고 명명한 것은 최초의 식민지 총독인 아서 필립(Arthur Philip)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랭 공원(Lang Park)에 세워진 두 번째 교회인 세인트 필립스교회(지금은 소실되고 없음)가 영국으로부터 죄수와 이민자 숫자가 많아지자 예배당 좌석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윌리엄 카우퍼 목사는 당시 총독이었던 조지 깁스(George Gibbs)에게 건축허가를 받아 밀러스 포인트(현 Milers Point, The Rocks, Argyle St and Lower Fort St 근처)에 부지를 허가받아 개리슨교회(Garrison Church)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이 교회는 처음에는 삼위일체교회(The Holy Trinity Church)로 불리웠다. 첫 번째 기초석은 1840년 6월 23일 윌리엄 브로튼(William Broughton) 주교에 의해 세워졌고, 헨리 긴(Henry Ginn)이 기초 설계를 에드먼드 블라켓(Edmund Blacket)이 2단계 설계를 맡고 공사는 에드워드 플러드(Edward Flood)와 조지 패튼(George Patton)이 맡아 진행했다.

 

▲ 개리슨교회의 어제와 오늘 ©Mckay photography     © 크리스찬리뷰

 

▲ 개리슨교회 본당     © 크리스찬리뷰


공사는 시작했지만 1840년대의 대공황이 불어닥쳐 공사 진행이 원활치 않았다. 1844년 부분적으로 준공된 교회에서 존 코치 그릴(John Couch Grylls) 목사가 첫 번째 예배를 시작했다. 그러나 성채와 첨탑은 안타깝게도 1878년까지 완전히 완공되지 못했다.

 

개리슨교회Garrison Church는 호주 식민지 시대에 세워진 최초의 군사교회라 할 수 있다(Garrison은 군대를 지칭하는 별명이다).

 

특히 개리슨교회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유명한데 1861년 로즈 스콧(Rose Scott)이 그녀의 부모를 기념하여 교회 동쪽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헌물했다. 동쪽 창은 수태고지, 목자들의 경배, 그리스도의 세례와 승천을 묘사하고 있는데 “호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문”으로 불려지고 있다.(*표지 사진 참조)

 

또 다른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은 “어린 아이를 죽음으로부터 보호하는 천사”를 묘사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은 1984년 호주 크리스마스 우표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2013년에 시드니 성공회(Sydney Anglican)에서는 개리슨교회와 세인트 필립스교회를 선교적 목적으로 한 교구로 묶어 Church Hill Anglican이라 부르고 있다.

 

세인트 필립스교회에서는 매주일 오전 8시 30분, 10시 30분, 오후 6시 등 세 번의 예배가 진행되고 있고, 개리슨교회에서는 오전 9시 30분과 오후 4시 등 두 번의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가까운 시일에 호주 최초의 교회인 세인트 필립스교회오 첫 군사 교회였던 개리슨교회를 방문해서 예배도 드리고 사진도 찍어 역사로 남겨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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