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양지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3/29 [17:37]


“마음이란 우리의 조상들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부딪힌 수많은 생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된 프로그램이다” -Steven Pinker -

 

인간에게 일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하는 다양한 일과 노동의 수고스러움 덕분에 우리 사회가 지탱되고 있다는 자각과 함께 노동의 중요성을 오늘도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일(노동)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의미 등 다양한 노동관이 존재할 수 있다.

 

‘악의 평범성’으로 잘 알려진 독일의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 1975)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은 노동, 일 그리고 행위 (action)라는 실존적 조건을 통해 ‘개인사적 영역’을 넘어 서로 함께 살아가는 ‘공적 영역’의 존재가 된다”라고 주장한다.

 

노동에 대한 종교적 관점

 

대부분 현대 주요 종교들은 인간이 의식주를 해결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 의미뿐만 아니라 정신과 육체의 유기적이고도 역동적인 관계라는 점에서 노동을 중시한다.

 

불교 용어에는 노동(labour)이라는 말과 완전히 일치하는 단어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활동, 행위, 일, 작업, 가업이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한 ‘업(業)’이라는 단어가 일 (노동)의 뜻과 가장 유사하다고 알려지고 있다.

 

불교에서 출가한 사람 (승려)의 궁극적 목표는 열반의 성취이기 때문에, 노동은 그 자체가 곧 수행이며 종교적 목표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써 존재한다.

 

하지만 승려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는 자신과 타인을 위해 일할 것을 권장하는 이중적 사고 구조를 갖는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에게 일 (노동)이란 어떤 의미일까? 막스 베버는 근세 유럽의 자본주의 경제 발전에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적 노동관 및 직업윤리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직업 또는 일이라는 단어로 영어는 ‘vocation’, 독일어로는’beruf’라고 하는데 모두 사명, 소명을 뜻하기도 하며 켈빈주의 성경적 해석에서는 일 (노동)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의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서는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라고 말하고 있는데, 불교에서도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一日不作 一日不食)’라는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있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믿는 종교는 매우 다양하며, 열렬하게 자신의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믿고 있는 특정 종교가 참된 종교이며 진리라고 주장한다. 문화 인류학적으로 종교의 기원과 발전에는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미래의 정보화 사회에서도 인간의 노동은 존재할 것인가?

 

인공 지능, 빅 데이터, 사물 인터넷, 머신 러닝, 자동화 기술 등은 농업, 서비스업, 제조업 등 모든 산업부문에 폭넓게 적용되면서 노동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단순한 노동으로 더욱 많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서 인간 노동력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실업의 증가가 단순히 경기 변동의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노동 자체가 사라지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경고한다. 기술 혁명으로 경제생활의 모든 부문에서 기계가 급속도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 나가며,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화하고있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그의 저서 <노동의 종말, The End of Work>에서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은 일이 없는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하며, 젊은이들은 반사회적 행위를 통해 지신의 좌절감과 분노를 발산하고 있다. 또 노년층은 과거의 영광과 암울한 미래 사이에서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사회적 힘에 무력감을 느낀다”라고 말하고 있다.

 

기계는 작동할 뿐 일하지 않는다

 

여행이 제한될 줄을 예측하지 못했지만, 운 좋게도 나는 WHO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 확산을 펜데믹으로 선포하기 전, 즉, 각 나라들이 국경 봉쇄를 시작하기 5개월 전에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일했던 직장의 옛 동료들도 만날 겸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 암 연구소를 방문했다가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내가 연구소를 떠나기 15년 전 30여 명이 일하던 팀에 고작 5명만 남아 그때 하던 종류의 일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반갑게 나를 맞이한 옛 동료는 그 당시 30여 명이 일했다는 사실도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년 평균 1.3명씩 15년 동안 아주 서서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일의 규모는 더 커진 듯이 보였으나 개개인이 하던 일들은 대부분 인공 지능과 자동화된 실험 전문 대행 회사에 수주(out sourcing)를 주고 있었다.

 

그때,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인간의 노동은 산업 현장에서 완전 자동화를 거치면서 자율적인 최적화 시스템의 일부로 내몰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면서, 사라진 옛 동료들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호텔에 돌아와서 TV를 켜니 독일 정치인들이 '기본소득'에 대하여 치열한 논쟁을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인간만이 일한다. 기계는 작동할 뿐 일하지 않는다. 일은 인간이 몸으로 살아나가며 자신에게 의미 있는 미래를 성취하는 과정이다"라고 한 말이 내 마음 안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Nur Menschen arbeiten. Maschinen funktionieren, aber arbeiten nicht. Arbeit ist der Prozess, durch den Menschen ihren Körper nutzen, um eine für sie bedeutsame Zukunft zu erreichen.

 

인간이 기계 작동 시스템의 일부로 남겨진다면?

 

기계를 만든 목적은 원래 인간의 수고를 덜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4차 산업 혁명의 핵심 기술인 인공 지능, 빅 데이터, 사물 인터넷, 머신 러닝의 세상에서 무한대로 축적되는 빅 데이터에 담긴 의미를 과연 인공 지능의 도움 없이 인간의 생물학적 능력만으로 안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어떤 생명공학자들은 인체의 변화와 증강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새로운 인류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정체성을 존엄하게 여기는 다른 한편에서는 생명 공학의 남용은 새로운 생물학적 계급을 낳으며 인류를 디스토피아로 몰고 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이미 인간이 할 일이 별로 없는 세상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기실현을 하는 존재라기보다는 기계의 작동 시스템의 일부로 남겨지게 될지도 모른다.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기계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인간의 미래에 대해 미국의 문명 철학자 루이스 멈포드 (Lewis Mumford, 1895 - 1990)는 다음과 같이 예상했다.

 

“인간은 미래에 주체적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며 기계를 위한 부속물로 전락하여 기계의 일부 기능을 보조하거나 비인간화된 집단 조직의 이익을 위해 통솔을 받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라고. 이런 상황을 러시아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자예프 (Nikolai Berdyaev, 1874-1948)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사람이 기계에게: 나는 내 생활의 편리를 위해 또한 내 힘을 증진 시키기 위해서 너를 필요로 한다.

 

기계는 대답한다: 나는 네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 네가 없어도 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 네가 완전히 없어져 버려도 나는 아쉬운 것이 없다.

 

인간의 몸은 기계나 고깃덩어리가 아니다

 

COVID-19 때문에 촉발된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는 실업(失業)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의 위기를 “실업은 한 개인의 불행에 서 머물지 않고, 곧바로 국가의 위기로 이어지며 전 세계로 확산된다”라고 진단하고 있다.

 

실업이 양산하는 사회 문제와 관련, 유타 대학 (University of Utah)의 경제학과 교수 리차드 포올레스 (Richard Fowles)와 메리 머바(Mary Merva)는 “미국에서 실업률이 1% 상승하면 살인(6.7%), 폭력 범죄(3.4%), 그리고 경제사범 (2.4%)이 증가했으며, 실업자 증가로 인한 사회적 긴장은 범죄와 폭력을 급증시킨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약 2500년 전 붓다 (부처)가 전륜성왕사자후경 (轉輪聖王獅子吼經)에서 “빈곤이 절도, 거짓말, 폭력, 증오, 잔혹 등과 같은 부도덕과 범죄의 원인이다”고 언급된 점은 매우 흥미롭다.

 

결국 인간은 일을 통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공적 영역이 사라지고 빈곤에 빠지면 인격이 황폐해지는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한편,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인간 사회는 4가지 계급으로 분화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즉 0.001%의 1계급은 google, Twitter, Facebook 등 소셜 플랫폼 기술을 소유한 기업인이며, 0.002%의 2계급은 인기 정치인, 연예인과 같은 스타들이다. 또 3계급은 사회 전반의 일자리를 대체할 인공 지능이고, 4계급인 프레카리아트 *(precariat) 계급은 단순 노동에 종사하는 나머지 99.997% 인간이다. 그런데 99.997% 인간이 인공 지능의 지시를 받는 세상에서,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는 근거는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프레카리아트 (precariat): 이탈리아어로 ‘불안정한, precario'라는 단어와 독일어로 ‘무산 계급’을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 (proletariat)의 합성어다. 만성 저임금·저숙련 노동에 시달리는 ‘불안정 무산계급’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 퐁티 (Maurice Merleau-Ponty, 1908-1961)는 “인간의 몸은 한낱 물체나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삶을 살아내야 하는 활동의 주체”라고 강조한다. 인간의 몸은 기계와 같이 다른 부품으로 대체 가능한 객체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동적인 삶을 구현하는 활동성의 주체로 남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의지적, 인지적 활동은 바로 몸에서 발원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나라도 인간도, 너라는 인간도, 그들이라는 인간도 모두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 진정 인간이 할 일은 별로 없는 미래로 향하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 과학자들이 종교인들보다 더 나은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모든 과학적 원리들을 알아내었을 때, 인간은 그만큼 더 행복해질까? 라는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과학적 모든 원리를 알아낸 미래의 인간은 지금 우리와 같은 인간일까? 아니면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일까?〠 <계속>

 

 

양지연|분자생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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