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보이스 ‘세례요한’

우명옥/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3/30 [09:21]
▲ 세례요한이 목잘려 죽은 장소로 알려진 마케루스 성채.   


어느 덕망 높은 집이 있었다. 아버지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지체 높은 가문이었고, 어머니는 기도하시는 분이셨다. 많은 이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는 이 집에 한 가지 고민이 있다면 바로 아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이집 사모님이 아이를 갖게 되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늦둥이를 갖게 된 기쁨과 함께 충격을 받아서인지 아버지는 한동안 실어증을 앓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기대와 축복 속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장차 어떻게 될지 사람들의 궁금증 속에서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집에서 부모님의 사랑과 서포트로 편하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도 이 아이는 당연한 누림을 거부하고 조금 크자 집을 나가 밖에서 생활했다.

 

집에 있는 최고급 와규를 거부하고 들판에 있는 메뚜기를 잡아 먹었고, 당연히 입을 수 있는 제사장 옷 대신 거친 낙타털 옷을 입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강한 심령으로 자라났고, 이 아이가 광야에서 외친 소리는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이 아이가 바로 세례 요한이다. 이름은 ‘요한’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이름 앞에 ‘세례’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세례요한의 닉네임은 ‘세례’ 말고 또 있는데 그것은 바로 ‘voice’이다.

 

시대의 보이스

 

세례요한이 ‘보이스’라는 것은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 아니고, 세례요한이 태어나기 훨씬 전 이사야 선지자가 붙여준 것이다(사 40:3). 이사야 선지자는 세례요한이 어떤 소리를 내는 보이스인지도 이야기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Prepare the way of the Lord, make his paths straight.

 

별명은 ‘보이스’, 그리고 그의 일은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하고 곧게 만드는 것’이다. 명문 집안에서 늦둥이로 귀하게 태어났지만 그가 하게 될 일은 결국 보이지도 않는 목소리로 사는 것이었다.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을 서포트하는 서브남이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서브남은 주인공과 비등한 외모와 조건을 갖추고, 또 여주인공을 좋아하지만 결국 주인공을 위해 희생한다는 공식 아닌 드라마 공식이 있다. 세례요한은 ‘목소리’라는 별명처럼 주인공의 등장을 소리쳐 외치며 주인공이 걸을 길을 준비하고, 철저하게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다가 써브남처럼 죽음을 맞이한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써브남인 것을 원망하거나 바꾸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주인공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하면서 써브남 본분을 다하였다.

 

보이스는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사람이 많은 곳일까? 아니면 사람이 없는 곳일까? 당연히 사람이 많은 곳에 소리가 있다. 그리고 내가 말을 하고 싶을 때 사람들 많은 곳에 가서 말을 하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 세례요한은 사람들이 많은 시장이 아니라 광야에서 외쳤다고 되어 있다. 광야에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많지 않았을 것이다. 풀만 조금 있고 가끔 양이나 정말 지나가는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세례요한이 소리쳤다. 영어 성경을 보니 ‘crying’이라고 되어 있다. 조그맣게 말한 게 아니라 크게 외친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Turn away from your sins! The kingdom of heaven is near.”

 

우리에게 ‘보석’과 ‘보이스’ 중 어떤 것을 갖고 싶은지 선택하라면 당연히 보석을 고를 것이다. 만약 누가 될지 선택하라 해도 눈에 보이는 보석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보이지도 않는 보이스 같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보이스’가 된다면 방송국 같은 곳에서 말을 하는 ‘보이스’가 되고 싶지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소리치는 ‘보이스’는 정말 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것을 바로 세례 요한이 감당한다. 아무도 안 알아줘도,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울면서 외쳤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소리가, 발도 없는 소리가 사람들 귀에까지 울렸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소리를 사람들이 찾아왔고,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다. 하나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묵묵히 그 일을 감당하는 자에게 사람들을 보내 주시는 분이시다.

 

바른 말 보이스

 

우리는 ‘예쁜 말’과 ‘바른 말’을 혼돈할 때가 있다. 하지만 ‘예쁜 말’과 ‘바른 말’은 전혀 다른 말이다. 도둑질을 하는 누군가에게 ‘아저씨 힘내세요’라는 ‘예쁜 말’보다 ‘안돼요’라고 말하는 ‘바른 말’이 필요하다.

 

세례요한은 ‘예쁜 말 보이스’가 아니라 ‘바른 말 보이스’였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이 아니라 아프고 싫어해도 맞는 말을 하는 보이스였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가져오라”

 

만약 이런 말을 목사님께 직접 듣는다면 교회를 옮길 성도들이 많을 것이다. 바른 말이라도 이런 말은 듣기도 어렵지만 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시대의 ‘보이스’로 사람들 귀에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회개를 촉구하는 말을 하였다.

 

그는 ‘맞는 말 보이스’로 예수님 오시기 전 사람들 마음속의 길을 준비하고 곧게 하는 일을 하였다.

 

앞 페지이의 사진은 세례요한이 목이 잘려져 죽은 곳이다. 33살의 나이에 보이지도 않고 사라져 버리는 ‘보이스’로 살았지만 자신의 사명, 즉 예수님 오실 길을 예비하고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였다. 예수님은 이런 요한에게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마 11:11) 고 말씀하셨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금수저 가문이나 스팩을 보이게 쌓는 사람보다 보이지 않지만 꼭 해야하는 일을 감당하는 보이스 같은 사람일 것이다.

 

예쁜 말만 하는 서브남일지라도 아닌 것을 아니라 말해 주는 ‘바른 말 보이스’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보이스’가 우리 다음 세대에서 나오길 사갸랴처럼 간구(눅 1:13)해 보자.〠

 

우명옥|시드니한인장로교회 어린이부 전도사, 목회학 석사,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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