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론(救援論) VI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3/30 [09:29]

지난호에 이어 구원론의 논리적 순서 세 번째 단계인 회개에 대해 계속 살펴본다.

 

진정한 회개

 

구원에 이르는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속사람 (이성, 감정, 의지)에 역사하여 믿음과 후회(회개)를 일으킨다.

 

성령은 우리를 돌이키시고, 설득하시며 지배하신다. 구원에 이르는 후회는 이전의 우리 죄의 상태 전반에 걸쳐 반성하게 하고 부끄럽게 하는 동시에 우리 생각을 바꾸게 한다(눅 15:11-32).

 

이것은 자연인으로서는 전혀 경험해 볼 수 없는 그런 종류의 후회이다. 이것이 바로 회개(Metanoia)이다. 이 메타노이아(회개)는 단순히 옛 잘못을 뉘우치고 후회하여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의식의 변화’ ‘속사람의 근본적인 변화’를 말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기 자신, 죄에 대한 근본적이고 의식적인 관점의 변화(지성)가 일어나야 하고 뿐만 아니라 감정의 변화(정서)도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결정의 변화(의지)가 따라올 때에 구원에 이르는 진정한 ‘회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생각(지성)뿐만 아니라 감정(정서)과 결단(의지)에 이르게 하는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벌코프에 의하면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서 나오며, 하나님에게로의 헌신의 삶을 살도록 일으킨다”(고후 7:10)고 강조한다. 이는 성령에 의해 죄인의 의식생활에서 일어나는 변화이고, 이전의 삶의 방향이 현명치 못하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생의 전 과정을 수정하는, 생각과 가치관, 욕망과 의지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밀라드 에릭슨은 회개를 믿음과 관련하여 정의한다. “회개를 통하여 자신의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과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가는 행동이다.”

 

회개가 죄로부터 돌이킨다는 의미에서 회심의 부정적인 차원을 말한다면 믿음은 그리스도의 약속들과 은혜를 견고하게 붙잡는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밀라드 에릭슨의 말처럼 회심, 전향(conversion)은 회개(repentance)와 믿음(faith)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즉 회개(repentance)와 믿음(faith)은 개념상 구분할 수 있지만 회심, 전향이라고 하는 한 사건 안에서 분리할 수 없는 요소로 만난다. 그래서 에릭슨의 말처럼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회심을 이야기할 때 회개와 믿음을 분리해서 말하지 않는다. 회개가 과거와 관계하는 것이라면 믿음은 미래와 관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회심에서 사람의 일은?

 

앞에서 본 것처럼 이미 회심의 주도권도 하나님께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회심이 분명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이고 하나님께서는 회심에서도 주도권을 가지시고 초자연적으로 일하시고 계심을 보여 준다(시 85:4; 렘 31:18; 행 11:18; 딤후 2:25).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회심하도록 하시지만,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게 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성경은 또한 회심에서 인간이 능동적으로 임하는 것 또한 보여준다. (사 55:7; 렘 18:11; 겔 18:23,32; 겔 33:11; 행 2:38; 행 17:30).

 

중생에서는 인간은 전적으로 수동적인 입장에 있지만, 회심에서는 인간은 협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회심의 조성자이지만 인간은 이 사역에 협조하므로 참여하는 것이다. 중생은 전적으로 성령께서 인간의 협조 없이 독자적으로 행하시는 사역이다. 그러나 회개에 있어서 인간은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다.

 

물론 자발적으로 협력하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은 많은 곳에서 인간이 회심의 사역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을 예증하고 있다(사 55:7, 렘 18:11, 겔 18:23, 32, 33:11, 행 2:38, 17:30). 물론 이러한 협력조차도 인간 안에서 먼저 역사하시는 성령의 선행적 사역에서 기인함을 알아야 한다.

 

회개와 믿음과의 관계

 

회개가 먼저인가? 믿음이 먼저인가? 여기에는 학자들마다 이견들이 있어 왔다. 어떤 학자는 회개가 믿음보다 먼저 온다고 주장한다.

 

“바로 회개가 곧바로 구원받는 믿음으로 인도되기 때문이고. 이 구원받는 믿음은 의롭다 칭함을 받는 조건이며 도구이다.”라고 설명한다.

 

루터는 그의 95개조 반박문에서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생활 전체가 회개가 되기를 원하셨다”고 강조하면서 회개를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칼빈은 믿음이 회개보다 앞선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 제3권 3장의 제목을 “믿음에 의한 우리의 중생: 회개”라고 하고, 제목을 설명하기를 ‘회개는 믿음의 열매이다.”라고 하면서 믿음이 회개보다 앞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회개는 끊임없이 믿음을 뒤따라야 할 뿐 아니라 믿음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이 점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명확한 사실이다. …… 그러한 사람은 회개의 능력을 결코 알지 못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회개가 먼저인가? 믿음이 먼저인가? 회개와 믿음 사이에서 어떤 것이 먼저 오는가 순서를 구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회개와 믿음사이에 어느 것이 먼저 오는지 말할 수 없다.

 

논리적인 차원에서도 그렇고 인지적인 차원에서도 둘 사이의 순서를 구분한다는 것은 많은 학문적 논쟁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회개와 믿음의 순서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보다 회개와 믿음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분명 회개가 믿음과 구별되지만 이 두 가지는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공동체 회심

 

개혁주의 전통에서 가르치는 회심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다루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짐 월리스는 그의 책 ‘회심’을 통하여 진정한 회심은 개인적인 회심의 차원을 넘어서야 하며, 회심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머물게 하고 좁은 의미의 영적인 차원에 국한하여 가르치고 적용하는 모습은 성경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고든 스미스도 그의 책 ‘온전한 회심 그 7가지 얼굴’을 통하여 회심이야말로 진정한 기독교 신앙을 검증하는 기준으로 제시한다. 회심이야말로 교회를 위한 기초요 사회와 세상의 변화를 위한 소망의 근거로 보고 있는 것이다.

 

성경 요나서가 보여주는 것도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받고 공동체적인 회심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 등 청교도들도 무엇보다도 회심을 강조한 것을 교회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들은 회심을 진정한 기독교 신앙을 검증하는 기준으로 인식했다. 개인의 온전한 회심은 이웃과 사회와의 바른 관계들을 맺을 뿐 아니라 교회와 세상에 진정한 부흥을 가져오게 하기 때문이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ACC(호주기독교대학) /ACT 교수

▲ 주경식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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