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비서실장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4/26 [15:53]
▲ 김대중은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이다.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났고, 제6·7·8·13 1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5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대통령 재임 중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사진제공=국민일보>    


이미 이십여 년이 지난 오래 전의 일이다. 법정에서 검사측이 제시한 고소장을 보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고소장에는 개인들이 사용하는 막도장이 찍혀 있었고 그 안에는 ‘김대중’이라는 현직 대통령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내가 재판장에게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이렇게 고소했다는 걸 정말 못 믿겠습니다. 그런 분이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고소가 그 분의 진정한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국회의원 김홍신을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한 내용이었다. 한 연설회장에서 ‘김대중은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다’라고 한 발언 내용을 문제 삼았었다. 검찰이 기소를 하고 재판이 열린 것이다. 고소장이 진정하게 작성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고소인을 소환해 확인하는 것이 일반적인 재판관례였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이 자리에 증인으로 나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법적인 원칙을 말한 것이다.

 

“에이, 어떻게 현직 대통령을 증인으로 부릅니까?”

 

재판장이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이해는 되지만 법적인 원칙과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변호사의 임무라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비서실장이라도 나와서 정말 김대중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고소했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다음 재판기일에 고소 당시 비서실장을 했던 사람이 증인으로 나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김정일도 용서하고 끌어안은 분입니다. 또 고문을 당했어도 가혹한 행위를 한 그들을 용서한 분입니다. 국회의원 한 사람이 연설회장에서 한마디 한 걸 가지고 개인 자격으로 고소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고소한 게 사실입니까?”

 

내가 증언대에 앉은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그는 안절부절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고소장은 비서실에서 작성한 게 맞죠?”

 

“그렇습니다.”

 

“도장을 파서 찍은 것도 비서실에서 한 게 아닙니까?”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소장을 접수시키는데 대통령의 구체적인 지시나 승낙이 있었습니까?”

 

“.........”

 

그는 대답하지 못하고 당황해 있었다. 초조해서 그런지 입 가장자리에 바닷가의 게처럼 하얀 거품이 맺히고 있었다. 그가 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았다.

 

“대답을 하지 못하시는 걸 보면 대통령의 지시나 승낙이 없었는데도 비서실장이 고소장을 작성하고 막도장을 찍어 과잉 충성으로 고소한 걸로 봐도 되겠습니까?”

 

그는 순간 자신이 올가미에 얽히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아닙니다. 지시를 받고 고소를 한 겁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국회의 청문회를 보면 국회의원들이 당당하게 청문의 대상자들에게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한다. 국민의 대표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멋진 모습의 하나라고 생각을 했다.

 

▲ 김대중은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이다.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났고, 제6·7·8·13 1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5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대통령 재임 중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사진제공=국민일보>    


나는 법원의 재판정에서 변호사가 그 상대가 누구이든지 정당하게 신문을 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모습이 또한 전문가의 멋이고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촛불 혁명 후 박근혜 대통령과 그 정권의 국정원장의 적폐를 판단하는 법정에서였다.

 

국정원장을 신문하고 서면으로 대통령에게 질문을 했다. 대통령은 구치소에서 법정에 증인으로 나오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대통령에게 따지는 질문서를 보냈다. 본인이 진술을 거부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억울한 부하들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서는 의사표시를 해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의무가 아니겠느냐고.

 

재판을 함께 받고 있던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은 자신에게는 ‘지존’이었다고 말했다. 봉건시대의 용어인 ‘지존’이란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그에게 국민으로서 대통령을 존중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같은 시대를 살아온 내 또래의 여성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대답해 주었다.

 

나의 조상은 세조에게 거슬리는 행동과 말을 하고 산으로 들어가 이백 년을 숨어 살던 역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도망을 하면서도 ‘선한 일을 했는데 처벌한다면 달게 받을 것이오’라고 글을 써 보냈다. 그 유전자가 핏속에 들어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엄상익|변호사, 크리스찬리뷰 한국지사장

 

                           ▲ 엄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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