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양지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5/25 [15:43]

“심리를 조작하는 사람들은 그 조작 대상의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 증오, 불안 및 갈등의 심리를 이용, 원하는 행동을 끌어낼 수 있다.” - 파블로프의 가설 -

 

▲ 1995년 판 UBD 시드니 지도책    

 

나는 집에서 물건들을 정리하다 더는 쓰지 않는 1995년 판 지도책(UBD Australia, scale 1:1,785, 000 maps of major cities & towns)을 발견하고, 26년 전 GPS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지도만 보고 목적지를 찾아갔던 때가 떠올랐다.

 

운전 중 옆에서 인간 네비게이션 (아내)이 지도를 읽어주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하곤 했지만, 간혹 같은 지도를 보다가 다투기도 했는데, 그때는 보통 아내가 알려주는 방향과 반대로 가는 경우였다.

 

요즘은 네비게이션 덕분에 운전이 한층 수월해졌지만, 지도를 외우거나 방향을 판단할 필요가 줄어들어 오히려 두뇌가 퇴화되어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우리는 생각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점점 덜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으며,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인터넷 플랫폼 기술이 어떻게 인간의 뇌를 독점해 지식과 사상, 프라이버시와 문화를 조작하고 파괴할 수 있는지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 플랫폼을 장악한 거대 기업만이 인간의 심리를 조작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라는 사유 체계 속에 숨겨진 심리 조작

 

인류의 발달 단계와 함께 진화해 온 종교는 국가가 형성될 시기에 사회 정치적 질서를 정당화할 수단이 되었지만, 고대인들은 국지적 신을 믿었으며 지역적이고 배타적이었다. 인류 전체를 개종시키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보편적이고 선교적인 종교는 기원전 1000년에 와서야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들의 출현은 국가, 화폐와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의 하나였다. 그런데, 서로 다른 다양한 인간 집단들을 신의 구속 아래 묶어두려면, 추가적인 속성이 필요했다. 그것은 믿음이라는 사유 체계 속에 숨겨진 심리 조작이다.

 

다양한 심리 조작기술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 이미 깊숙이 스며들어 있어 쉽게 느낄 수 없는지도 모른다. 심리 조작기술 그 자체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 양날의 칼이다.

 

▲ 차량에 장착된 네비게이션   ©Brecht-Denil     

 

무모한 전쟁에 젊은 사람들을 죽음의 전쟁터로 내보낼 때, 마라톤 선수나 양궁 선수들에게 승리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심리학이나 정신 의학을 응용한 고도의 심리 조작술이 적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사이비 종교나 특정 집단에 자아를 빼앗기고 정상적 삶을 포기하거나 불법 다단계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을 포섭하러 돌아다니는 것도 심리조작의 결과일 수 있는데 그렇다고 이들이 특별히 타인의 심리 조작에 잘 걸려드는 의존성 인격 장애자는 아니다. 심리 조작은 보다 더 교묘하고 다양한 요인들의 복합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심리 조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나는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파블로프의 개'로 알려진러시아 태생의 생물 생리학자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를 배운 적이 있다. 내용은 종을 치고 난 후 개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반복한 후, 나중엔 먹이 주는 것 없이 종만 처도 개의 침샘에서 침을 분비하는 반응 (조건반사)이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다.

 

제정 러시아에서 공산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시기, 생리학 실험 및 연구에 매진하던 파블로프는 어느 날 공산혁명을 주도하는 혁명 정부에 불려 갔다.

 

파블로프의 개에 관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던 레닌은 연구 보고서를 요청했고, 읽고 난 후 흥분된 감동 속에서 “우리 혁명의 성공은 이제 확실하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스탈린 시대에는 파블로프 이론을 이용, 사람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고 반복적인 학습을 통한 세뇌 기술이 완성되었는데, 죽음 직전까지 가는 극한 상황 속에서 피 실험자에 반복적으로 주입된 내용은 실험이 끝나고 나서도 피실험자는 이것을 사실로 인식하며, 이렇게 인식된 사실은 실험 당시 경험했던 극한 상황보다 더 극심한 상황을 경험하기 전에는 절대 그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러시아의 생리학자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프(러시아어: Иван Петрович Павлов, 1849 -1936)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화학과 생리학을 전공하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임피리얼 의학 아카데미에서 생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주된 연구 분야는 소화 기관, 수면 및 본능에 관한 것이었으며, 1904년 노벨 생리 의학상을 수상했다.

 

러시아 공산혁명으로 레닌이 정권을 잡았지만 그는 일평생 공산주의를 반대했다. 사회주의자들이 세계 적화 전략을 위한 인간 개조에 그의 이론을 활용했으나, 현재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종교 및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왜 그들에게 휘둘리는가?

 

심리 조종자들은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기 위해 의심과 두려움 또는 죄의식이라는 심리적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실로 다양한 기법을 구사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구제를 확신하고 불멸을 약속하거나, 사랑받고 싶어하며 배신을 두려워하는 심리와 자기 판단을 불허하고 의존 상태를 유지하도록 한다.

 

그러나 구제를 확신하고 불멸을 약속하는 것은 삶에 희망을 주며, 사랑받고 싶어 하는 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해 줄 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신앙을 지닌 사람이 평온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어떤 때라도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는 희망이 약속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존중되는가에 달려있다. 사이비 종교처럼 심리 조작 대상의 주체적인 삶과 자립을 막아 지배하는 자만이 의사 결정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만 선한 목자를 따르는 착한 양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위험하고 건강하지 않은 집단이다. 왜냐하면, 종교적 딜레마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도 인간의 조건을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사이비 교단이나 독재 국가의 세뇌(洗腦) 교육 방법으로 알려진, 상습적으로 시행되는 자아 비판이나 상호 비판은 자기 연민에 철저하게 상처를 입히고 자기 부정을 강화한다.

 

이런 과정이 의도하는 인식 체계 (스키마, Schema)의 변화는 나 자신은 아무 가치도 없는 초라한 존재이지만 위대한 지도자나 그들의 숭고한 이념을 따른다면, 멋진 의미가 있는 삶을 살게 된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구세주는 일상의 현실적 삶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는 존재라기보다는 구원을 약속함으로써 희망을 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희망을 얻으려면 약속한 구원을 믿어야만 하는 심리학적 기작과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이분법의 함정이 숨겨져 있다.

 

어떤 사이비 종교나 특정 집단의 리더가 심리 조작 대상을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든 경우일지라도, 완전한 심리 조작에 걸려든 사람들은 재산도 육체도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행위가 타인에 의한 통제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런 심리 조작술이 당연히 비난받고 제재되어야 할 마땅한 이유는 한 개인이 성취해야 할 자립을 봉쇄하고 방해하며 착취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상이 갈수록 더 악해지고 있으며 타인을 이용하려는 인간들이 주변에 차고 넘친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그리고 신뢰할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으려면 또 속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사람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하며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살피라는 조언을 듣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나부터 먼저 돌아볼 일이다.〠

 

양지연|ANU 석사(분자생물학), 독일 괴테대학 박사(생물정보학), 카톨릭의대 연구 전임교수 역임

▲ 양지연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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