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산역 동네에 살던 도인

엄상익/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6/28 [12:20]

1976년 봄경, 단양교회에서 고영근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부인의 묘지를 천 평이 넘게 조성하고 오백만 명이 넘는 국민을 동원해서 참배하게 하는데 이런 것은 개인숭배입니다.”

 

그 사실이 긴급조치 구호위반으로 기소되어 그는 법원에서 징역 칠 년을 선고받았다. 그 후 그가 석방되어 다시 강진에 있는 교회에서 이런 설교를 했다.

 

“박정희와 김일성은 한 사람은 남침 위협 또 한 사람은 북침 위협이라고 하면서 평화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악용하고 남북의 슬픔과 아픔을 이용하여 정권연장을 획책했습니다.

 

이들이 회개하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만일 박 정권이 이 큰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가 한 말이 긴급조치 위반이 되어 그는 다시 장흥법원에서 징역 육 년을 선고받았다. 정권은 그를 시국사범으로 분류해서 앞으로 정치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복음만 전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만 쓰면 석방하겠다고 회유했다.

 

“박정희가 나를 고생시켰으면 그가 내 앞에 와서 빌어야지 누구더러 각서를 쓰란 말이요?”

 

그의 대답이었다. 그해 말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그가 석방됐다. 그는 광야의 세례 요한같이 정권에 대해서 할 말을 다 하는 사람이었다.

 

1996년 가을의 어느 날 육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던 그가 나의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왔었다. 내가 교도소 안의 인권문제를 세상에 폭로하면서 외롭게 싸우고 있을 때였다. 그는 나를 위로해 주면서 이십만 원이 든 봉투를 내게 슬며시 전해 주었다. 뭔가 모를 따뜻함이 전해져 왔다.

 

그를 살펴보니까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것 같았다. 지하철 까치산 역 부근의 언덕 위에 있는 단독주택의 철문 옆 주차장인 공간을 개조한 듯한 방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그를 찾아가 여러 가지 얘기를 들었다.

 

“북아현동 교회에서 목사 노릇을 했는데 그런 일반 목회는 내 소명이 아닌 것 같더라구. 그래서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성직자들이나 신도들에게 말을 해줬어요. 교회가 땅을 사고 큰 건물이나 지으려고 하는 건 바른 길이 아니라고. 그리고 예수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려고 했는데 교회마다 인간이 만든 수많은 율법을 만들어 사람들을 얽매려고 하잖아.”

 

나는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병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을 두고 꼭 예배당에 가야만 그곳에 하나님이 있는 게 아니었다. 하나님은 새벽 여명이 비치는 병원의 기도하는 창가에도 계실 것이 틀림없었다.

 

주일마다 대리석과 유리로 된 건물에 출석하고 헌금을 내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 같지 않았다. 하나님은 주시려고 하는 분이지 받는 걸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받는다면 우리들의 상한 마음이나 감사하는 마음을 좋아하실 게 틀림없었다.

 

고영근 목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교회 신도가 늘어나고 헌금을 많이 내라는 그런 말들을 내가 하지 않으니까 점점 초청하는 교회가 줄어 들더라구. 자기네 이해관계에 맞지 않으니까 당연한 거지.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글로 써서 책으로 냈지.

 

내가 이 방에서 원고를 쓰고 편집을 해서 인쇄소로 넘겼어요. 그렇게 책을 만들어서 내가 곳곳에 직접 보내왔어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는데 이미 내가 낸 책이 마흔네 권이야.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몰라.”

 

방 구석에 있는 철제 캐비닛 책장 안에는 그가 만든 책들이 도열해 있는 것이 보였다. 그에게서 나는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의 용기있는 행동들이 살아있는 설교였다. 그는 바른 말을 하고 정보기관의 지하조사실에서 고문을 받았다. 그리고 깊은 감옥의 사상범들을 모아놓는 곳에서 징역생활을 하기도 했다.

 

십자가를 직접 지는 행동들이었다. 성경은 바른 말을 하다가 목이 잘려 쟁반에 담긴 채 하룻밤 연회의 장난감이 된 광야의 세례요한을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사람이라고 하고 있다. 얻어맞고 침뱉음을 당하고 사형대인 십자가 위에 올라 처참한 죽음을 당한 예수는 하나님이었다.

 

고영근 목사, 그분도 하나님의 시각에서 위대한 사람이 분명한 것 같았다.〠

 

엄상익 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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