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부럽습니다
 
권순형/크리스찬리뷰
▲ 금년말 은퇴를 앞둔 최삼경 목사(빛과소금교회)의 논총집 ‘사십’(40)이 발행되었다. 본지 권순형 발행인은 ‘호주 기독 언론인이 본 최삼경 목사의 이단 사역’에 대해 논총집에 기했다.               © 크리스찬리뷰


이번에 최삼경 목사(빛과소금교회)의 목회 사역 은퇴에 즈음하여 ‘최삼경 목사 은퇴 기념 논총’을 출판하게 된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고 축하할 일이다.

 

최삼경 목사는 한국교회에서 인정받은 목회자이자 이단 사역자였다. 최 목사는 평소에 “나는 이단 연구가로 목회를 하지 않고 목회자로 이단 연구를 했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이단 연구가라기보다는 전형적인 목회자였다.

 

빛과소금교회는 3천여 명의 성도들이 모이는 초대형교회이고, 그는 바쁜 목회에 매인 몸이었다. 오직 교회와 목회를 모토로 삼아, 이단 연구는 물론 목회에 자신의 전부를 던져 살아온 사람이었다.

 

최삼경 목사는 전북 부안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일찍이 복음을 받아들인 외할머니와 그 믿음을 함께하신 어머니에게서 자랐다. 어머니는 평생을 교회를 섬기고 기도하는데 생명을 걸었던 분으로 알려져 있다. 고향 교회 마룻바닥에는 기도하며 흘리신 어머니의 눈물 자욱이 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유교적인 분위기의 집안에서 살림하면서 8남매의 뒷바라지를 했다. 평생 어머니는 가난과 질병과 싸우면서 눈물로 기도하다가 일찍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한다. 최 목사는 어머니의 믿음을 보면서 자랐다. 목회자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부터 어머니의 기도와 강요로 목사가 되겠다고 서슴없이 말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성령 체험을 했다.

 

총신대학교에 1969년 입학, 1980년 총신 신대원을 졸업했으며 예장 합동측 전서노회에서 1981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미국 풀러 신학교에서 석사 코스를 수료하고 1984년 귀국, 1985년 예장 통합측 <빛과소금교회>에서 담임으로 청빙을 받았다. 그러면서 장로교신학대학에서 청목의 모든 과정을 수료하고 통합측 목사가 됐다.

 

샌프란시스코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카자흐스탄국립대학에서 명예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동생이 구원파에 빠진 것을 계기로 1984년 12월에 구원파 교주에게 공청회를 제안했다가 그 자리에서 고 탁명환 소장(현대종교 설립자)을 만나면서 이단 연구를 시작하였고, 현대종교 1985년 1월부터 1987년 12월까지 3년간 최 목사의 글이 매월 현재종교의 메인 토픽이 되었다.

 

이제 한결같은 전도자의 길을 갔던 최삼경 목사는 40여 년간의 목회 사역을 마감하고 정년 은퇴한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권고를 받아 지난 70여 년 삶의 여정을 정리한 ‘최삼경 목사 은퇴 기념 논총’을 집필하면서 ‘호주 기독교 언론이 본 최삼경 목사의 이단 사역’에 대해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기쁨으로 감당하게 되었다.

 

최삼경 목사를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나는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가 나의 자랑일 수 있는 것은 나이가 동갑이고, 그동안 쌓아온 우정의 동행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지칠 줄 모르고 타오르는 창조적 열정과 긍휼로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모습이 너무나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김포에서 군(공군)생활을 했다. 전역을 앞둔 1973년도 후반이었다. 김포지역 목회자 세미나를 내가 근무하던 공군부대 기지교회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그날 나는 김포공항에 나가 강사로 초청된 신흥종교문제연구소(현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 소장과 김포지역 목회자들을 기지 버스에 태우고 교회로 돌아와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한국의 이단 현황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이날 강의를 흥미롭게 듣고 탁 소장에게 내가 11월 말에 제대하는데 제대 후 당신의 사역을 사진으로 돕겠다고 약속했다.

 

탁 소장은 을지로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제대 후 나도 인근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서 자주 탁 소장을 만날 수 있었다. 통일교 문선명, 신앙촌 박태선, 재림예수 구인회, 에덴성회 이영수, 대성교회 박윤식, 하나님의 자녀들(일명 섹스교) 크리스탈 최, 하레크리슈나교 등 많은 이단 단체들을 탁 소장과 함께 취재했다.

 

1987년 11월 말 나는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왔다. 그리고 1990년 1월 호를 창간호로 시드니에서 ‘크리스찬리뷰’를 발행했다. 호주에 있는 최초이고 유일한 기독교 언론이자 잡지라는 사실만으로 자부심을 가졌고, 호주 한인사회와 한인교회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빛과 소금’의 사명을 충실히 다하는 기독 언론으로 평가받아왔다.

 

그 여세에 힘입어 본지와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월간 현대종교(발행인 탁명환)와 자매결연을 맺고 탁명환 소장을 본지 편집 고문으로 추대했다. 국내외 이단을 척결하고 올바른 신앙을 지켜가고자 하는 취지에서였다. 급기야 1992년 5월 탁명환 소장을 초청하여 호주 순회 ‘이단종파특별강연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강연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매일 1천여 명 이상이 참석, 준비된 좌석이 모자라 통로에 의자를 놓을 정도였다. 강연회는 이단에 대해 경각심을 높였던 매우 시의적절하고도 필요한 집회였다고 본사에 감사와 격려의 전화가 그치지 않았다.

 

그 후 탁명환 소장은 애석하게도 1994년 2월 대성교회(현 평강제일교회) 신도(임홍천) 테러로 노상에서 살해당했다.

 

최삼경 목사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현대종교’를 통해서였다. 최 목사는 당시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 후 퇴계원교회(현 빛과소금교회)에 부임한 1985년부터 현대종교에 이단 관련 기사를 계속 연재해 왔는데 이때는 이름만 들었지 직접 만나지 못하고 호주로 이민을 온 것이다.

 

호주에도 한국에서 생겨난 각종 이단들이 교민사회에 침투해 오고 있었다. 2004년 중반에는 ‘크리스천투데이’라는 신문이 시드니에서 발행되었다. 그런데 이 신문의 설립자가 통일교 출신의 장재형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당시 예장통합 이단대책위원장인 최삼경 목사와 연결되어 많은 자료를 받기도 하며 이단 사역을 협력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2006년 8월 크리스찬리뷰 지령 200호를 맞아 최삼경 목사(당시 한기총 이단사이비문제 상담소장, 빛과소금교회 담임)를 강사로 초청하여 ‘이단사이비 비판 호주 순회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때 최 목사를 실제로 만나게 된 것이다.

 

▲ 호주를 방문한 최삼경 목사 부부(가운데)와 본지 김명동 편집인 부부(왼쪽), 권순형 발행인 부부(오른쪽, 2006. 8)     © 크리스찬리뷰

 

처음 만난 인상은 강하고 패기가 있었으며 상당히 깐깐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리고 유려한 언변이 인상 깊었다. 이후 학연, 혈연, 지연 등 어느 부분에서도 겹치는 곳이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그가 살아온 인생 여정과 그가 이룩한 크고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되었다.

 

서로 믿지를 못하고 서로에게 상처받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 각박한 세상에서 마음 터놓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동료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서로의 고민도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이단사역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그의 군더더기 없는 성격과 외모를 꼭 닮은 그의 명쾌한 글을 읽으며 공감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목회자로서 이단사역을 하면서도 언제나 평상심을 잃지 않는 것에 대해선 경이의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나 같으면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짜증이 났을 법한데도 언제나 한결같은 표정과 말투로 세상을 살았다.

 

하나님은 필요한 시기에 최 목사를 호주로 보내셨다. 그의 참신한 강의를 듣고 방황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얻고, 훗날 각 교회에서 큰 동량으로 봉사하고 있는, 그 공로는 적지 않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2008년 7월에는 최삼경 목사와 동행하여 남윤우 목사(보타니-마스콧장로교회)를 본지 특파원 자격으로 한기총 이대위 위원들과 함께 ‘크리스천투데이’ ‘예수청년회’ 설립자인 장재형 목사의 이단(재림주) 의혹 조사차 홍콩에 파견했다.

 

능력있는 사역자

 

내가 아는 최삼경 목사는 ‘능력 있는 사역자’이다. 그는 균형 잡힌 목회자였고 이단사역자였다. 이 두 가지를 갖기란 매우 어렵지만, 그는 두 가지를 겸비한 아주 드문 예였다. 그렇지만 그의 관심사는 이단연구보다 ‘교회’와 ‘성도’들에 집중돼 있다.

 

▲ 서울 연지동 여전도회관에서 열린 크리스천투데이 설립자 장재형 측 이탈자 기자회견(2008. 9)     © 크리스찬리뷰

 

그는 “나는 이단연구가로서 이단문제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로서 이단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다”고 늘 말해온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목회자는 영혼을 살리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단연구도 이단자들을 죽이려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된다. 교회와 영혼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줄기찬 그의 주장이었다.

 

최 목사는 자기를 모함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설교가 사나워지더란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더니 분노와 적개심은 사라지고 설교가 부드러워지더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목회자는 분노와 적개심을 갖고는 살지 못한다는 것. 종교개혁자 루터처럼 어머니의 마음, 어머니의 심정이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이처럼 이단 대처 사역도 ‘진짜 엄마’의 심정으로 해야 한다고 늘상 말해왔다. 영혼을 살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단연구를 해야지 상대를 죽이려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빛과소금교회>는 최 목사가 부임하기 전 2~3년마다 한 번씩 목회자와 성도 간에 멱살잡이까지 하며 쫓아내고 쫓김 당하는 ‘흑역사’가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통일교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목회자까지 이 교회를 담임한 적이 있었다. 이런 교회에 부임해 무려 37년을 목회했다.

 

최 목사가 <빛과소금교회>에 부임했을 때 교인은 불과 200-300명이었다. 현재는 3천여 명으로 대형교회가 되었다. 1990년에는 교회당을 건축하여 입당할 수 있었고 차례대로 교육관을 증축하고 청소년 비전홀, 선교관, 그리고 부교역자 사택 등을 건축했다.

 

이 모든 게 그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설명하면서도 어머니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의 실력으로 엮은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최 목사로부터 이단성을 지적 받은 사람들이 <빛과소금교회>로 5백 명, 1천 명, 많게는 2천 명까지 불만을 품고 쳐들어 시위를 하였었고, 한 단체는 16주간(약 4개월 동안) 매주 찾아와 시위를 하고 경찰이 100-200명씩 동원되어 막아내기도 하였다.

 

▲ 빛과소금교회로 몰려와 심야기습 시위 중인 은혜로교회(신옥주 목사) 신도들.(2015. 1) ©교회와신앙   

 

그 사람들이 온 아파트를 들쑤시고 다니며 최 목사를 모함하는 전단을 수십 차례에 걸쳐 뿌려댔다. 이단성을 지적 받은 신도들이 몇 달간 확성기를 들고, 때로는 LED 영상을 교회 앞에서 돌려가며 예배를 방해하고 데모를 벌이기도 하였다. 한 번은 경찰 55개 중대가 출동되어 이를 막아내기도 하였다.

 

<빛과소금교회> 성도들은 이미 상상도 못할 어려움들을 경험하고 견뎌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교인들도 대단히 훌륭하다. 이단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최 목사를 음해해도 교인들은 흔들리지 않고 최 목사를 지지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는 지역주민들조차 최삼경 목사를 이단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고, 특히 세월호 사건 때는 생방송을 무려 100여 회 출연하면서부터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수년 전 이단들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당시 한국에 나가서 <빛과소금교회>를 방문했다. 최 목사 사무실로 올라갔는데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웬 CCTV냐고 물으니 이단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당회에서 설치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책상 밑에서 야구방망이, 가스총 등 보호 장구들을 보여줄 때는 상당히 놀라기도 했지만 제2의 탁명환 사태가 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사실 인터넷에 떠도는 거짓 정보를 통해 최 목사를 ‘삼신론자이다’ ‘월경잉태론자이다’ ‘이단 제조자다’ ‘이단 연구로 재벌이 되었다’ ‘그가 이단이다’ 하며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가 속한 통합측에서 5회 정도, 합동측에서 2회, 합신측에서 고신측에서 각각 1회 ‘최삼경은 이단이 아니다’라고 결정하였는데 이단옹호기관으로 전락한 한기총에서 최삼경 목사가 이단이라고 결정하기도 하였지만 그는 이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소신껏 그리고 뚝심 있게 이단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호주에 최 목사를 강사로 초청했을 때다. 일부 교회에서는 이러한 기사들을 보고 왜 이단에 속한 강사를 초청했냐며 집회를 거부하기도 하고, 항의하는 교회와 독자들도 있었다.

 

▲ 최삼경 목사가 목양실에서 이단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무기인 가스총을 보여 주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최 목사는 그동안 여러 이단 사이비 단체로부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소를 당했지만 거의 대부분 승소했다. 그는 이단들 문제로 교인들에게 피해를 주고 아픔과 어려움을 준 것이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교회를 지키고 떠나지 않는 그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단다. <빛과소금교회>와 성도들이 없었다면 무너지고 죽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 목사는 능력 있는 사역자다.〠 <계속>

 

글/사진|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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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6/28 [15:24]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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