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양지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6/28 [15:29]


“인간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동물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지금으로부터 약 45억 년 전 태양계의 일원으로서 탄생한 이후 끊임없이 역동적인 변화를 해왔다. *우주의 아주 후미진 곳, 태양계 속에서도 작고 작은 지구라는 행성의 표면에서, 사과 껍질에 붙어 있는 세균처럼 미세한, 인간이 존재와 삶이 무엇인지 이성적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주에서 목격되는 흔한 현상처럼 어느 날 갑자기 지구 자체가 어디에 부딪쳐 어처구니없게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황당한 현실이다. 광대한 시공간 앞에서 우리 삶은 의미가 퇴색하고 한없이 초라해질 때면 나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라는 귀절을 떠올린다.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인간은 스스로 지구라는 행성의 주인이라고 자부하며 간혹 이타심, 헌신, 자기희생, 지적 호기심, 이성 및 지성 등 고귀한 정신적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니체는 “인간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동물이며 변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인간 본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확정되지 않은 인간 본성은, 기계 (인공지능)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기술적 특이점 *** (Technological Singularity) 에 접근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인간을 생물학적 존재로만 본다면 당연히 인간만의 기능을 결정하는 유전자나 단백질 그리고 신경계 (nervous system)등이 인간의 본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 “유전공학기술이나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과학기술은 인간 본성을 어떻게 변화 시킬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이것은 생물학적 존재에 대한 물음을 넘어서는 질문이 될 것이다.

 

그동안 인간의 본성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달랐다.

 

종교 개혁을 이끈 칼빈 (John Calvin, 1509 -1564)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인간의 의지는 죄의 굴레에 묶여 있기 때문에 선을 향해 움직일 수 없고 항상 선을 추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인간의 마음에서 동물적 본성을 찾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신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인간의 본성에 관해 성악설과 성선설이라는 담론을 이어왔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와 사회 변혁

 

서양에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사회 개혁이나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영국의 정치 철학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인간을 본성대로 살도록 내버려 둔다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war of all against all)으로 묘사되는 권력, 지배 그리고 폭력을 향한 인간 개개인의 충돌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늑대 (homo homini lupus)가 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 법칙만 남게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조화롭고 질서 있는 정치 체제를 위해서 개개인의 폭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더 강력한 국가의 폭력 (공권력)의 필요성을 주장했으며 이는 서구 근대 정치 철학의 토대가 되었다.

 

반면,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 eau, 1712-1778)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의 본성은 평화, 평등, 조화를 추구하며, 자유스러운 존재로 태어났으나 모든 곳에서 사슬에 매여 있다. 지금의 불평등하고 위계적인 상황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마침내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으로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De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을 선포했다. 결과적으로 홉스나 루소가 본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는 사회의 변화를 주도했고, 현재에도 여전히 정치적 논쟁의 근간이 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오랜 진화 과정의 산물

 

자연과학은 인간의 본성 (또는 마음)이 오랜 진화 과정에서 획득된 것이며, 생존과 번식이라는 본질적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심리학, 신경 과학, 인지 과학, 유전 공학과 같은 학문은 마음을 신비로운 현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물질인 뇌와 분리되지 않는 물리적 현상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자유, 평등, 박애, 책임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 본성을 ‘마음의 과학’으로 설명한다는것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 의 후기 글 ‘신이 된 동물’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7만 년 전 아프리카의 어느 구석에서 자기 앞가림에만 신경을 쓰는 별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다.

 

이후 몇만 년에 걸쳐 이 종은 지구 전체의 주인이자 생태계의 파괴자가 되었다. 오늘날 이들은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고 있다. 영원한 젊음을 얻고 창조와 파괴라는 신의 권능을 가질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가고 있다.

 

신이 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우리는 몸과 뇌를 업그레이드하는 데는 성공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마음을 잃게 될 것이다”라고 예견한다.

 

과연 인간은 미래에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까?

 

*우주란?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포함하는 공간과 시간의 전체 (all existing matter space and time considered as a whole).

 

**독일 중부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동차로 북동쪽 베를린 방향으로 160Km정도 달리다보면 중세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살았던 아이제나흐(Eisenach)라는 마을이 나온다.

 

어린 시절 루터는 외갓집이 있었던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하며, 루터가 살았던 이층 목조 가옥 부근의 작은 사과나무 아래 석판에는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작은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 (Und wenn ich wusste, dass morgen die Welt unterginge, wurde ich doch heute ein Apfelbaumchen pflanzen)"는 구절과 루터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 루터가 살았던 아이제나흐 마을 이층 목조 가옥 부근에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작은 사과 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라는 문구가 석판에 새겨져 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이 말이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가 말한 것으로 배웠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루터 사망 후 86년 뒤에 태어난 인물이다.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 TS)은 인공지능(AI)의 발전이 가속화되어 모든 인류의 지성을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초인공 지능이 출현하는 시점을 말한다. 즉, 기술적 특이점이란 인간문명의 미래 발전에 가상 지점을 뜻하는 용어로써, 기술 변화의 속도가 급속히 초가속화되는 미래의 어떤 시점으로, 이때부터 인간의 삶이 그 이전의 삶과 전혀 다르게 변화되는 기점을 뜻한다.〠

 

양지연|ANU 석사(분자생물학), 독일 괴테대학 박사(생물정보학), 카톨릭의대 연구 전임교수 역임

 

▲ 양지연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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