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론(救援論) IX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6/28 [15:57]
 ©Marc Olivier Jodoin  


성화 (Sanctification)

 

지난달까지 우리는 구원론의 논리적 순서 네 번째 단계인 ‘칭의’(稱義)에 대해 살펴보았다. 구원론의 논리적 순서를 다시 한번 간단히 정리해보면, 소명-중생-회개-칭의의 순서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에는 구원론의 논리적 순서 다섯 번째 단계인 ‘성화’(聖化)에 대해 살펴보자.

 

사실 온전한 칭의는 성화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명목상의 그리스도인(가짜 그리스도인)들은 성화가 삶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반쪽짜리 구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치르신 속죄와 용서를 믿으며 자신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금 한국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복음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한다. 복음을 듣고 온전한 회심을 하여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 칭함(칭의)을 받은 자들이라면 분명히 영적으로 새롭게 출생(중생)한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삶의 모습들은 비신자나 별 차이가 없는 자들을 보게 된다면 그들이 진짜 그리스도인인지 확신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본 회퍼는 그의 책 <나를 따르라 >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값싼 은혜는 싸구려 상품 같은 은혜이며, 싸구려 죄의 용서, 싸구려 위로, 싸구려 성만찬입니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이도 죄를 용서하는 설교요, 공동체 훈련도 없이 베푸는 세례요, 죄의 고백도 없이 참여하는 성만찬이요, 인격적인 참회 없는 면죄의 확인입니다.

 

순종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 계시고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 이것이 값싼 은혜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하나님에게도 값비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은 받아 놓았으니 제멋대로 살아도 영생을 얻는다는 값싼 은혜에 대해 경고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죄를 더 많이 지어야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받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에 대해서도 그러한 생각이 진리가 아님을 강력히 경고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롬 6:1)

 

성경은 구원이 중생과 회심, 칭의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분명히 중생, 회심, 칭의가 구원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들임에 분명하지만 자신의 삶에 성화(거룩한 변화)가 없다면 자신이 구원받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再考)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성화란 무엇인가?

 

중생이 영적으로 새로 출생하는 것이라면 성화는 영적인 성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영적으로 신생 (新生: 새롭게 태어남)했다면 계속 자라가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생명을 가졌다면 자라나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 회심, 칭의가 단회적 사건이라고 한다면 성화는 평생에 걸쳐 계속되어야 하는 점진적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벌코프는 성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성화는 성령께서 죄인을 순결케 하시며, 죄인의 전성질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하시며, 죄인으로 하여금 선행을 행할 수 있도록 하시는 성령의 계속적이고 은혜로운 사역이다.”

 

칭의는 우리 밖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우리를 의롭다고 선포해줌)이지만, 성화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칭의는 실제 우리가 의롭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의를 보시고(우리 안에 계신)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상대적인 변화이지만, 성화는 거룩함을 향하여 점차로 우리가 변화되는 실제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온전한 회심을 한 사람들이라면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제자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분과 같이 되기로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믿는 믿음 안에서, 매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가운데 거룩한 품성과 생애로 변화되어가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거룩함(성화)이다.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 2:1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살전 4:3)

 

성화의 이중 구조

 

성경은 우리가 의롭다 하심(칭의)을 받았을 때에 성화의 역사가 함께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칭의)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성화)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성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로마서 8: 1-4)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중생)은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 칭함(칭의)을 받았을 뿐 아니라 주의 영을 좇아 죄를 미워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이상 우리는 현세에서 죄와 더불어 투쟁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 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8:13)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 가노라” (빌 3:12).

 

“이처럼 중생한 자라도 육과 영 사이에서 항구적인 투쟁을 해야 하며 심지어 가장 잘 믿는 자라도 아직도 매일 자기 죄를 고백해야 한다.”(요일 1:9, 시 32:5).

 

이와 같이 진정한 내적 인간의 변화(중생)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외적인 생활에 있어서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성경에서 성화를 말할 때에는 늘 칭의와 함께 다루어지고 또 믿음과 진정한 믿음의 결과인 행함을 함께 말하고 있으며, 칭의는 성화를 수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성화는 하나님 형상의 회복

 

웨스트 민스터 소요리문답에는 성화를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역사인데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온사람이 새로워짐을 얻고 죄에 대하여는 점점 죽고 의에 대하여는 점점 살게 되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롬 6:11)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13)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성화는 첫 사람 아담에게 주어졌던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원죄의 영향을 벗어 버리고 원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주어졌던 의와 거룩함과 참 지식을 회복하는 것이 성화이다.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기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 3:10)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엡 4:24)〠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ACC(호주기독교대학) /ACT 교수

▲ 주경식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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