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되는 법조인의 자식들
 
엄상익/크리스찬리뷰
©Tingey Injury     


교대역 부근 뒷골목 언덕길 초입에 ‘미니슈퍼’라는 간판을 단 예전의 구멍가게 같은 작은 상점이 있다. 어깨가 굽은 팔십 가까운 늙은 영감님이 김밥 한 줄을 팔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머리에 하얗게 눈이 내린듯한 할머니가 지나가다 들린 사람에게 구운 계란을 주기도 했다.

 

영감님을 가만히 보니까 검사장을 하고 국회의원을 여러 번 한 분이었다. 잘나가던 여당 정치인이었다. 그는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이 독립해서 먹고 살 수 있도록 가게를 내 준 것 같았다. 그 아들에게 물건을 사면 거스름돈 계산이 늦거나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늙으막에 노부부가 구멍가게 일을 보게 된 것 같았다.

 

얼마 전 법조인 모임이 있었다. 그중 상당수가 인생 경력이 번쩍거리던 사람들이었다. 명문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와서 이십 대에 고시에 수석을 하고 사법부의 높은 관직에 있던 사람이 많았다. 판사를 하던 사람들은 좋은 학교를 나온 우수한 여성을 아내로 맞아 가정을 이룬 경우가 많았다.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참 이상한 현상을 경험해요. 부부가 우수하면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도 우수해야 할 텐데 우리 법조인들 가정을 보면 숨겨서 그렇지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많거든. 아버지 엄마가 우수한데도 그런 장애아이들이 태어나는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야.”

 

그 말을 들으면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떠올랐다. 문학적 천재인 그는 평생 장애 아들을 돌보면서 글을 썼다. 검사장을 지내고 로스쿨 원장을 한 법조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지적 장애가 있으면 차라리 안됐다고 생각하고 보살피면 되죠. 내 속이 타는 건 말도 못해요. 우리 아들놈은 상습 사기범으로 세 번이나 재판을 받았어. 우리 아버님도 교수 출신으로 정직하고 반듯한 분이고 나도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아들놈의 거짓말 하는 버릇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자식 이기는 애비가 없는 법이라고 해서 한번은 내가 직접 담당 형사를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 형사가 하는 말이 보통 사람들은 경찰서나 구치소를 무서워하는데 아들은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더라구. 내가 그 놈 때문에 속이 까맣게 타는 건 말도 못해요.”

 

그 옆에 있던 다른 법조인이 말했다.

 

“나도 아들이 폭력 사고를 일으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법대 위에서 세상 모르고 빳빳하던 자존심들이 자식들로 인해서 겸손해지는 것 같았다. 자식들이 아버지들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기도 했다. 한 법조인 모임에서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여기 모인 백여 명의 법조인들이 대부분 서울법대 출신인데 그중 자식이 서울법대인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아요? 아마 세 명도 힘들 걸. 세상이 그래. 나는 서울법대에 쉽게 들어가서 누구나 가는 학교로 착각했었어. 그런데 우리 아들 대학입시 때 서울법대에 합격한 아이들을 보니까 존경스럽더라구. 그러면서 어떻게 내가 그 학교를 나왔는지 잘 모르겠더라니까.”

 

법조인 자식들이 아버지를 이어서 다시 법조인이 되는 확률은 아주 작은 것 같았다. 대학 졸업 후 사십오년 만에 우연히 입학동기 한 명을 만나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는 칠십 년대 초 법대생인 우리들과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 도시빈민들의 친구이자 대변인 제정구 씨(1944~1999). 그가 빈민운동에 첫발을 내디딘 곳은 972년 청계천 판자촌이었다. 사진은 활빈교회 앞의 제정구와 아이들(1973).   ©서울역사박물관 청계천박물관     

 

그는 청계천 빈민가에 있는 김진홍 목사의 활빈교회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공부를 시키는 야학 선생으로 활동했다. 빈민운동을 하던 제정구 씨와 함께 대학내내 빈민가에서 지냈기 때문에 학교에 출석한 날이 백 일도 못됐다고 했다.

 

그는 빈민운동경력을 내세워 정치권을 기웃거리지도 않았다. 나중에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퇴직할 때까지 성실히 근무했다. 칠십 고개인 지금도 휘청거리는 청년들을 도와주는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 함께 허름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고등학교를 명문이라는 일차 학교를 다녔지만 나는 그 학교 시험에서 떨어졌었지. 법대를 다녀도 고시도 보지 않고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아들은 과학고를 나오고 서울대를 졸업했어. 그리고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됐지. 며느리도 변호사고 딸도 변호사야. 졸지에 법조인 집안이 됐어.”

 

그가 가지 않은 길을 그의 아들과 딸들이 대신 간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은 자식들이 간 길을 자신이 걸었던 것처럼 환치한 얼굴이었다. 하나님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 크리스찬리뷰

copyright ⓒ 크리스찬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입력: 2021/07/26 [11:04]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배너
배너
배너
포토 포토 포토
성탄절에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