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부럽습니다

권순형/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7/26 [14:27]
▲ 캥거루와 망중한을 즐기는 최삼경 목사.     © 크리스찬리뷰


긍휼의 사람

 

최삼경 목사는 긍휼의 사람이었다. 그는 천부적 능력으로 말씀도 잘하고 글도 참 잘 쓰지만 우리를 감동케 한 것은 그런 능력이 아니라 말씀과 일치하는 성실한 삶이다. 따뜻한 가슴과 따뜻한 손을 가진 사람이다.

 

몇 해 전 교회로 최 목사를 찾아갔을 때다. 이단에 속했던 L모 씨가 가정이 해체되고 건강도 좋지 않아 개인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하여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었다. 최 목사는 그를 교회 간사로 채용해서 건강을 챙겨주고 신앙교육을 시키면서 보살피고 있는 현장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자신에게는 인색했으나 남에게는 관대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청빈은 그의 삶의 태도였고 섬김은 그의 삶의 방식이었다.

 

공자가 이르기를 측은지심이 종교의 시작이라 하였다. 공자가 측은지심에 대해 설명하기를 우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마음에 비유했다. 한 우물에 아이가 빠져 죽게 되었는데 그 아이를 구하려면 자신도 우물이 무너져 죽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우물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해내는 마음을 측은지심이라 하였다.

 

측은지심은 성경에서의 긍휼로 하나님의 성품이다. 예레미야서 3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잘못을 책망하여 꾸지람할 때에 창자가 꼬이는 아픔을 느낀다. 그런 아픈 마음으로 자기 백성을 책망한다.

 

바로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창자가 아플 정도로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바로 긍휼이요, 그런 아픈 마음이 어머니 마음이다.

 

<빛과소금교회>는 요양병원과 재가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요양보호사교육원을 설립,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2007년 7월에는 <빛과소금> 부활의 동산을 조성하여 ‘수목장’을 만들었다.

 

▲ 세월호 사건 당시 100여 회 이상 방송에 출연한 최삼경 목사(2014. 6)     © 크리스찬리뷰

 

이때 최 목사는 수목장을 위해 부활의 동산 부지를 헌납했다. 사례금 전액을 다 헌금으로 2년간 드린 일도 있고, 자동차를 세 번 팔아서 헌금하여 차 없이 살기도 하였고, 적금 연금을 다 헌금하여 연금이 없어 노후가 걱정될 때도 있었단다. 그러나 이단문제를 통하여 본 한국교회가 너무 아파서 눈물을 흘리며 살았다고 말한다. 그는 긍휼의 사람이다.

 

열정의 사람

 

그는 ‘열정의 사람’이다. 그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고 자기 앞에 주어진 과제에 대해 열정적으로 감당했다. 적당이라는 안일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열정이 목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특별히 호주에서 이단사역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에 의해 호주의 한인교회들은 많은 것을 얻었고, 많은 결실을 맺었다.

 

2006년 8월 크리스찬리뷰는 지령 200호를 맞아 최삼경 목사를 강사로 초청하여 ‘이단 사이비 비판 호주 순회 세미나’를 개최했다.

 

당시 호주 한인교회에는 이단 사이비에서 발행되는 간행물이 배포되는가 하면 이단에 속한 사람들이 포교를 목적으로 위장 등록하여 교인들을 빼내어가고, 성경공부 명목으로 모임에 끌어들여 교묘한 방법으로 미혹의 수위를 높이고 있을 때였다.

 

특별히 레마선교회,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류광수 다락방 그리고 이만희의 무료성경신학교의 홍보물이 공공연히 휘날리고 ‘이단 사이비들의 천국’이란 말이 나돌 정도였다. 교회는 좀먹어가고 있었으나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했다. 이단들에 대해 잘 모르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강연 일정을 최 목사에게 보여줬다.

 

*시드니 지역 2006년 8월11일(금)~14일(월) 연합집회 및 목회자 세미나

*브리즈번 지역 2006년 8월 18일(금)~21일(월) 연합집회 및 목회자 세미나

*골드코스트 지역 2006년 8월 22일(화)~24일(목) 연합집회 및 목회자 세미나

 

한 사람이 감당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스케줄이었다.

 

“체력이 부치지 않을까요?”

“사람 살리는 일입니다. 괜찮아요.”

 

그는 강연이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며 스케줄을 강행했다. 강연장에는 항상 이단들도 찾아온다. 브리즈번 강연장에 일어난 일이다. 안식교 교인 한 사람이 최삼경 목사를 찾아와서 목회자와 사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식교와의 이단논쟁을 벌였다. 이 사람은 안식교의 훈련된 교인이면서 정통교회에 들어와 그동안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이날 논쟁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안식교인이라고 밝혔다.

 

최삼경 목사는 조목조목 안식교의 심각한 이단성과 피해를 지적하며 안식교 대표자들과 미국에서 공개 논쟁하여 승리한 공청회 내용이 그대로 수록된 ‘안식교 타코마 논쟁’ 책자를 잘 보고 더욱 공부하고 분별력을 가지고 이단에서 벗어나라고 책망하며 돌려보냈다.

 

그 자리에 참석하여 공개 논쟁을 목격한 목회자들은 이단사상에 빠진 자의 영적 완악성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현장학습을 통해 보고 깨닫게 된 것이다. 목회자들은 이제부터 더욱 건강한 목장을 함께 만들고 이단이 침투하지 않도록 연합으로 지키자고 다짐하며 자리를 떠났다.

 

빼곡한 일정을 모두 소화한 그에게 주어진 보상이었다. 그 기간은 내 평생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였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섭리의 끈이 오늘까지 이어져서 이렇게 내 손으로 그의 사역의 일부분을 정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2010년 본지(창간 20주년 기념)가 주최하고 예수마을(대표 장경순 목사)이 후원한 ‘이단 사이비 대책 강연회’에 최 목사를 강사로 초청했을 때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단 연구는 내가 씨를 뿌려도 어디에서 어떻게 싹이 나고 자라는지 잘 몰라요. 그렇지만 불특정의 다수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또 이단에 빠지지 않게 했을 것이고 또 내가 모르는 치유도 내 글을 통해서 많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믿어져요. 그런 점에서 힘들고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보람도 돼요.”

 

▲ 브리즈번순복음교회에서 열린 이단대책 연합집회.(2010. 8)     © 크리스찬리뷰

 

그런데 인간인지라 어느 때 두려울 때가 있잖아요? 이러다간 내가 제 명에 못 살지. 내가 제 명에 살려면 빨리 그만둬야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러나 인간적으로 사람이 힘들다고 해서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하나님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고요, 그러니까 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죠.

 

그런데요. 이단 사이비들의 공격 협박은 견딜 수 있어요. 정말 속상한 일은 한국교회의 무관심입니다. 감사한 일은 나보다 글도 잘 쓰고 힘도 있고 경력도 많고 실력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요한 이단 문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신다는 점입니다.”

 

최 목사는 2013년 6월 강사로 초청됐을 때 본지와의 대담 중 언론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이단에서 만들고 이단을 옹호하는 언론이 크리스천투데이, 교회연합신문, 로앤처치 이런 것들이 대표적인 것들인데, 우선 이들에게 힘을 공급하면 안 됩니다. 이들이 살아갈 공간이 없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첫째는 힘있는 교회들이 선교적 사명을 크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어느 한 아프리카에 선교적 큰 프로젝트를 지원하듯이 그렇게 지원해 주는 교회를 지금껏 본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요. 그런 교회가 하나만 있어도 호주 사회를 밝게 할 수 있어요.

 

▲ 목련꽃이 만개한 호주 최초의 장로교회 에벤에셀교회에서 최삼경 목사 부부     © 크리스찬리뷰

 

예를 들어 워싱턴 쪽에 이단들이 득실거리니까 지구촌교회 김만풍 목사님 한 분의 영향과 여러 교회들이 노력해서 이단들을 다 막았어요. 타코마장로교회, 토랜스장로교회 박성규 목사님이 있을 당시 많은 돈을 투자하여 이단과 싸워서 이겼어요. 그때 몇만 달러씩 투자해가면서 싸웠더라고요. 그러니까 이초석, 박옥수까지 왔다가 완전히 손들고 갔습니다. 이렇게 싸워야 합니다. 내버려두면 안방에 둥지를 틉니다.

 

그리고 기독교 대표기관의 대표자들, 연합기구의 대표자들이 바른 성명서를 제때 내주고 또 이단 대처 언론들은 격려해주고 결의를 해주면 아주 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호주지역이 되길 바랍니다.”

 

그가 살아온 지난 세월의 열정의 흔적이다.

 

아름다운 동역자 장경애 사모

 

평생 동역자로서 최 목사의 삶과 사역에 결정적인 영향과 기여를 한 장경애 사모에 대한 집필도 동시에 이뤄진다고 하니 그래 맞아. 고개가 끄덕여진다.

 

장경애 사모와의 첫 만남은 2006년 8월 최삼경 목사가 ‘이단 사이비 비판 세미나’ 강사로 초청되어 왔을 때였다. 그녀는 “최 목사 아내입니다.”라고 공손히 인사했다. 외모나 말씨 모든 것이 차분하고 단정한 사람이었다. 오랜 섬김과 묵상이 준 또 다른 결과로 이해됐다.

 

사실 장경애 사모는 최삼경 목사의 버팀목이었다. 최 목사의 뒤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다. 남편이 교육전도사를 시작했을 때도, 빛과소금교회에 부임하여 사역을 시작했을 때도, 이단사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이단으로부터 130여 번의 소송에 얽혀 법원에 갔을 때도 한결같이 최 목사의 곁에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장 사모는 아내로서 위로하고 싶어 법원에 동행을 한 경우가 많았다. 하루는 최 목사가 재판이 잠시면 끝날 것이니 주차한 차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단다. 그러나 최 목사가 4시간 후에 나왔다. 그 시간에 가졌던 고통이 참으로 컸다며 눈가에 아픔을 보였다. 최삼경 목사의 외로운 사역의 길에 장경애 사모의 내조가 큰 힘이 되었음의 증거였다.

 

장 사모가 한 매체에 기고한 글이다.

 

<여기서 나 자신을 돌아보니 반성할 점이 너무 많아 부끄럽다. 나는 내가 생각지 않은 일들 앞에서 그저 다 양보하고, 다 기뻐하고, 다 인내하지 못했다. 때로는 내 남편이 자신의 아내인 나의 아픔보다 성도의 아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나와 함께할 시간조차 목회 일에 양보했을 때, 나는 그 일을 기쁘게 여기지도, 흔쾌히 양보하지도 못하였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며 내색하지 않고 웃었지만, 조금이라도 드러났을 것이고, 속으로는 소외감 속에서 울기도 많이 했다. 이것이 나의 부끄럽지만 솔직한 고백이다.

 

저녁 노을이 유난히 멋있고 찬란한 것은 하루를 보내는 마지막 인사이기 때문인 것처럼 이제 남편 목사가 목회 끝자락에 서 있으니 유난히 멋있는 저녁노을처럼 멋있게 최선을 다하고 떠날 것을 다짐하며 기도한다. 그리고 은퇴할 때는 물론 세상을 작별할 때도 후회와 미련을 남기기보다는 오직 감사만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머지않은 훗날, 내 삶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내가 걸어간 이 목사 아내 길을 두고 잘 선택하였고 또 잘 수행했다고 미소를 지을지언정 후회하는 어리석음이 없어야 할 것이다. 많고 많은 길 중에서 목사 아내로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것은 내 생애 있어 탁월한 선택이었고 잘 살아왔다고 뿌듯함으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나를 세상에 보내시고 이 길로 가게 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의 칭찬을 받는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라고 찬송하지만, 그날에는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했으니”라고 찬송하며 감사하고 싶다. > -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중 일부 -

 

그녀는 숙명여자대학교 교육학교를 졸업하고 국문학을 부전공으로 한 수필가다. 그의 글을 읽으면 벌써 가슴이 따뜻해진다. 신앙생활을 격려하고자 쓴 글들로 치장이 없고 맛깔스럽다. 신앙인들에게 깊이 있는 묵상으로 이끈다. 글은 곧 사람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동안 최 목사는 이단들의 고소 고발로 인해 적지 않은 돈을 변호사 비용으로 지출한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얼마만큼 노후 준비를 해두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예장(통합)의 튼튼한 연금이 믿어졌는데, IMF 때 최 목사는 그것마저 해약하여 교회에 다 헌금하였다고 하니. 이제 믿을 것은 그 교회뿐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쪼록 100세 시대를 맞아 은퇴 후의 삶이 안정되기를 바라면서 “목회자의 전도와 선교 사명은 끝이 없다”라고 말했던 고 정진경 목사(신촌성결교회 원로)의 조언과 같이 은퇴 후 새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 시드니 최고의 휴양지로 유명한 맨리(Manly) 항구     © 크리스찬리뷰

 

기억하기로는 2006년 8월 최 목사 부부가 시드니에 왔을 때 맨리 비치(Manly Beach)에서 며칠간 지내다 간 적이 있는데 최 목사보다 장 사모는 더욱 한국 여름이 싫어 이곳 맨리가 너무 좋다고 했다. 그래서 매년 7, 8월이 되면 맨리로 오고 싶어했지만 바쁜 목회 생활 때문에 미뤄왔는데 이제 은퇴하면 여유있게 이곳에서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여름철 이곳은 시드니 최고의 휴양지로써 유명한 해수욕장이라 매우 복잡하지만 호주 7~8월은 겨울철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고 지내기에 편안한 곳이다. 유명한 해산물 식당들도 많지만 페리(ferry)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면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항구에 내려 시드니 시내를 산책할 수도 있다. 이제부터 시드니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 많아지길 바란다.

 

한 평생을 편안하게 살지 못 했을 최 목사 부부에게 편지글 하나 올려본다.

 

▲ 최삼경 목사의 은퇴 기념 논고집 ‘사십’ 출판 감사예배가 지난 6월 27일 빛과소금교회에서 진행됐다. 최삼경 목사가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빛과소금교회     

 

“당신이 부럽습니다. ‘부럽다’라는 말속에는 ‘나는 감히 할 수 없다’라는 부끄러움이 숨어있습니다. 걸어가야 할 길을 걸어간 당신이 부럽고, 그 길 앞에서 멈칫거린 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을 대신해 주었습니다.

 

손을 내밀어야 했지만 거두어들였던 일을, 하고 싶지만 하지 못했던 일을 당신은 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명이 무엇인지 일깨워주셨습니다. 아, 우리 사회가 당신 같은 목회자를 키워 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요?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부럽습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오래 사시면서 더 많은 가르침과 교훈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번에 출간된 이 논총은 최삼경 목사의 개인 기록인 동시에 한국교회의 역사이자 호주 한인사회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한 사람이 성실하게 걸어갔던 진솔한 삶의 기록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어떻게 역사하시고 무엇을 이루어가셨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글/사진 | 권순형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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