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하여 증인 사명 감당하는 교회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8/30 [11:36]

현재 시드니 지역은 코로나 델타 바이러스로 인해 록다운(lockdown)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확진자가 계속 증가하여 9월 말까지 록다운이 연장되고 일부 지역은 통행금지가 실시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시드니영락교회 창립 40주년 기념행사를 마친 후 창립 멤버 및 당회원들과 함께 4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40년의 비전을 함께 나누는 좌담회를 가질 예정이었는데 부득이 온라인(이메일)으로 좌담회를 진행하게 되었음을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한다. <편집자>

 

·참석자 : 김태익 장로·박명옥 안수집사·이명구 목사·정원조 장로·최희영 권사·홍경화 장로 (가나다 순)

·사회자 : 권순형 (본지 발행인)

·사진 : 권순형 (본지 발행인)·최충국 (시드니영락교회 집사)

 

▲ 텔로피아 지역에 있는 시드니영락교회 전경     © 크리스찬리뷰

 

사회자 : 시드니영락교회 창립 40주년을 축하드리면서 먼저 1981년 6월 21일 67명의 성도들이 시드니한인교회로 첫 예배를 드린 후 7월 12일 98명의 성도들이 창립예배를 드렸는데 창립 배경을 소개해 주십시오.

 

정원조 : 당시 모교회이며 스트라스필드(Strathfield)에 소재하고 있는 시드니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님이셨던 김상우 목사님께서 1980년 8월경 미국으로 떠나신 후 교회가 혼란스러웠습니다. 더욱이 상당한 수의 성도들이 연합교단의 신앙노선과 절차에 회의를 느끼던 중 장로교 신앙노선에 익숙해 있던 67명의 성도들이 1981년 6월 14일 시드니한인연합교회에서 마지막 예배를 드렸습니다.

 

▲ 시드니영락교회는 1981년 6월 21일 버우드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장로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다. 사진은 교회 현판식 장면.     © 크리스찬리뷰

 

박명옥 : 당시를 회상해 보니 어느날 교육관 앞마당에 있는 나무를 뿌리까지 잘라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어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무를 뿌리까지 자르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젊은이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납니다. 교회 일이라면 열정적으로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사회자 : 창립 당시에는 담임목회자가 없었는데 누가 설교를 하셨나요.

 

▲ 정원조 장로   ©정원조     

 

정원조 : 예배 처소를 찾는 우리에게 버우드(Burwood)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St. James) 장로교회 스프링(R. E. Spring) 목사님께서 선뜻 우리에게 예배 처소를 허락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6월 21일 첫 주일 설교를 해 주셨습니다. 스프링 목사님께서는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가 올 때까지 세 달 정도 설교를 도와주셨고 통역은 부족하지만 제가 담당했습니다.

 

사회자 : 1981년 당시 영락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던 박조준 목사님을 초청하여 창립기념 감사 부흥사경회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정원조 : 박세명 장로님의 급한 요청으로 바쁜 일정을 미루고 오신 서울 영락교회 박조준 목사님께서 창립기념 부흥사경회를 인도해 주셨고, 제가 알고 있기에는 그 사경회가 호주 한인 사회에서 처음 있었던 기쁨과 위로의 성회였습니다.

 

박 목사님께서 서울로 돌아가신 후에는 영락교회에서 보내주신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듣고 은혜 받으며 담임 목사님 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최희영 : 부흥사경회를 가졌을 당시에 박조준 목사님과 교회 성도들을 저희 집에서 식사 대접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맛있는 양식과 여러 종류의 디저트를 만들어 주셔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사회자 : 창립 이후 김창식 목사님을 초대 담임목회자로 청빙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청빙하게 되었는지 청빙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정원조 : 담임 목사님을 청빙하기 위해 성도들이 뜨겁게 기도하며 한국에 여러 통로로 알아 보고 있던 중 서울 노량진교회 이병찬 장로님(박세명 장로 친구)과 박조준 목사님의 추천으로 대한 예수교 장로회 서울노회 신광교회를 시무하고 계시던 김창식 목사님을 담임 목사님으로 청빙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 그러면 김창식 목사님은 언제 취임하셨나요? 특별히 김 목사님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정원조 : 김창식 목사님은 1982년 8월 15일에 시드니영락교회 초대 담임목사님으로 취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1981년 12월에 청빙을 결정한지 약 8개월 만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 시드니영락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김창식 목사가 취임하고 위임식을 가졌다.(1984)  ©크리스찬리뷰DB     

 

최희영 : 김창식 목사님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소그룹 모임과 개인 심방 기도를 드리는데 그때 상황에 잘 맞게 말씀해 주시고, 진심과 열성을 다해 기도해 주셔서 많은 은혜를 받았던 것이 생각납니다. 또한 사모님께서도 묵묵히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돌보셨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회자 : 목사님께서 취임하신 후 교회가 안정되고 조직도 갖추었겠지요?

 

정원조 : 김창식 목사님께서 오시기 전인 1982년 4월에 이미 각 부서 조직을 마련하였고 6개 구역을 편성하여 구역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자 : 1984년 김창식 목사님 위임식을 갖고 1988년부터 교회당 마련을 위한 헌금을 시작했는데 창립 초기부터 성전 구입을 위한 준비를 하셨나요?

 

정원조 : 후일에 시드니영락교회의 온전한 교회당을 갖기 위한 마음으로 1984년 3월 18일 첫 성전헌금을 공식적이 아닌 자발적으로 시작했고, 1988년 10월 30일부터 교회당 준비를 위해 공식적인 성전 헌금을 시작했습니다.

 

사회자 : 1989년 1월 시드니영락문화학교를 개교하여 교민 2세 자녀들의 한글 교육과 한국 문화 전수에도 큰 역할을 감당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화학교 설립 배경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 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정원조 : 이민 생활에서 자칫 잊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를 지키기 위해 특별히 호주에서 태어난 세대들을 위해 최태진 집사님이 중심이 되어 시드니영락문화학교가 개교되었습니다. 내용은 태권도와 전통 무용, 전통 악기, 예절 등을 가르친 것으로 기억합니다.

 

▲ 박명옥 안수집사(은퇴)   ©박명옥   

 

▲ 시드니영락교회 창립 5주년 기념 전교인 기념촬영 (1986. 7.)   ©크리스찬리뷰DB    


박명옥 :
당시에 그런 계통에 경험이 많았던 최태진 집사님이 당회원들과 상의하며 문화학교 운영 계획서를 만든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또한 호주 연방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상세한 계획서도 만들었는데 결과적으로 7천 불 정도의 재정지원을 받게 되어 시드니영락문화학교 출범에 커다란 힘이 되었던 것으로 기업이 납니다.

 

사회자 : 창립 기념 주일에는 매년 기념 부흥 사경회를 개최해 오고 있는데 어느 분들이 강사로 다녀가셨나요? 가장 기억에 남은 강사가 있으면 소개해 주시지요.

 

정원조 : 1981년에 오셨던 서울영락교회 박조준 목사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강사인데 1985년 이리 신광교회 안경운 목사님, 1987년 노량진교회 림인식 목사님, 그리고 1988년 멜본한인교회 조성기 목사님도 기억에 남습니다.

 

박명옥 : 저는 창립 9주년 때 오셨던 나성영락교회의 김계용 목사님이 제일 생각납니다. 당시 설교 내용 중에 ‘요즘 교인들은 어린아이들이 냇가에서 미역을 늘 감아도 마치 피부에 새까많게 덮힌 때가 벗겨지지 않는 것처럼 교회를 다녀도 영적인 민감함이 부족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홍경화 : 저는 2019년 창립 38주년에 오셨던 장신대 총장되시는 임성빈 목사님, 2011년 창립 30주년에는 임형천 LA 영락교회 담임목사님을 모셨고, 2004년 창립 23주년에 김삼환 목사님과 2007년 이용규 선교사님을 초청했을 때는 본당에 자리가 모자라서 의자를 복도까지 준비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 창립 6주년을 맞아 림인식 목사를 강사로 초청, 부흥사경회를 가진 후 기념촬영 (1987. 7.)  ©크리스찬리뷰DB    

 

김태익 : 제 기억에 텔로피아 성전 본당에 가장 많은 성도들이 모였을 때는 2005년 7월에 김진홍 목사님께서 오셨을 때였습니다. 연일 9백여 명 모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본당 통로와 강대상 앞에까지 의자를 채워 놓았으나 그것도 모자라서 다른 예배실에 모니터까지 설치했던 생각이 납니다.

 

이용규 선교사님이 오셨을 때는 매일 7백여 명 정도 모였는데 시드니에 있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몰려와서 젊은이들과 함께 은혜를 나눈 부흥회가 되었습니다.

 

사회자 : 창립 10주년에 즈음하여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버우드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교회당이 협소하여 애쉬필드에 있는 성공회 건물을 1991년에 매입하였지만 입주 허가를 받지 못해 법정에 소송까지 갔었지요. 이 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 최희영 권사   ©최희영     

 

▲ 시드니영락교회 유년 주일학교 어린이들 (1987)   ©크리스찬리뷰DB    


정원조 : 1991년 11월 성전 부지를 매입한 이듬 해 에쉬필드 카운슬(Ashfield Council)에 입주신청을 하였으나 두 번이나 거절을 받은 후, 토지환경법원(Land and Environment Court)에 제소하여 1994년 9월 법정에서 최종 승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31가지 무리한 허가 조건을 준수하기가 힘들어서 결국 매각하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 법정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는데 어떻게 애쉬필드에 있는 성전 부지를 매각하게 되었나요?

 

김태익 : 법정에서 승소를 했지만 조건들은 사실상 카운슬과 제소자 간의 행정조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 예로, 주차 문제 등의 이유로 모일 수 있는 최대 인원이 3백 명이라는 조건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희 교회가 세 들어 있던 버우드 세인트 제임스 호주인교회 교세가 감소되어서 교회당을 저희 교회에 매각하기로 당회가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를 수용하고 1995년 7월에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를 차례대로 열고 애쉬필드 부지 매각을 전제로 세인트 제임스 교회당 매입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저희 교회 공동의회의 결정 통보 후 열린 버우드 세인트 제임스장로교회 공동의회는 아쉽게도 매각 결정을 부결했습니다.

 

▲ 버우드 세인트 제임스 장로교회당에서 성가대 기념촬영 (1992) ©크리스찬리뷰DBA-11: 김태익 장로 ©김태익     

 

사회자 : 텔로피아 성전으로 이전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호주영락교회가 창립되었습니다. 이 배경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 김태익 장로  ©김태익     

 

▲ 창립 20주년을 맞아 제2대 담임배진태 목사가 취임했다.(2001. 7.)   ©크리스찬리뷰DB    


김태익 :
어렵게 마련한 애쉬필드 성전 부지의 매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각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일부 교인들이 1995년 연말까지 함께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떠나게 되었는데, 이 움직임이 호주영락교회 창립 배경입니다.

 

사회자 : 텔로피아 성전으로 오기까지 4년여의 공백 기간이 있었고, 1998년 7월 텔로피아 예배당 헌당식을 가졌습니다.

 

김태익 : 버우드 교회당 매입 건은 결렬되었지만, 애쉬필드 부지 매각 결정에 따라 해당 부지를 같은 해 8월 180만 불에 매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버우드 세인트 제임스장로교회는 저희 교회에게 공동으로 다문화사역(Cross-Cultural Ministry)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자 1997년 연말까지만 교회당 사용을 허락한다고 통보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일 년 동안 이전할 교회당을 찾기 위해 여러 경로로 노력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매달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7년 중반에 당회는 3인의 실무팀에게 전권을 위임하여 물색하기에 이르렀고, 9월 20일 텔로피아 성전 매입에 합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 조건들을 충족시킨 후 10월 말 공동의회에서 의결하고 12월 3일 총회의 허락을 받아 1998년 1월 28일 매입 계약을 완료하여 31일에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8년 2월 첫째 주부터 텔로피아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성도들의 마음은 이제 우리는 길에 나앉게되지 않나 하는 심정이 없지 않았지만 너무 아름답게 문제를 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2월 8일에 감격의 입당예배를 드렸고, 7월 12일에는 성전봉헌 예배를 감사함으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사회자 : 제2대 담임목사로 배진태 목사님이 부임하셨고(2001. 5), 2005년 2월 사임 후 이명구 목사님이 설교목사로 부임하신 후 2005년 8월에 제3대 담임목사로 위임했습니다. 이때가 어려웠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 목사님은 당시 어떤 마음 자세와 비전을 갖고 위임을 하셨나요?

 

이명구 :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이라고 저는 여깁니다. 시드니영락교회는 제가 1997년 1월에 호주에 들어온 후 2월부터 파트타임으로 사역을 했던 교회였고, 2001년 배진태 목사님이 담임목사님으로 오셨을 때 저는 교회를 떠났다가 2005년에 돌아와서 앞에서 언급하신 설교목사를 거쳐 교회의 청빙으로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시드니영락교회로 부르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성도들을 돌보는 것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저의 마음 자세였습니다.

 

사회자 : 김창식 목사님의 사임으로 목사님과 교회가 불편하게 되었는데, 시드니영락교회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불편함이 원만하게 해소되기를 기도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립 30주년(2011년)을 맞아 이 목사님과 당회원들이 김창식 목사님을 공로목사로 추대하고 감사예배(2012년 5월)를 드리게 된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시드니영락교회 제3대 담임목사로 취임한 이명구 목사의 위임예배 (2005. 8.)     © 크리스찬리뷰

 

이명구 : 저는 지금 세대는 이전의 세대의 믿음에 크게 빚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는 반드시 이전 세대와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2005년 담임목사가 된 저는 초대 담임 목사님과 본 교회가 불편한 관계에 있는 것을 보면서 불편한 관계가 풀어지길 여러 가지로 계속 기도하고 노력했습니다. 이것은 누구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2대 담임이셨던 배 목사님도 힘쓰셨지만 저는 고 김창식 목사님께서 담임하실 때 파트타임 사역자였으며 김 목사님의 사임을 보았기에 제가 좀 더 이 불편한 관계를 푸는데 쓰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회원들도 모두 공감하고 함께 해 주었지요.

 

그리고 고 김창식 목사님께서도 마음을 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와 노력에 응답하시고 감사하게도 풀어 주신 것이지요. 모두가 다 기뻐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시드니영락교회가 함께 앞으로 나아갈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 드릴 뿐입니다.

 

▲ 홍경화 장로  ©홍경화    

 

▲ 초대 담임 김창식 목사 공로목사 감사예배 전경 (2012. 5.)     © 크리스찬리뷰


사회자
: 이 목사님은 시드니영락교회에서 16년 이상 목회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핵심 사역은 무엇이었나요?

 

이명구 : 사역의 중심은 ‘성경’입니다. 저희 교회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는 입장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사역의 중점을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한다. 이런 저의 중점은 성경을 강조하는 설교를 하는 것으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사실 성경을 강조하는 설교는 호주에 와서 성경을 강조하는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하면서 크게 받은 도전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15주 코스 제자훈련반, 20주 코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그리고 다양한 QT나눔반, 다양한 성경공부반(본 교회는 RTC성경대학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음)을 통해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회자 : 시드니영락교회는 북방 선교를 비롯한 선교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는 교회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동 교회가 지향하는 선교 방향과 후원하는 선교지를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시드니영락교회 북방 선교팀이 백두산 위에 세워져 있는 중국과 북한 국계비 앞에서 기념촬영. ©크리스찬리뷰DB    

 

이명구 : 선교는 앞에서 언급한 본 교회의 사역의 중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즉,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전파가 우선이지만 그렇다고 인도주의적인 도움을 무시하거나 배제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선교사역에 성령충만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강조하여 올해 표어가 ‘성령 충만하여 증인사명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이런 입장을 가지고 본 교회에서 돕고 있는 선교사역을 소개합니다.

 

△PNG(파푸아뉴기니)의 성경 번역 및 성경학교 사역 △몽골의 동고비 지역과 울란바타르의 교회 △브리즈번의 원주민 사역과 더비 김성태 선교사 사역 △중동선교의 일환으로 시리아인 교회 아동부 사역과 오번교회 사역 지원 △시드니의 캠퍼스 사역자와 캄보디아 청년 사역자 지원 등이 있습니다.

 

이제 저희 교회의 북방사역을 소개합니다. ‘영락’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북방에 대한 기도와 관심을 가지고 북방사역을 해오고 있습니다.

 

북한의약품돕기, 민족사랑나눔운동, 유진벨재단 등의 사역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교회 북방사역의 특징은 아무래도 별빛재단의 사역에 한 파트너로 직접 참여하는 것입니다. 북방의 어떤 지역의 두 곳 탁아소 건축을 전적으로 감당하고 또 운영까지 지원하고 있으며 이를 담당하는 사역자를 후원하는 일입니다.

 

▲ 이명구 목사  ©이명구    

 

▲ 시드니영락교회는 찬양대, 찬양팀, 중창단 등 교회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크리스찬리뷰DB  


사회자 :
시드니영락교회는 음악(찬양)에 대해서도 큰 자부심을 갖고 있지요? 찬양대, 찬양팀, 중창단 등 음악 사역에 대한 사항도 소개해 주십시오.

 

이명구 : 찬양에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좀 그렇고요. 저는 청년 시절에 찬양선교단 활동을 오래 했으며,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습니다. 우리 시드니영락교회는 뜨거운 찬양을 강조합니다. 주일 1부예배(오전 9:30), 2부 예배(오전 11시)에 모두 성가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후예배 시작 전과 수요예배 시작 전에 찬양 인도 팀이 있어서 뜨겁게 찬양합니다. 여성중창단인 글로리아 중창단과 남성중창단인 솔리데오 중창단이 있습니다.

 

▲ 창립 30주년을 맞아 어린이부터 노인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한자리에 모여 연합예배를 드린 시드니영락교회 (2011. 7.)     © 크리스찬리뷰

 

▲ 창립 40주년을 맞은 시드니영락교회는 델타 바이러스로 인해 록다운되어 온라인으로 감사예배를 드렸다.     © 크리스찬리뷰

 

▲ 부활절 축제에 참가한 출연자들(2008. 4) ©크리스찬리뷰DB     

 

▲ 활기찬 시드니영락교회의 예배와 다양한 프로그램들. ©크리스찬리뷰DB     


사회자 :
영어권 2세 자녀들을 위한 EM 사역도 소개해 주십시오.

 

이명구 : 저희 교회 EM의 가장 큰 장점은 EM 회원들이 교회를 무척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회원들 대부분은 본 교회 출신의 2세들로서 가정을 이룬 회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모여서 예배 드리기를 좋아하는데 이런 정신은 이전 세대의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역자의 변동으로 말미암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알렉스김(Alex Kim) 전도사님께서 풀타임 사역자로 EM이 더욱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장로님 한 분이 영어예배위원회 위원장으로, 두 명의 2세 출신의 안수집사님이 번갈아 가면서 EM을 돌보고 있습니다. EM이 좀 더 자율적으로 운영되기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자 : 창립 4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들을 준비하셨을 텐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40주년 감사예배도 온라인으로 드렸습니다. 어떤 행사들을 준비하셨고 락다운 상태가 계속된다면 어떻게 진행하실지에 대해서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명구 : 록다운 상태에서 지금은 주일 오전 11시와 수요 저녁 7시 30분 예배를 유튜브를 사용하여 온라인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토요 새벽기도회를 줌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사회자 :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온라인 예배로 대치하고 있는데 이에 따른 어려움은 없는지요.

 

이명구 : 비대면 예배는 불가피한 것으로써 예배의 진정한 의미가 크게 줄어들게 만듭니다. 시드니영락교회는 할 수 있는 대로 대면예배를 지향합니다. 규정이 허락하는 한 대면예배를 추구할 것입니다.

 

홍경화 : 아무래도 예배를 담당하는 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이 가장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배는 어떻게든지 온라인으로 드리지만 교회에 모여서 같이 예배 드리며 교제할 수 없는 상황들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교회 공동체로 모여 예배하며 봉사하고 그리고 성도들 간의 교제하는 시간들을 전혀 갖지 못하는 것이 당면한 어려움입니다.

 

▲ 야외예배에 참석한 시드니영락교회 성도들의 단체 사진. (2018)   ©최충국    

 

사회자 : 현재 시드니영락교회 조직(각 부서)과 현황들은 어떻게 되나요?

 

홍경화 : 미디어 사역부와 예배부는 코로나 재확산 록다운으로 인해 온라인(online )예배에 필요한 최소한 인원이 매주 수요일과 주일에 직접 교회로 가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교육부서와 EM 그리고 소그룹 QT 모임 등도 온라인으로 모이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헌금 관리 및 예산집행에 필요한 재정부 업무 또한 온라인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당회와 구역모임도 줌(zoom)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김태익 :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제직회 조직이 10개의 일반위원회와 4개의 특별위원회, 그리고 21개의 부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급적 장로들은 위원장만 맡아 감독의 역할을 하고 제직회에 책임을 지는 부서장들은 다른 제직회원들이 맡아 실무를 담당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 시드니영락교회의 앞으로 40년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이명구 :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서 이미 일하시고 계시는 것을 잘 보고, 그분이 하고 계시는 일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그 일에 가장 의미가 있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이라 믿고 그 일에 집중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해오셨는지, 그리고 지금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고 계시는지를 바로 알 때 우리는 누구며 우리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점점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열정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려는 열정을 갖게 할 것입니다.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자세여야 한다고 봅니다.

 

홍경화 : 시드니영락교회가 위치한 텔로피아와 주변지역에 이제 한인교회로서뿐만 아니라 로컬 처치로서 하나님께 큰 쓰임을 받았으면 합니다.

 

40주년을 맞아 이제는 2세들이 자녀들을 낳으며 모이는 영어 사역(English Ministry) 공동체가 영락교회뿐만 아니라 시드니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호주 땅에 이민와서 문화와 언어장벽을 넘어 이루어진 믿음의 유산들이 좋은 밑거름이 되어서 우리의 다음 세대가 점점 비어가는 호주의 교회들과 믿음이 약해져 가는 이 땅에 복음을 전하며, 부흥의 불길로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사회자 : 코로나 펜데믹 상황 속에서 어려운 가운데 서면 인터뷰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면서 온라인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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