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바로 교회입니다

- 실로암장로교회 설립 30주년 맞아 비전센터 완공 -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입력 : 2021/09/27 [10:29]
▲ 교회 설립 30주년을 맞아 실로암 비전센터를 완공시킨 류병재 목사. 류 목사는 어려움을 함께 견디어 냈던 성도들과 교회에 대한 사랑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 크리스찬리뷰


실로암장로교회가 지난 8월 18일 교회설립 30주년을 맞이했다. 당시 버우드에 있던 PTC(Presbyterian Theological Centre) 학생이었던 류병재 전도사와 11명의 성도들이 모여 1991년 8월 18일 스트라스필드 장로교회(St David’s Strathfield Presbyterian Church)에서 설립예배를 드림으로써 시드니실로암장로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벌써 30년 세월이 흐른 것이다.

 

사실 목회자가 한 교회에서 30년을 목회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우직하게 한 곳에서 30년을 목회하면서 교회를 부흥시켰다. 그리고 얼마 전 실로암장로교회의 열매인 비전센터까지 완공했다.

 

교회 설립 당시 그의 사진을 보니 결혼은 했지만 풋풋한 청년으로 보였던 류병재 전도사도 어느 덧 완숙한 중년의 모습이다.

 

“여전히 젊어 보이십니다. 염색하시나요?”

 

“네 염색합니다. 안하면 새하얗습니다. 하하, 이게 다 30년 목회가 가져다준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결혼한지 두 달 만에 호주로

 

▲ :설립 초기 스트라스필드장로교회에서 모일 때 실로암장로교회 교인들.  ©실로암장로교회     

 

그는 1987년 12월 신학공부를 하기 위해 호주에 왔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군생활 가운데 소명을 받고 대학을 졸업한 뒤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러나 1987년 한국이 민주화 열풍으로 들끓던 시절, 총신대 신학대학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학내 이슈로 데모가 끊이지 않았고 학교는 시끄럽고 어지러웠다.

 

서울에서 학교가 있는 양지까지 다니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신학에 대한 흥미도 사라지면서 한 학기를 다니고 나서 그는 잠시 방황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호주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평소 유학에 대한 꿈이 있던 차에, 이왕 유학을 가려면 빨리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용감하게 호주에 온 것이다.

 

▲ 어린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실로암장로교회의 다양한 모습들. ©실로암장로교회    

 

“결혼하고 두 달 만에 호주에 왔습니다. 그때 비자 받기도 쉽지 않아 일단 정탐 겸 제가 먼저 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호주에 사면령이 있을 것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사람들이 몰려올 때였습니다. 1988년 1월 26일이 호주건국 200주년이거든요.

 

그때 사면령이 내려진다는 소문이 돌아 한국사람들이 밀려들어올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돈이 없을 때라 캠시에 남자들만 사는 집 계단 밑에서 한 달을 살았습니다. 초창기 온 사람들은 다 경험하는 어려움이었죠.”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그 역시 맨 처음 와서는 고생도 많았다. 다행히 그는 1988년 PTC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고 한 학기를 마친 후 학교의 배려로 한국에 가서 아내를 데리고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호주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스승이자 멘토인 피터 해스티(Peter Hastie) 목사를 만나게 된다.

 

“학교에 입학한지 한 두 주가 지났는데 학장님이 어느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지 물었어요. 그래서 아직 정하지 않고 여러 곳을 다녀보고 있다고 하니까 에쉬필드 장로교회(Ashfield Presbyterian Churcch)를 추천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에쉬필드 장로교회를 갔습니다.

 

그때 피터 해스티 목사님이 그 교회를 목회하고 계셨습니다. 교회에 가보니 한국사람은 1.5세였던 여학생 딱 한 명 있었고, 95%가 백인이었어요. 어쨌든 저는 그곳에서 피터 목사님을 만난 것이 제 인생에 행운이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제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는데 어느 날 피터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주기철 목사님 예화를 하시는 거에요. 당신이 그만큼 관심을 갖고 한국 기독교에 대해 공부하고 와서 작정하고 알리신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호주인들이 한국에 대해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 후로 호주 성도들이 저희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말 따뜻하고 배려심도 많고 뛰어난 분입니다. 피터 해스티 목사님은 현재 멜번 장로교 신학대학(Presbyterian Theological College) 학장으로 계십니다.”

 

▲ 류병재 목사는 개척 초기부터 초신자를 위한 새가족반을 운영하는 한편 평신도를 깨우는 제자훈련 사역과 함께 전도폭발, 디모데성경연구원 등 교육에 남다른 열정으로 호주 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실로암장로교회     

 

그는 호주에서 목회를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 다른 생각들을 깊게 할 여유가 없었다.

 

“당시 공부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피터 목사님은 저에게 늘 여기 남아서 목회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사실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4학년 졸업할 때가 가까워오니까 피터 목사님은 강권하다시피 저를 데리고 가서 호주 장로교단 목회자 후보생 신청을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유학생 신분으로 호주장로교단에서 처음으로 목회자 후보생 이 된 사람입니다.”

 

얼떨결에 한 개척 그러나 예비된 섭리

 

류 전도사의 멘토였던 피터 목사는 류 전도사가 학업을 마치면 여러 가지 옵션이 있을 수 있는데 그가 여기 남아서 목회를 하도록 권면한 것이다.

 

“호주장로교단 목회자 후보생이었기 때문에 저는 졸업하면 호주 장로교 목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목회를 하는 사역지가 없으면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호주장로교단 총회내 다문화사역을 하는 목회 자리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총회 예산이 부족해 그 자리를 만들 수 없다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교회개척을 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피터 목사님도 개척을 하라고 하고, 이제 할 수 없이 개척을 해야 하나보다 하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해 6월쯤일 거예요. 스트라스필드 장로교회(St David’s Strathfield Presbyterian Church) 케빈 머레이(Kevin Murray)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저를 만나고 싶다고요. 그래서 저희 집에서 만났는데, 케빈 목사님이 자기 교회 안에서 시작하는 한인교회 개척안을 만들어 가지고 온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는 한 교회 개념이니까 너는 우리 교회 부목사로 오는 거고 렌트비도 낼 필요 없다. 그리고 교회가 자립할 때가 되면 독립시켜 주겠다. 뭐 최상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분이 간 다음 저는 한동안 멍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개척을 시키시는 구나!”

 

이렇게 얼떨결에 그는 스트라스필드 장로교회 안에서 한인교회인 실로암장로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사실 그때만 해도 한인들이 캠시에 많이 살 때였습니다. 스트라스필드에는 한인들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스트라스필드 장로교회를 방문하고 와서 하나님께 불평을 했습니다. 아니 하나님, 저에게 개척을 시키시려면 한인들이 많이 사는 캠시에 하게 하시지 왜 여기에 하십니까? 그때는 잘 몰라서 그런 거죠.”

 

이렇게 그는 이끌리다시피 해서 교회개척을 했다. 류 전도사 자의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예비하심 가운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호주에서 목회가 시작된 것이다.

 

젊은 교회, 유학생 사역, 제자훈련

 

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의 실로암장로교회를 그는 이렇게 추억한다.

 

“2000년까지는 주로 유학생 사역이 참 많았습니다. 제가 유학생 사역을 해야겠다 해서 한 것은 아니고요. 우연인지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주로 젊은 유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배경이다 보니 대체적으로 신앙생활을 처음하시는 분들도 많고 이분들이 전혀 복음에 대해서 모르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저는 새가족반에 집중하고 설교의 초점을 복음설교, 전도설교에 맞춰서 많이 했습니다. 저희 교회를 통해서 예수를 믿고 한국에 간 분들이 삼천 명이 넘습니다.”

 

류병재 목사는 개척 초기부터 초신자들을 위해 새가족반을 운영했고 1994년부터 평신도를 깨우는 제자훈련 사역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5년부터 전도폭발훈련, 1997에는 신구약 파노라마로 대표되는 디모데 성경연구원의 사역을 감당해 왔다.

 

이 모든 것이 시드니 한인교회에서는 가장 먼저 실시된 것이었고 지금도 그는 제자훈련 목회자 네트워크(CAL NET) 호주 대표로 섬기고 있다. 복음을 잘 모르던 유학생들이 교회에 들어와 새가족반을 거치며 예수를 영접하고 제자훈련과정을 통해 평신도 지도자로 세움을 받아 성장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안식월을 가진 2003년에는 한국에 있는 사랑의교회를 빌려 실로암 홈커밍 데이를 열고 실로암장로교회를 거쳐간 성도들과 함께 축하의 자리를 만들었다.

 

“2000년이 저희 교회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저희 교회가 이민교회다운 모습을 갖춰가고 그리고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교회로 다져졌습니다. 교회에 좋은 1.5세 사역자도 오고 청년부가 괄목하리만큼 성장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새가족반과 제자훈련을 통해 성도들이 성장하고 평신도 리더십이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시드니 올림픽이었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제가 시드니한인교역자협의회 선교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때 두 달 이상 시드니 올림픽 선교사역으로 교회사역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부담이 되긴 했지만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확신한 것은 선교를 위해 헌신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보상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제가 올림픽 선수촌 채플린 사역을 했었는데 그렇다고 제가 저희 교회를 선전하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그때 저희 교회가 참 많이 부흥했어요. 올림픽 사역을 기점으로 해서 교회가 참 많이 자라면서 교회가 또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저희 교회의 두 번째 십 년 동안 교회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 비전센터 계약 감사예배를 마친 후 전 교인들의 기념 촬영.(2010. 11)   ©실로암장로교회     

 

비전센터 계약

 

실로암장로교회는 성도들이 늘어남에 따라 교회 사무실은 스트라스필드 장로교회 안에 두고 있었지만, 1998년 4월부터 이미 예배 장소를 ACU(Australian Catholic University) 강당으로 옮겨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옮기는 과정도 기적 같은 이야기가 있지만 지면상 길게 나누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ACU강당을 예배 장소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장년성도들이 3백 명이 넘어가자 평신도들 사이에서 교회 건물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장년 성도 3백 명이 넘어서면 교회는 반드시 교회 건물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저희 교회도 교회 건물 문제가 다가오게 된 거죠. 매주 악기들을 옮겨야 하니까 힘들고, 교육기관들 짐 잃어버리고 악기들 옮기다가 손상되고 하면서 교회 건물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저보다 먼저 평신도들이 먼저 자체 건물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건축 헌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 건축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으면서 2010년 11월에 지금의 이 건물을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류병재 목사는 제자훈련 사역을 하면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강조해왔다. 그래서 그는 교회 건물인 예배당을 ‘성전’으로 부르지 않는다. 사실 구약의 성전은 이미 훼파되고 없어진지 오래다.

 

▲ ©실로암장로교회     © 크리스찬리뷰

 

그래서 사도바울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고 설파하고 있다.

 

우리 성도들이 바로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더 이상 건물 성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예배당’ 또는 ‘교회’라고 하면 될 것을 ‘성전’으로 오용해 사용해 왔다.

 

교회 건축을 강조하기 위해 또는 다른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교회 건물을 ‘성전’으로 부르는 것을 즐겨했다. 이것은 앞으로 한국교회가 바꾸어야 할 가장 시급한 교회 언어 중 하나이다.

 

“2010년 11월 저희가 라이달미어(Rydalmere) 건물을 계약할 당시 2층은 컴퓨터 회사였고, 1층은 오토바이 부품가게였습니다. 스트라스필드 장로교회도 코너스톤교회로 이름이 바뀌고 중국 커뮤니티 중심의 교회가 되었어요. 그 교회도 커져가고, 그래서 저희도 함께 생활하기가 불편한 상태가 되어 막 나가야 할 시기였습니다.

 

그때 기적적으로 저희가 이 건물을 148만 불(1.48million)에 구입하게 된 것입니다(또 다시 기적적인 이야기가 있지만 지면상 생략한다). 그리고 2011년 2월 이곳으로 짐을 옮겨왔습니다. 다음에 우선 1층을 교회 사무실을 포함 수요예배, 새벽기도, 제자훈련 등 사역센터로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공사를 하면서 교회에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가 건축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 크리스찬리뷰

 

류 목사는 이 부분을 말하며 말을 아낀다. 라이달미어 건물을 구입했지만 바로 예배당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리모델링 공사가 필요했다. 우선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사역을 위한 장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1층을 먼저 공사하기로 했는데 그만 교회가 건물을 구입하고 공사를 하면서 생각지 못한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보통 교회는 이런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될 때 많은 경우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류 목사는 2012년에 위기를 겪는다. 많은 성도들은 아니었지만 부교역자와 함께 성도들이 나가서 교회를 세우면서 성장하던 교회가 탄력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함께 끝냅시다!

Lets finish together!

 

“공사를 하면서 어려움이 처음 생겼습니다. 교회가 건물을 구입하고 건축 프로젝트하는 과정이 시작되니까 교회는 사실상 부흥이 멈췄고요. 확실히 새가족들이 들어오는 것도 현저히 줄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부 성도들이 부교역자와 나가서 교회를 새로 설립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건축이라는 과정을 통과해봐야 성숙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성도들도 건축을 해봐야 진짜 내교회구나 하는 애착도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어려움을 견뎌냈던 성도들이 이 과정을 통과하면서 진짜 교회에 대한 사랑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실로암장로교회는 호주장로교단에 속한 교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을 구입하더라도 개교회가 마음대로 사고팔고 할 수 없다. 물론 교회 건물을 구입할 때도 호주장로교 노회의 허락과 개입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류 목사는 건물 교회보다 예수의 참제자로 거듭난 성도들의 유기적 모임이 진짜 ‘교회’라고 생각하는 목회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건축과정에서 생긴 진짜 교회인 성도들의 아픔이 그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을 것이다.

 

“함께 이 어려움을 통과한 성도들 모두 더 성숙해지고 더 단단하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1층을 공사한 후 2층 본 공사를 한 후 2층을 본 예배당으로 사용하려고 계획을 했었는데 그만 어려움이 생기는 바람에 교회가 위축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다가 저희가 건물을 사면서 호주장로교단에 빚이 있었는데 그것을 다 갚기 전에 무리해서 큰 돈을 들여 공사를 하는 것도 교단에서 허락하지 않았어요. 이래저래 지난 9년 동안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힘든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그러면서 2층을 리모델링 공사를 해서 여기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죠. 그렇다고 그게 제 마음대로 되나요?”

 

▲ 비전센터 입당감사예배가 지난 5월 16일 동교회 본당에서 열렸다.  ©실로암장로교회     

 

그런데 2019년 비전센터 위원장을 새로 맡으신 장로님께서 한두 명 모이더라도 이 일을 위해 기도회를 하자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불씨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점화되면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동전 모으기 캠페인까지 확산되면서 성도들에게 동기부여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성도들 안에 무브먼트가 생겨나서 2019년 11월에 2차 본당 공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처음 교회 건물을 구입할 때도 평신도들의 제안과 그들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어 교회건물 구입하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교회 건물을 구입하고 먼저 1층 내부 공사를 하는 와중에 어려움이 생겨 중단이 되었다.

 

그런데 7년의 시간이 지나고 평신도 리더십이 다시 세워지자 성도들 스스로 교회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끝내야 한다는 비전이 생겨 2019년 건물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했다. 구호도 “Let’s finish together”로 정하고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기도하며 일어섰다.

 

실로암장로교회 비전센터 완공

 

“공사한지 얼마되지 않아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공사하는 중간에 팬데믹이 오는 바람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아, 이거 어떻게 해야지? 참 기도 많이 했습니다. 기도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성도들이 요동하지 않고 잘 버텨 주었고요. 어려운 가운데 헌금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호주장로교 총회에서도 추가로 융자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지난 5월 16일, 설립 30주년을 앞두고 비전센터 입당 감사예배를 드렸다. 2층은 5백 석 규모의 예배당 시설이 아름답게 꾸며졌고 지금은 칸막이로 닫고 있지만 다른 대형 집회들을 대비해서 칸막이를 열고 의자만 놓으면 1천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바뀌게 만들어 놓았다. 주일에는 예배당으로 사용하지만 평상시엔 이 공간이 본 교회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나 한인 커뮤니티에서 요청하면 교회를 개방하여 공연이나 집회장소로 대여해 줄 계획이다.

 

▲ 교회 건축에 헌신한 임정호 대표와 강우인 대표에게 감사패를 증정하고 케익 커팅식을 가졌다.©실로암장로교회     

 

비전센터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추가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지면에서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공사를 하다보면 그렇듯이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많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류 목사와 한 마음이 되어 어려운 고비들을 다 넘어왔다. 이제 실로암장로교회는 세 번째 터닝 포인트를 지나 40주년을 내다보며 앞으로 나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실로암 장로교회의 비전,

한인교회가 영어사역 교회를 개척하다

 

“저는 교회의 본질을 세 가지로 봅니다. ‘돌핀’이라고 하는 영화 보셨나요? 그 영화의 주제가 저의 목회를 잘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 동물 보호소가 나오는데 그 동물보호소의 미션 스테이트먼트가 세 단어입니다.

 

Rescue, Rehab, Release(구출하고, 재활하고, 방면하다) 입니다. 위험에 빠진 동물들을 구조하고 잘 치료하고 재활해서 방생하는 것이죠. 저는 이것이 교회의 존재목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 실로암장로교회는 라이달미어 지역에서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사람(교회)들을 잘 세우는 교회가 되어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실로암장로교회  

 

교회는 첫 번째로 예수님의 복음으로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잘 구출하는 것이 첫 번째 사역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교회에서 복음설교, 전도설교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rehab이죠. 구조 받은 사람들을 잘 회복시키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바로 제자훈련이죠! 제가 1993년 옥한흠 목사님을 만나 제자훈련을 배웠고 이것을 통해 평신도들을 세워 나가는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희 교회의 나름대로의 정체성(identity)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release죠. 이 부분이 저희 교회가 가장 약했던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앞으로 저희가 이 부분에 치중하려고 합니다. 금년 10월에 폴 리차드(Paul Richard)라는 호주 백인 목사님이 오실 것입니다. 이분은 저희 교회에서 자란 분입니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12년 동안 저희 교회에서 2세 청년사역을 하셨던 분입니다. 이분이 호주교회에서 7년을 사역한 뒤 올 10월에 다시 우리 교회로 옵니다. 저희 교회 안에 영어사역교회가 개척될 것입니다.

 

일단 EM 사역을 시작하지만 준비되는 로컬 영어교회가 저희 교회 안에서 개척이 될 것입니다. 저희는 더 이상 코리안 교회가 아니고 호주 로컬 교회가 같이 있는 호주 로컬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 개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류병재 목사도 그의 교회 개척을 호주 스트라스필드 장로교회 안에서 시작했다. 이제 그 받은 빚을 갚게 되었다. 한국교회가 호주교회를 개척한다고 생각하니 이 얼마나 뿌듯하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그는 앞으로 그가 은퇴할 때까지 교회를 개방하여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아웃리치에 비전을 두고 사역할 계획이다. 그는 라이달미어 지역에 비전센터를 완공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역사회를 섬기라고 주신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성도 한 성도가 교회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지난 30년 동안 목회생활 가운데 가장 보람있었던 일이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지난 30년 동안 사역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이번 비전센터 건축도 아니고, 30년 동안 이렇게 사역을 잘 해왔다 이런 것도 아니고 성도의 기도가 응답될 때가 가장 보람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희 성도중 한 분이 사고로 생명이 위태로웠던 형제가 있었는데 그때 교회가 몇 달 동안 기도 많이 했습니다. 정말 기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형제를 회복시켜 주시고 교회에 다시 나와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을 때, 아마 그때가 저의 30년 목회 중에 가장 보람되고 기쁘고 행복했던 때라고 기억됩니다.”

 

류병재 목사는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아는 목회자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바로 사람이다. 한 성도, 한 성도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교회)이다.

 

이 한 사람의 가치를 그는 제자훈련을 통해 일궈내고 있다. 실로암장로교회가 라이달미어 지역에서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사람(교회)들을 잘 세우는 교회가 되어지기를 기대한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권순형|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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