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쓰임받은 리처드 존슨 목사(Rev Richard Johnson)
 
정지수/크리스찬리뷰
▲ 영국 성공회 목사인 호주 최초의 성직자 리차드 존슨 목사.(1753-1827)   ©SLM     


1788년에 영국 정부는 교도소가 죄인들로 넘쳐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 발견된 신대륙 호주에 죄수들을 이주시켰다. 새로 발견한 신대륙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개척해 이익을 보려고 했던 것이다.

 

이후 세월이 흘러 영국이 건설한 호주 식민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한편, 1988년은 영국 정부가 호주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지 200주년이 된 해였다. 많은 사람들은 영국인들을 중심으로 한 유럽인들의 호주 개척이 시작된 것을 크게 기념하였다. 그리스도인들도 1988년을 크게 기념했는데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호주 땅에 전파된지 200주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1788년 1월 6일, 31세의 영국 성공회 목사인 리처드 존슨은 그의 아내와 함께 6백 톤의 작은 범선인 시리우스호를 타고 있었다. 그가 타고 있었던 시리우스호는 호주로 향하는 11척의 함대의 기함이었다. 여섯 척의 죄수 호송선들과 세 척의 보급선들 그리고 또 다른 한 척의 호송선이 호주를 향한 긴 여정에 함께 하고 있었다.

 

이 함대에 탑승해 호주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약 1천여 명이었다. 남자 죄수 5백65명, 여자 죄수 1백53명, 죄수들의 자녀 11명, 장교들과 승무원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 2백53명이 멀고도 먼 항해를 했다.

 

▲ 1788년 1월 6일 호주로 향하는 11척 함대의 기함 시리우스 호 (유화)  ©SLME

 

새로 발견된 신대륙인 호주로 가는 길은 모든 사람들에게 험난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죄수들에게는 이 항해가 더욱 끔찍한 경험이었다. 배에서 죄수들이 문제를 일으키자 군인들은 죄수들을 벌거벗겨 채찍질을 했고, 여성 죄수들의 머리를 깎아버리기도 했다.

 

식량이 부족해 군인들과 죄수들 모두에게 적은 양의 음식과 식수가 제공되었다. 몇 주 동안은 추워서 사람들이 고생을 했고 때때로 바닷물이 배 안으로 들어와 침실이 침수되기도 했다. 강풍이 불어서 갑판 위에 나가지 못하는 날들도 많았다.

 

이런 힘든 항해 가운데서도 존슨 목사는 선상에서 매 주일마다 예배를 드렸다. 1788년 1월 7일에 신대륙 호주로 향하던 사람들은 처음으로 호주의 해안을 보았고 2주 후에는 뉴사우스웨일즈(NSW)의 보타니 만(Botany Bay)에 정박했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적 역사

 

리처드 존슨 목사가 호주 동부 해안(지금의 시드니 록스 지역, The Rocks)을 처음 밟았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존슨 목사는 무사히 호주에 도착한 것을 크게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가 호주에 온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이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위대한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꿈꾸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의 가능성을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그에게 주어진 목회자로서의 사명에 충실하려고 했다. 하지만 존슨 목사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적 역사에 의해 호주에 오게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는 호주 땅을 최초로 밟은 목사였다.

 

▲ 뉴 헤브리디스(현 바누아트)의 초기 지도 (1887)   ©SLM 

 

호주의 유명한 역사학자인 매닝 클라크(Manning Clark) 교수는 영국인들이 호주를 발견하고 정착하기 이전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호주 주변이나 호주를 방문했었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힌두교도들과 불교도들이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들에 방문했었고, 중국인들이 향해 중에 잠시 호주 서부 지역에 들렸었다.

 

이슬람 사람들이 인도네시아까지는 진출했지만 호주까지는 오지 못했고 포르투갈인, 스페인인, 네덜란드인, 프랑스인이 모두 호주 주변을 향해했고 호주를 발견하기도했지만 정착하지는 않았다.

 

포르투갈 항해사로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을 위해 탐험을 했던 페드로 페르단데즈 디 큐리오스 (Pedro Ferdandez de Quiros)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가톨릭 교회의 신도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항해를 했으며 호주 근처인 뉴헤브리디스 제도 (New Hebrides, 지금의 바누아투)를 방문했다.

 

그는 뉴헤브리디스 제도 주변의 모든 지역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참된 교회의 일원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그는 방문한 뉴헤브리디스 제도를 포함한 주변 지역을 오스트리알리아(Austrialia)라고 불렀고 이 오스트리알리아가 성령님의 위대한 땅이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Austrialia del Espiritu Santo).

 

큐리오스를 포함한 여러 유럽의 항해사들이 뉴 헤브리디스 제도까지는 항해했지만,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 호주를 발견하거나 방문하지는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해풍이나 해류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막았을 수도 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였다. 하나님께서는 죄수들이 이 땅에 정착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땅에 개신교 교회들의 선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려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하심이 있었다. 그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하심에 따라 존슨 목사가 호주에 오게 된 것이었다.

 

군목으로서의 존슨 목사

 

존슨 목사는 군목이었기 때문에 영국 정부가 그에게 지시한 것은 무엇이든 따라야 했다. 아서 필립 총독 (Governor Arthur Philip)은 식민지의 주민들이 사회 질서를 잘 지킬 수 있도록 통치해야 했고, 그들이 종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필립 총독은 매주 주민들이 공동기도서를 읽도록 권장하였고 주일을 어기거나 욕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신성모독적 행위를 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법을 재정해 집행했다.

 

존슨 목사도 자신이 군목으로서 식민지 사회에서 주민들을 영적으로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총독을 도와 이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존슨 목사는 총독을 비롯해 정부 공직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보다는 선행을 강조하는 설교를 더 선호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한편, 군목으로서 존슨 목사는 교수형 집행에 참여했다. 그는 교수형을 당하는 죄수들을 위해 기도를 했다. 때때로 그는 치안판사로 활동해야 하기도 했다. 사람들 눈에는 그가 당국에 협력하는 목사로 보여졌다. 이 때문에 많은 죄수들은 존슨 목사와 거리를 두었다.

 

한편 존슨 목사는 호주 정착 후 2주 만에 14번의 결혼식을 주례했다. 또한 처음 5년 동안 그는 2백26명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2백20번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했고, 8백51번의 장례식을 인도했다.

 

호주에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드려진 예배

 

1788년 2월 3일에 존슨 목사는 호주에서 최초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인도했다. 당시에는 교회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나무 그늘 아래서 예배를 드렸다. 존슨 목사는 나무 그늘 아래서 드려진 예배에서 시편 116편 12절의 말씀을 설교 본문으로 삼았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라.”

 

▲ 호주에서 첫 번째 교회가 세워졌던 시드니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리차드 존슨 스퀘어에 리차드 존슨 목사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크리스찬리뷰

 

하지만, 이 구절을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보면 설교 본문으로 알맞지 않은 구절처럼 보였다. 당시 사람들은 험난한 항해를 뚫고 새로운 땅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그 땅에는 새롭고 신비하고 두려운 동물들이 많이 있었다. 너무나 커다란 쥐들이 돌아다녔고 얼굴로 날아오는 커다란 파리들도 있었다.

 

한편 그들은 양식의 부족으로 굶주림과 싸우고 있었고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땅에 도착했지만 정착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또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져 향수병에 걸리기도 했다. 죄수들과 군인들 사이에 관계도 좋지 않았고 죄수들 사이에서도 심한 불화가 있었다.

 

하지만 시편 116편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 보면 이 말씀이 최초 정착민들이 처한 상황 가운데 가장 적합한 말씀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죽음의 슬픔이 나를 얽어 매고 지옥의 고통이 내게 미쳐 내가 고통과 슬픔에 잠겨 있던 그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오 여호와여, 주께 간구합니다. 나를 구원하소서!’” (시편 116: 3~4, 우리말성경)

 

이 말씀은 당시 죄수들과 정착민들이 처한 상황과 매우 비슷했다. 그들은 고통과 슬픔에 잠겨 있었다. 굶주림과 질병 그리고 생존에 대한 두려움 등이 그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 넣었다.

 

“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죽음에서 건져 주시고 내 눈에서 눈물을 거둬 주시며 내 발이 넘어지지 않게 하시어 내가 산 사람들의 땅에서 여호와 앞에 다니게 하셨습니다.” (시편 116: 8~9, 우리말성경)

 

이 말씀은 죽음을 넘나드는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생존해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와닿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처럼 그들은 목숨을 건 항해에서 생존하였고, 새로운 땅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래서 존슨 목사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든 사람들은 시편의 저자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 존슨 목사가 사용하던 성경과 공동기도서와 성찬용품들.  ©크리스찬리뷰 자료사진     

 

“여호와께서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내가 어떻게 다 갚겠습니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모든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께 내 서원을 지키겠습니다.” (시편 116:12~14, 우리말성경)

 

지난 200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시편을 읽었다. 오늘 날에도 이 시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행운의 나라’인 호주에서 살고 있다.

 

이 복된 땅에서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존슨 목사가 인용한 시편의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있다.

 

“내가 주께 감사제물을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내가 모든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께 내 서원을 지키겠습니다.” (시편 116: 17~18, 우리말성경) 〠 <계속>

 

*이 글은 Barry Chant 박사의 글을 참고했음.

 

정지수|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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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9/27 [14:46]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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