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론(敎會論) I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9/27 [14:52]
 ©Nathan Mullet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벧전 2:9-10)

 

예수는 Yes, 교회는 No

 

사회를 계도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는 Yes, 교회는 No”라는 말들을 한다. 왜 한국교회의 위상이 이처럼 실추되었을까? 많은 원인들이 있겠지만, 이 자리가 한국교회를 비판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은 피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의 여러 문제 중 근본적인 이유는 ‘교회론’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탐구 없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 달려든 수많은 목회자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세상으로부터 비판을 당하고 있는가? 오늘날 ‘교회’같이 보이긴 하지만 ‘교회’로서의 바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교회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 모든 것이 한 가지 원인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와 ‘교회론’에 대한 올바른 정립 없이 치달은 무모함의 결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교회론을 시작하며

 

이처럼 교회론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개신교 교회론은 조직신학의 다른 연구분야보다 발전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종교개혁 당시에 로마 카톨릭과 가장 많은 충돌을 보였던 분야였기에 주로 카톨릭에 대한 변증으로 이루어진 데 그 원인이 있다.

 

반면에 로마 카톨릭 신학은 역사적으로 그 어떤 신학보다도 교회론을 중요하게 취급하여 다루고 있다. 그에 비해 개신교 신학에서는 상대적으로 교회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와서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커지고 있고 이것이 교회론에 영향을 끼쳐 교회론이 발전하는 추세에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루이스 벌코프가 지적하는 대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를 죄인인 인간에게 적용하는 교리(구원론)는 자연스럽게 교회론으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구원론(성령론)은 교회론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직신학의 각 주제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마는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사역을 통해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키고 유기적인 한 몸을 이루게 하는 교회에 대해 살피는 것은 개신교가 개교회주의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개교회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이때에 특별히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하고 고민해 보아야 할 주제임이 틀림이 없다.

 

교회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교회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외관과 뾰족한 종탑이 높게 걸려 있고 스테인드 글라스 유리로 장식된 건축물을 교회라고 답할지 모른다.

 

특별히 호주에는 오래 전에 지어진 아름다운 교회 건물들이 많이 있다. 어떤 교회 건물은 헤리티지(Heritage) 로까지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러한 건물이 교회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를 생각할 때 교회 안에 있는 제도와 조직, 구조 등을 교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도 진정한 교회는 아니다.

 

이러한 개념들은 교회를 건물로 생각하는 사람들 또는 로마 카톨릭이 생각하는 개념들일지는 몰라도 교회의 본질과는 관계가 없다. 이러한 생각들은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교회에 대한 이해와도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일까? 신약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the body of Christ)인 교회, 공동체(fellowship)의 본질은 무엇일까?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마태복음 16장 15-18절은 교회론을 이해하는 중요한 말씀으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는 이 말씀을 다르게 해석함으로 교회론에 대한 이해가 갈라진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5-18)”

 

베드로는 분명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로, 다니엘의 환상에 나타난 영광스러운 인자, 곧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와 함께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을 분(단7:3-14)으로 고백한다. 베드로는 예수가 메시야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고백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베드로의 이 고백이 얼마나 비상한 고백인지 인정한다. 베드로의 고백은 성부의 특별한 계시로부터 왔던 계시였다(마 11:27). 그러므로 마태복음 16:18에서 베드로는 예수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얻는 권위를 수여받는다.

 

베드로는 예수가 인정하듯이 신적인 권위에 기초하여 예수가 누구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예수는 베드로를 새로운 형태의 하나님나라의 초석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개신교는 ‘반석’이 의미하는 바를 베드로의 신앙 고백으로 이해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주님은 “이것을 너에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주신 지식”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하신 말씀은 베드로란 한 인간을 가리킨 표현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베드로가 고백했던 그 고백의 핵심, 즉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을 기초로 하여 교회를 세울 것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동시에 그와 같은 고백이 만 세대에 교회를 이루는 교회의 기초가 될 것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교회란 바로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은 이 성경 구절을 근거로 베드로가 반석이고 베드로의 인격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의미로 해석해 왔다. 따라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교회 최고의 지위와 교회 통치의 최고권을 주셨다고 믿을 뿐 아니라 그 계승자인 로마 교황에게도 교회의 최고권위를 주셨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은 교황권의 권위가 베드로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보고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인정한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가 천국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황의 말을 성경만큼이나 권위를 주고 따르고 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의 교회론의 정의는 “교회는 교회의 우두머리인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성직자들의 위계적 질서이며 더 나아가서는 평신도까지 포함하는 교회조직의 위계”라고 정의한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ACC(호주기독교대학) /ACT 교수

▲ 주경식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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