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는 아내와 배려라고는 없는 남편

서을식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9/27 [15:24]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 (열왕기하 4:13)

 

아들이 집을 샀다. ‘함께 살자’하여 짐을 줄여 이사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세대는 모든 것이 인터넷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나의 서재는 가족들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

 

펜데믹이라 가능한 일이었으나 우연히 환갑을 맞는 날에 이사하게 되면서 ‘내가 늙었다고 무시하나?’라는 생각도 스쳤다. 나름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서재를 분산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연구를 위해 필요한 서적은 교회 사무실로 누구나 그냥 볼만한 책은 거실이나 방에 비치하고 나만 찾을 책은 게라지로 그리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린다! 엄청난 분량의 책을 두 달에 걸쳐 리사이클 빈과 스킵 빈에 꽉꽉 채워 버렸다. 섭섭했으나 나중에는 마음껏 버리니 후련하기도 했다.

 

이사하고 게라지에서 맴도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아내가 방 한쪽을 기꺼이 내줬다. 그래도, 밤새며 영상 찍는 날은 많이 불편했던지, 아니면 여느 때처럼 내가 하는 다른 미운 짓이나 말로 인해 심사가 뒤틀렸는지, 불평했다. “게라지와 안방까지 차지하고, 배려가 전혀 없다”고.

 

나 역시 심사가 꼬였다. 마침 펜데믹 통금이 해제되고 규제도 완화된 참이라, 당장 교회 사무실로 옮겨 영상을 촬영했다. 촬영과 편집을 마치고, 컴퓨터로 렌더링하라 일 시켜놓고 맞는 여유로운 시간에 시장기가 느껴져 신라면 하나를 빠개 먹었다.

 

지루하게 컴퓨터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랩톱 뚜껑을 열어놓은 채 들고 차에 넣고 집에 왔다. 새벽 3시, 아내가 방에 없다. 세탁장 앞 딸이 오피스로 쓰는 방 옆 구석에 놓인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다. 또 언제 변덕 부려 안방을 이용할지 모르는 배려 없는 남편을 위해 그곳에서 잠들었나 보다.

 

잠을 방해할까봐 그냥 놓아두고 침대에 누웠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지! 그래 안방은 아내에게 내줘야지!’라는 생각이 들어 작은 서재 겸 촬영공간을 이참에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들을 위해 차를 옮겨주고 들어오다 보니, 베란다의 한편 구석이 보였다. 모닝커피와 함께 밝아오는 여명을 즐기고, 이내 눈부신 아침 햇살을 흠뻑 맞으며 글을 쓸 수 있는 곳, ‘그래, 내 자리는 처음부터 저곳이었어!’ 개인적인 묵상, 성찰, 그리고 착상은 베란다에서, 본격적인 연구는 교회 사무실에서, 생각과 경험을 넓히고 나누는 여러 창조적 작업은 게라지에서! 드디어 아내의 공간과는 별개로 나만의 공간이 마련, 아니 나의 세계가 피라미드로 완성된 순간이었다.

 

새로 마련한 나의 베란다 코너 책상에 여유롭게 앉아 집 앞을 스쳐 지나가는 차들을 보고 있자니 참 다양하다. 모터바이크에서부터 승용차, 밴, 유티, 그리고 슈퍼마켓의 대형 배달 트럭, 컨테이너나 카 캐리어 트레일러까지…모두 특정 필요에 따라 효율성과 경제성을 따져 설계 제작되어 나름 이름을 갖고 있을 텐데, ‘애들아, 내가 너희들 이름을 다 몰라서 미안하다.’

 

‘우리 인생이 이와 같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는 자신에게 최적화된 생활 형태로 상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삶을 산다. 어느 날 스탠딩 대화 중에 나의 ‘틀린 것’이라는 표현을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라고 바로잡아 주던 한 형제의 말처럼, 모두의 생각과 필요 상황과 환경이 다르니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생활 태도와 생존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으리.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살려면, 공존과 상생을 위해, 소통이 필요하다.

 

미디어의 역할이 대단하다. 이번 펜데믹 기간을 통해서 코로나를 물리치기 위해 인류애에 기초한 지구촌의 노력을 목격하는 기쁨은 참으로 컸다. ‘함께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라는 마음 울리는 감동이 여러 차례였다.

 

너무 날 세우지 말고, 조금씩 무뎌져 배려하고 품자. 이것이 마음 넓은 사람의 이해, 가슴 큰 사람의 용서, 용기 있는 자의 관용, 현인의 중용, 예수님이 보여준 사랑하는 생활 자세일 것이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하나님 우편에서 인간의 삶 속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에 찾아온 예수님께서 보여주고 가르친 생활 속 교훈들이 유난히 내 주변에 맴도는 아침이다.

 

추석은 지나갔다. ‘풍성’이 아니고 ‘열매’에 초점을 맞춰, ‘부’가 아니고 ‘헌’을 붙들고 10월을 맞자. 그래야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공헌하고 헌신한 사람들을 기리는 날이 많은 10월이 더 뜻깊을 것이다. 안방의 일부를 내주는 큰 배려를 한 아내를 배려심 하나 없이 대한 남편은 “게라지 안방 다 차지하고 배려라고는 없다”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 〠

 

서을식|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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