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앞 당겨진 미래, 축복인가?

양지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11/29 [15:32]

 

 ©Osman-Rana     

 

“양(量)적 변화가 축적되면 질(質)적으로 변화한다”

-*헤겔-

 

인류는 미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비행기가 이륙할 때면 나는 창밖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는 습관이 있다. 건물과 도로와 자동차들이 점점 작아지다가 알아 볼 수 없게 되고 개별적 인간의 흔적이 더 이상 감지되지 않을 때, 저 아래에 있는 고요한 세상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 왔을까? 라고 자문하게 된다.

 

올해는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의 위협으로 이전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일상’ 속에서 숨죽여 보낸 두 번째 해가 되었다.

 

이동의 자유 박탈, 개인 간 거리 두기, 외출 시 마스크 착용 의무, 사업장 입장시 QR코드 등록과 2번 백신 완료 증명서 지참 등 COVID-19가 가져온 삶의 변화는 미래에 다가올 불안한 세상을 미리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미래의 질병은 이미 자연 속에 숨어 있다

 

오늘날 전 세계의 바이러스 감염병 학계는 거의 5년마다 주기적으로 발생한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SA RS), 신종 플루(조류독감), 메르스의 경우를 볼 때 설령COVID-19를 종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고 해도 최소 5년 안에 또 다른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출몰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렇다면, 이런 무서운 대재앙과 인간의 행위 사이에 무슨 인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돌아보면, 20세기 이후 전 세계 인구는 무서울 정도로 급속도로 증가해 왔다. 1820년에는 전 세계 인구가 약 10억 명이었다. 1920년에는 20억, 1960년에 30억, 1975년에 40억, 1987년에 50억, 2000년에 60억, 2010년에는 70억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세계 인구 시계는 약 79억 명을 가르키고 있다.

 

한편, 놀라운 사실은 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대조적으로 현재 진행되는 생물의 멸종은 정상적인 진화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수백 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유엔 세계 생물 다양성 위원회는 하루에 150종이 멸종하고, 10분마다 하나의 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경종을 울린다.

 

생물 다양성의 상실은 곧 인간의 종말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이제 지구는 사람들로 가득 찼으나 인간 자신뿐만 아니라 수백만 종에 달하는 식물과 동물 종들의 멸종을 앞당기고 있다.

 

**질병 생태학자들은 “새로운 질병 발생의 대부분은 동물로부터 인간에게 전염되는 것들인데, 갑작스러운 인구 증가로 인간 활동이 다양한 야생 동물의 서식지를 침범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살아남은 야생 동물들의 서식지가 점점 줄어들어 인간의 거주지와 중첩하게 될 때, 낯선 병원체(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만날 기회가 증가한다. 동물들을 괴롭히고 서식지를 파괴하면 치명적인 병원체가 우리에게 전염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역설이다.

 

신성은 되어 버린 것과 굳어 버린 것이 아니라, 되어 가는 것, 변해 가는 것에 내재한다

 

해부학적 구조나 모습이 오늘날 우리와 같은 수준의 현생인류 (modern Homo sapiens)의 조상이 출현한 시점은 대략 기원 전 30만 년 전이라고 하며, 그 이후 총 1,060억 명의 사람들이 지구에 태어났다고 추정된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 수가 약 79억 명이라면 지금까지 존재했던 전체 사람 수의 약 7.5%가 현재 지구에 살고 있고 981억 명은 흙으로 돌아간 것이다.

 

인간이 본래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데는 우리의 존재적 정체성에 대한 원초적 사유가 담겨 있다. 우리는 죽으면 땅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곳이 땅이니, 유래한 곳 또한 땅일 것이다. 결국 그 모든 것은 지구의 지표면 위에서 42억 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나는 신이 있다면 그의 신성은 되어 버린 것과 굳어 버린 것이 아니라 되어 가는 것, 변해 가는 것에 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세상이 변하는 원리를 설명할 때 헤겔의 변증법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양질 전환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 법칙은 “양(量)적 변화가 축적되면 질(質)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으로, 양적 변화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질적 변화가 발생해 예전에 없던 특성이 갑자기 나타나고, 이런 현상을 자연 과학에서는 ***창발성 (emergence, emergent property)이라고 부른다.

 

나는 인류가 만들어 낸 종교, 국가, 화폐와 같은 정신 및 물질문명도, 다양한 사람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도시에 밀집되어 살 때 발현된 창발성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기독교가 전 세계에서 모든 질서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기독교적 교리와 이에 따른 세계 해석을 절대적 진리와 선으로 믿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사회성 진화의 냉엄한 법칙이 하나 숨어있다. 이기적 개인이 이타적 개인을 이기지만, 이타주의자들의 집단은 이기주의자들의 집단을 이긴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서구사회는 더 이상 이타주의자들의 집단이 아니다.

 

지난 3세기 동안 서양 과학은 환원주의에 의존해 왔다. 사물을 간단한 구성요소로 나누어 이해하면, 그것들을 종합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복잡성의 창발 개념은 전체가 그 부분들을 합쳐놓은 것보다 언제나 훨씬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환원주의의 분석적인 프레임으로는 신성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무신론자들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신앙인들이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난제일 수도 있다.

 

연재를 마치며

 

금년 1월부터 12월까지 매달 크리스찬리뷰지에 '인간 탐구'라는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주제로 글을 힘겹게 써 오면서 나의 얇은 지식과 생각의 바닥을 보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신앙인들에게 혹시 민폐가 되지 않았을까 심히 두렵기도 하다.

 

10월 11일, NSW주 시민들은 107일간의 록다운(봉쇄 조치)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언론들은 이날을 ‘자유의 날’(Freedom day)이라고 불렀다.

 

이제 자판에서 손을 놓고 바깥으로 나가 봐야겠다. 하늘과 땅 사이 신령한 생명의 공간 속에서 몸과 마음을 열고 우주의 숨을 천천히 호흡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나의 위태로운 작은 신앙의 시간을 위해서..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관념 철학을 대표하는 독일의 철학자다. 정반합(正反合)의 개념으로 정형화한 헤겔의 변증법은 카를 마르크스 (Karl Marx)에게 영향을 주었다.

 

변증법은 만물이 본질적으로 끊임없는 변화 과정에 있음을 주창하면서 그 변화의 원인을 내부적인 자기 부정, 즉 모순에 있다고 보았다.

 

**질병 생태학 : 인수 공통 감염증(人獸共通感染症, zoonoses)과 같이 사람과 동물이 공통으로 병원체의 매개자 역할을 하는 전염병의 발생과 유행을 생태학적으로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창발이란 말은 철학, 과학, 생태학, 경제학 등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개념이다. 단위체 (개별적인 단백질, 신경세포, 곤충)들이 무리를 이루어 상호작용할 때 단위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새로운 성질이나 기능이 나타나는 것 (emergence)을 말한다.

 

<창발성의 예>

 

인간의 세포 속에는 다양한 단백질(효소)이 있는데, 그 개별적인 단백질은 단순한 기능을 갖는 고분자 물질이지만, 수천만 개의 단백질이 세포 안에서 기능을 하면 ‘살아있다’는 ‘생명현상’이 나타난다.

 

인간 게놈 (human genome)을 구성하는 약 2만 개의 유전자 중 3분의 1가량이 뇌에서 발현되어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뉴런 neuron)를 구성하는데, 신경 세포 하나하나만 보면 스위치를 켜거나 끄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단순한 기능을 갖지만, 이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면 놀라운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사고와 의식, 즉 정신이 창발한다.〠

 

양지연|ANU 석사(분자생물학), 독일 괴테대학 박사(생물정보학), 카톨릭의대 연구 전임교수 역임.

▲ 양지연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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