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E, 복음의 씨앗을 뿌리다

이영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3/28 [14:53]
▲ 타리 마을 SRE 클래스의 어린이들과 함께 한 이영식 선교사(왼쪽 3번째)  ©이영식     


1960년대 말, 서울 변두리 한 동네에 미국 선교사들의 전도 집회가 열렸다.

 

“예수 믿으세요.”

 

그들의 혀 꼬부라진 발음은 동네 꼬마들의 웃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로부터 반 세기가 훌쩍 지난 오늘날, 그 동네 꼬마들 중 하나였던 나는 미국인 선교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호주 원주민 어린이들 앞에서 그들이 듣기에 어눌한 발음으로 “Believe in Jesus.“를 외치고 있다.

 

4대째 예수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한 기독교 규율 아래서 자란 나는 언제부턴가 ‘하나님의 부르심’(목회자로 헌신해야 한다는)이란 주제에 온통 사로잡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르심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던 중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이해와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이 길을 가는 것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 하던 일을 모두 접고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호주 원주민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하던 나에게 당신께서 그들을 사랑하고 있노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아내와 함께 호주 원주민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선교사 훈련을 받으려 했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소속 교단 산하의 선교훈련원(GMS)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호주 원주민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차있던 나는 얼마 후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시드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를 부르신 그분의 음성에 답하기 위한 무모하지만 용감한 첫 걸음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직 선교사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우리들을 선교의 현장으로 바로 보내지 않으시고 시드니 서부에 있는 블랙타운에 시드니한민장로교회를 설립하게 하시고 그 교회를 통해 원주민 선교에 동참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는 빠르게 성장해 원주민 선교를 비롯해 전 세계 14개 선교지의 선교사역을 후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을 무렵 하나님께서 이제는 선교의 현장으로 갈 때가 되었다고 내 마음에 말씀하셨다. 하지만 처음 시드니로 올 때의 마음과는 다르게 나의 마음은 원주민 선교에 대한 열정이 무뎌져 있었고 현실에 안주하려 했다.

 

솔직히 말하면 시드니에서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기가 두려웠다. 그즈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3개월간의 안식 휴가를 갖게 하셨고 나는 다시 선교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10여 년 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선교사 후보생으로 받아주지 않았던 GMS의 문을 다시 두드렸으나 이때도 역시 나이가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시드니에서의 10여 년의 목회 경력을 인정받아 아내와 함께 선교사 훈련을 받고 시드니로 돌아왔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시드니에서도 진행되고 있었다. 호주 원주민 선교에 열정을 가진 7~8명의 시드니 지역 한인교회 목회자들에 의해 ‘한인호주원주민선교회’ (KMIA/현CMMIA)가 설립되었다.

 

본 선교회는 2011년에 설립되어 현재 두 개의 지부(시드니, 브리즈번)를 두고 호주 전역에서 목회하는 27명의 현역 목회자들이 회원으로 섬기고 있다. 또한 10명의 한인 선교 사역자들과 9명의 원주민 출신 리더들이 원주민 거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 선교회에 관한 구체적인 활동사항은 크리스찬리뷰 2월 호(미래를 향한 호주 원주민 선교적 전략/라호윤)를 통해 읽을 수 있다. 아무튼 본 선교회의 설립예배부터 동참한 나는 KMIA의 후원 이사로 섬기며 그동안 교회를 통한 원주민 후원 선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직접 원주민들에게로 찾아가는 선교의 여정에 동참하게 되었다.

 

호주의 아웃백(outback)에 있는 원주민 마을들을 방문하여 그들의 삶을 보고 교제를 나누며 이들을 사랑하노라고 내게 말씀하셨던 그날을 회상하며 원주민들을 향한 내 마음을 다잡곤 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보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교지로 떠난다는 것은 내겐 너무나도 큰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 부시랜드 지역의 어린이들이 점심시간에 풍선놀이를 하고 있다. ©이영식 

 

그렇게 미적거리며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떠나라는 주님의 요구와 망설이는 나의 마음이 팽팽히 맞섰고 나의 기도는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었다.

 

“선교지로 가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막내가 11학년인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떠나면 시드니 한민장로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은 나를 완전히 무릎 꿇게 했다.

 

“네 아이들을 네가 키웠다고 생각하느냐? 그리고 네가 이 교회의 주인이냐? 일평생 성도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설교해 놓고 왜 정작 너는 순종하지 않느냐?”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하나님께 깊이 회개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즉시 노회를 통해 후임 목사를 청빙했고 담임목사 이취임 예배를 드림으로써 만 13년간의 시드니한민장로교회의 사역에 종지부를 찍었다.

 

같은 해 5월 말 두 아이를 시드니에 남겨두고 아내와 함께 KMIA의 제1호 파송선교사로 지금의 사역지인 타리(Taree NSW)로 이사를 했다.

 

타리는 시드니 북쪽 300여km에 위치한 인구 2만 6천여 명의 작은 도시이다. 이곳에는 약 2천5백여 명의 원주민들이 있는데, 타리 토박이 원주민인 비리파이(Biripi) 부족과 타 지역에서 이주해 온 원주민들이 섞여 살고 있다.

 

비리파이는 부족 자체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 센터와 병원 등이 있을 만큼 비교적 조직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타 지역에서 이주해 온 원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을 택했다.

 

그 가운데 부시랜드(Bushland)라 불리는 다소 거친 지역이 있는데 그곳에서 원주민 어린이들에게 무료 급식 사역을 하고 있던 원주민 출신 전도자 브라이언(Brian)의 사역에 동참하여 급식을 도우며 원주민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 부시랜드 지역의 어린이들. ©이영식  

 

하지만 원주민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복음에 귀 기울이기보다 먹는 것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복음을 설명하는 그림이나 만화, 기타 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여러 가지 자료들을 준비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언제나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짓밟힌 자료들이 즐비했다. 게다가 아이들과 만나는 장소는 교실이 아닌 브라이언의 집 앞 마당이었으니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복음을 가르칠 수 있는 교실이나 건물이 필요하다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NSW의 모든 초등학교에는 성경을 가르치는 SRE (Special Religious Education) 클래스가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SRE 교사가 되는 길로 인도하셨고 아내인 전명은 선교사는 여러 직업을 거쳐 현재 장애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도록 인도하셨다.

 

호주 정부는 1820년경부터 영국 교회의 도움을 받아 공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880년 NSW주정부는 공립학교에서 GRE(General Religious Education)와 SRE(Special Religious Education)를 이원화했다.

 

GRE는 일반교육 과정에 포함시켜서 학교에 소속되어 있는 교사가 종교일반에 관한 내용을 가르치도록 했고, SRE는 몇 개의 종교를 구분해서 전문성 있는 외부의 교사들이 학교에 들어와 아이들을 가르치도록 했다.

 

SRE 클래스는 1990년 이전까지는 스크립쳐 클래스(Scripture Classes)로 통칭되다가 1990년에 개정된 NSW주정부 교육법에 따라 현재의 명칭인 SRE(Special Religious Education) 클래스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학교 현장에서나 지역사회에서는 SRE라는 명칭보다는 스크립쳐 클래스라는 명칭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 부시랜드 지역의 어린이들. ©이영식  

 

나는 2016년 후반기에 SRE 본부에서 시행하는 교사 교육을 받고 참관 수업과 실습을 거쳐서 2017년부터 현재까지 타리에 있는 3개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이 세 학교에 재학 중인 어린이들 중 약 40%가 원주민이란 사실은 놀랍다.

 

그중 부시랜드에 위치한 매닝 가든스 초등학교(Manning Gardens Public School)는 전교생의 62%가 원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전에 무료급식을 하던 당시 먹을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성경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던 부시랜드 원주민 어린이들이 이 학교의 SRE 클래스에 다 들어온다.

 

그래서 예전에 급식 장소에서 복음을 충분하게 전하지 못해서 아쉬워했던 부분들이 SRE 클래스를 통해서 해소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효과적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나를 SRE 교사로 인도하신 것이다.

 

1990년에 개정된 NSW의 교육법은 SRE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특정한 세계관을 통해 삶을 이해한다. 다문화이며 다종교 사회인 NSW는 공립학교에서 종교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이와 같은 현실을 인식하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어떠한 세계관을 가르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SRE에는 기독교 외에도,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그리고 힌두교 등이 있다. 하지만 현재 타리에는 기독교 SRE 밖에는 없다. SRE 클래스에 들어오는 어린이는 부모의 종교가 무엇이냐에 따라 선택된다. 물론 어느 종교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의 아이들은 따로 모여서 일반 윤리를 배운다든지 아니면 교사의 감독 하에 자율학습을 하게 된다.

 

SRE 교사를 하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그것이 선택과목이라는 점이다. 물론 여러 종교 중에 하나를 선택하거나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부모들에게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지만 필수과목이 아니기 때문에 믿지 않는 가정의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개인적인 욕심이긴 하지만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은 아직까지 NSW에서는 SRE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멜번(Melbourne)에 가서 사역보고를 했을 때 한 여자 분이 자기도 SRE 교사였는데 몇 년 전부터 멜번에서는 공립학교에서 SRE 클래스가 폐지되어 너무 아쉽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  SRE 교재. 이 교재들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기본을 배울 수 있다. ©이영식     

 

SRE가 선택과목이기 때문에 기독교인 가정의 아이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들 모두가 신실한 크리스찬 가정의 아이들은 아니다. 부모 자신들은 헌신적인 기독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기독교의 신앙을 가르치기를 원하는 부모들이 많다.

 

이러한 가정의 자녀들과 자신이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혹은 다른 종교의 배경에서 자랐지만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기독교의 신앙을 가르쳐 보기를 원하는 부모들도 간혹 있다. 이런 가정의 아이들도 부모가 원하면 SRE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기본을 배울 수 있고 실제로 이런 가정의 아이들이 많다.

 

이렇게 다양한 종교의 신념을 선택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공립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제공하겠다고 하는 것이 SRE의 목적이라고 NSW 교육법은 말하고 있고 우리들은 이와 같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SRE는 NSW주 교육부의 감독하에 지역별로 조직을 갖추고 교사 발굴과 교사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내가 활동하는 타리 지역은 뉴카슬(Newcastle)을 본부로 하는 헌터(Hunter) 지역에 속해 있는데 현재 타리와 인근지역을 포함한 7개의 초등학교에서 15명의 SRE 교사들이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특별히 타리지역은 노인인구 비율이 높아 매년 퇴임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어 교사 충원이 시급한 현안이다.

 

SRE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지교회나 교단에서 추천을 받아 SRE 본부에 교사 후보생으로 등록한 후 본부에서 시행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SRE 교사 교육은 6주간에 걸쳐서 시행되는데 기본적으로 교사교육 모듈 1-6까지 이수해야 하고 그 이후의 모듈들은 매년 추가적으로 이수를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듈 1-6까지는 기존의 교사들도 매 2년마다 한 번씩 반드시 재수강을 해야 한다.

 

아이들을 말씀으로 교육하는 정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교사들에 대한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SRE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WWCC(Working with Children Check)와 신원조회(Police Check) 또한 필수적인 요건이다. SRE 교사 교육을 마치고 나면 참관 수업을 해야 한다.

 

기존의 교사가 진행하는 SRE 클래스에 참석해 다른 교사들이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참관하는 것이다. 그 후에는 실습인데 다른 SRE 교사들이 보는 앞에서 어린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모두 거치고 나서 자신의 반을 배정 받으면 아이들을 정식으로 가르치게 된다.

 

2017년부터 나에게는 매년 150-180여 명의 어린이들이 배정되어 왔으며 2022년에는 165명이 배정되었다.

 

한편, SRE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공립학교에서 특정 종교의 교리와 신념을 가르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2천년이 넘는 기독교 역사에서 복음에 대한 박해와 반대의 목소리는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고 이와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점점 심해질 것이다.

 

▲ 부시랜드 지역의 초등학교 원주민 어린이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호주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상황이 바뀌어서 복음 전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게 될 날이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할지라도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 주신 사명이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인데 어떤 상황 어떤 환경 하에서도 결코 이 일을 포기하거나 소홀히 할 수는 없다.

SRE를 통해서 다음 세대에게 뿌려지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져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영식|CMMIA 선교사 (Taree NSW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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