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

서을식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4/25 [15:39]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린도후서 6:1)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에 이어 6장에서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라는 격려를 계속한다. 세상의 악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야 할 의무에 대해 가르친다.

 

이런 배경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이사야 49:8의 인용인 그 다음 구절로 이어지면서, 지금이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말한다. 두 가지 질문이 생긴다. 무엇이 은혜인가?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이 무엇인가?

 

놀랍게도 일반적 생각과 달리 성경에서 은혜는 흔한 용어가 아니다. 그나마 하나님과 관련되어 신약에 집중되며 구약에는 더 드물게 등장한다. 다시 말하면 은혜는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성경적으로 보면 구약부터 지속해서 중요성을 갖고 의미가 아주 풍부해진 오래된 개념이라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인 신약에서 특출난 의미를 갖게 된 새로운 개념이고 은혜를 받고 누리는 인간 편의 상태에 대한 묘사라기보다는 은혜를 주실 수 있고 은혜 자체이신 하나님의 본성과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은혜는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이다. 세상 죄를 위해 그리스도가 취하고 동시에 당하신 위대한 희생적 죽음의 의미와 효력이 함축되어 있다.

 

타락 이후의 인류는 죄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고, 절망과 사망의 상태에서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도 없게 됐다. 구원을 희구하는 인류에게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죗값을 대신 치르게 하신 하나님의 큰 자비를 통해 믿는 모든 사람은 구원 즉 은혜를 받게 된다.

 

따라서 이 은혜는 구원이 반복되지 않듯 일회적으로 임한 구속사건적 은혜다. 따라서 자주 변하고 믿을 수 없는 감정에 중점을 두고 ‘오늘 은혜 많이 받았느냐?’ 식의 무분별한 사용은 지양해야 한다. 한 번 받으면 되는 구원이 마치 반복되는 구원처럼 되는 일은 피해야 하고 또한 은혜를 적게 받고 많이 받고 등의 표현으로 은혜를 계량화하여 상기 또는 흥분된 감정의 고저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서도 안 되겠다.

 

우리가 받은 큰 구원은 큰 은혜로, 신적 행위에 적용되어야 한다. 반복적인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단지 과거의 구원을 추억하면서 다시 느껴보는 가벼운 은혜로 끝이 난다면, 이는 은혜를 충전하는 에너지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가격표를 달 수는 없다. 누구도 값을 치르는 방법을 통해서 은혜를 살 수 없기에 은혜는 공짜여야 한다. 때로 우리는 값비싼 은혜를 이야기하지만 이는 은혜를 받은 자의 책임이나 삶과 연결된 이차적 이해이고 은혜는 일차적으로 선물, 무료, 공짜다.

 

이것이 은혜의 본질이다. 누구나 값없이 믿으면 구원 얻는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참 복음이다. 고린도의 어떤 이들은 이전에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지만 복음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영적으로는 죽어 있는 상태인 이들에게 바울은 다시 한 번 복음을 제시한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선택해야 한다.

 

약간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대충 믿어보자’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믿는다고 하지만 믿지 못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말라. 위선자가 된다. 내용상으로 전체가 아닌 부분적인 복음을 받아들이지 말라.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이등 시민으로 만든다.

 

죄로부터 자유롭게 됐지만 여전히 죄에 머무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말라.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린다. 자랑스럽지만 부끄러워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말라. 개인만 구원받고 전하지 못한다. 중요하지만 무시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말라. 하나님을 슬프게 한다. 살려고 하지만 살지 못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말라. 늘 허덕이며 뒤따라가지만 뒤처진 사람이 된다.

 

용도적으로 쓸모없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말라. 크리스찬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성격상으로 추상적인 복음을 받아들이지 말라. 정신 활동은 왕성하지만 삶은 변화되지 않는다. 시간상으로 일시적인 복음을 받아들이지 말라. 온갖 유혹에 다시 빠진다.

 

유익하지만 유익하지 않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말라. 당신에게조차 유익치 않은 복음이 다른 이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모든 일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 슬픈 일이며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후에 다시 원수를 맺는 일이다.”

 

당신이 필요로 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 전면적인 복음, 영원한 복음, 돌이킬 수 없는 능력의 복음이다.〠

 

서을식|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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