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마 12:9-20)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7/20 [15:18]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하는 것은 손’이라고 한다. 그리스 철학자 아낙사고라스도 “인간이 동물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손을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인간은 사자나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것도 아니고 치타처럼 빠른 것도 아니고 곰처럼 힘이 센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동물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손 때문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손을 사용해서 갖가지 도구를 비롯한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을 만들어 왔다. 손이 있었기에 건물도 세우고 자동차도 만들고 비행기도 띄울 수 있었다. 손이 없다면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스마트 폰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손은 사람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사람 수가 부족하면 ‘손이 모자른다’고 하고,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사람은 “내 손 안에 있다”라고 확신을 한다. 또 사업이나 어떤 일에서 관계를 끊을 때면 “손을 뗀다”라고 한다.

 

그리고 운동 경기에 국가를 대표해 나가는 사람을 국가대표 ‘선수’라고 하는데, ‘선수’는 ‘뽑힌 손’이란 뜻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이토록 중요한 것이 손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손이 말라버린 사람이 있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손 마르는 병은 중풍병의 일종으로 손에 피가 통하지 않아서 말라버려 손이 오그라드는 병이다. [히브리인의 복음]이라는 고대 문헌에 오늘의 본문 속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책에서 손 마른 사람의 직업은 손으로 돌을 다듬는 석공이었다.

 

그런데 손이 말라 버려서 더 이상 돌 다듬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가족들의 생계가 막막했다. 안식일이 되어 그 손 마른 자가 회당을 찾았는데 회당에 소문으로만 들었던 예수님이 들어오셨다. 예수님은 눈 먼 사람도 고쳐주시고 다리 저는 사람, 중풍병자, 문둥병자도 다 고쳐주셨다고 들었다.

 

그 예수님이 지금 자기 눈 앞에 계셨다. 그는 지체없이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간청을 했다.

 

“예수님, 제발 저를 고쳐주시어, 빌어먹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동안 손 마른 사람은 육체적인 고통과 생계에 대한 어려움으로 평안하지 못했다. 안식일에 회당에 와서도 안식할 수 없었다. 그가 사람다운 삶을 살고, 안식일에 참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라버린 손이 나아야 했다.

 

문제는 그날이 안식일이었다는 것이다. 율법의 규정에 따르면, 안식일에 병을 고칠 수 있는 경우는 생명이 위급할 때 뿐이었다. 목숨이 위태롭지 않으면 안식일에는 병을 고칠 수 없었다. 예수님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님은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답했다. 안식일에 양 한 마리가 구덩이 빠지면 당연히 구해주는데 하물며 양보다 귀한 사람이겠느냐? 그러니 안식일에 사람을 구해주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손을 내밀라

 

예수님은 손 마른 자를 회당 한 가운데 일으켜 세우셨다. 안식일에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치유하시려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손을 내밀라”라고 하셨다.

 

그 사람은 손가락이 손바닥에 말라 붙어서 손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손을 내 밀고 싶어도 내밀 수가 없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손을 내밀라”고 하신다. 너무도 당황스러운 일이다.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지금 불가능한 일을 해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손 마른 사람이 어떻게 했는가? “그가 내밀매” 내밀었다. 손이 없는데 내밀었다. 말라버리고 병들고 오르라든 그 손을 예수님께 내밀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내밀었다.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믿음은 뜬 구름잡는 게 아니다. 우리 생각에 불가능해 보이지만,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주님이 말씀하시면 손을 내미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손 마른 사람이 손을 내밀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손 마른 사람이 그 손 같지도 않은 손을 내밀자 그 즉시 성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내밀라는 말씀을 믿고 내밀었더니, 그 마른 손에 피가 돌고 죽은 신경이 살아나고 달라붙었던 손가락이 펴졌다.

 

손 마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손을 내밀든지, 그대로 있든지. 선택은 간단한데,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믿고 내밀면 성하게 된다. 그러나 믿지 못해서 그대로 있으면 손이 마른 채로 일평생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예수님 앞에 말라버린 손 내밀어 보라. 말라버린 삶을 내밀어 보라. 고통스럽고 고단한 인생을 내밀어 보라. 구멍나고 상처난 마음을 내밀어 보라. 믿고 내밀면 주님이 고쳐주신다. 반드시 성하게 하신다.

 

살리시는 분

 

회당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예수님에 대한 갈채와 환호가 터져나왔을 것이다. 손 마른 자가 예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을 것이다. 그의 가족과 친구들도 예수님께 감사의 예를 다했을 것이다.

 

그렇게 회당 안은 기쁨과 감사와 찬송으로 충만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바리새인들은 배아리가 틀려서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회당 밖으로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의논을 했다.

 

예수님은 살리시는 분이신데, 그들은 죽이려고 한다. 예수님도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는 그곳을 떠나셨다. 그때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다. 그들 중에는 병자들도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병도 다 고쳐주셨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다 안식일에 일어났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쳐 주셨다는 이유로 살해 위협을 받으셨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바로 그날, 안식일에 더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셨다. 그들을 사랑하셨고, 살리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 일을 통해 오래 전에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목동들은 양떼에게 신호를 주기 위해 갈대로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갈대로 만든 피리를 길게 불어서 양떼들을 모으기도 하고 또 짧게 불어서 양 떼를 흩어 지게도 했다. 그런데 그 갈대가 상하게 되면 더 이상 피리를 불 수가 없다. 그때 목동은 상한 갈대를 가차없이 꺾어서 버린다.

 

등잔불에 기름이 가득차 있을 때는 심지에 불이 붙어서 활활 타오른다. 어둠을 밝혀주고 주변을 환하게 비춰준다. 그런데 기름이 떨어지면 심지가 불에 타면서 시커먼 그을음이 난다. 매퀴하고 기분 나쁜 냄새를 풍긴다. 그러면 등잔 주인은 여지없이 그 심지를 꺼버린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고쳐주셨던 손 마른 자, 그가 상한 갈대였다. 아무 쓸모 없는 손을 지닌, 버려진 손을 가지고 있는 그가 상한 갈대였다. 그리고 그런 손을 가지고는 더 이상 인생의 불꽃을 피울 수 없는 꺼져가는 심지였다.

 

또 예수님이 만나셨던 가난하고 무식한 어부들, 세리들, 창기들, 죄인들 그리고 수많은 병자들, 그들이 다 상한 갈대요 꺼져가는 심지였다.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상한 갈대라고 꺾어버리려고 했다. 꺼져가는 심지라고 끄려고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상한 갈대처럼 살아가던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인생을 고쳐 주시고 그들의 삶을 새롭게 하셨다. 꺼져가는 심지와 같던 그들의 인생에 다시 소망의 불을 붙여주셨다. 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쓸모 없고 볼품 없는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실패했다고 한탄하지 마시라. 쓸모없는 인생이라고 자책하지 마시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의 부족함까지도 다 사랑하신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우리는 튼튼한 갈대도 아니었고 활활 타오르는 횃불도 아니었다. 상한 갈대였고 꺼져가는 심지였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셨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셨다. 그저 사랑만 하셨다. 오직 사랑으로 우리의 상처와 허물과 죄를 씻어주시고, 사랑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사랑으로 우리를 회복해 주셨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모든 두려움에서 자유케 되기를 바란다. 샬롬! 〠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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