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의 공동식당에서였다. 내가 옆 탁자에서 밥을 먹는 부인에게 말했다.
“스마트 폰의 아래 가운데 있는 네모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세요. 그리고 물어보면 뭐든지 대답해요. 통역도 즉석에서 해줍니다.”
부인은 스마트폰에 대고 “통역 해줘”라고 하면서 말을 했다. 즉석에서 영어로 그 말을 하는 남자의 소리가 나는 걸 보고 주위의 노인들이 전부 깜짝 놀랐다. 나는 스마트폰의 기능을 배워서 실버타운의 식사시간에 주위의 친해진 노인들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옆에 있던 비행기 기장 출신의 노인이 내가 말한 대로 홈버튼을 꾹 누르고 말했다.
“하나님이 진짜 있는지 알려줘.”
주위의 노인들이 그걸 보고 웃는다. 그러나 그 웃음의 뒤에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소망이 희미하게 묻어있는 걸 나는 느낀다.
하나님이 있는지 물어본 노인은 평생 비행기의 기장으로 세계의 하늘을 떠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실버타운에서 혼자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가 밥을 먹으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어젯밤에 꿈을 꿨어요. 내가 다시 보잉기의 조종석에 앉아 있는데 출력을 높여 활주로 끝까지 왔는데도 이놈의 비행기가 뜨지를 않는 거야. 꿈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진땀을 흘렸어요. 그런 꿈을 자주 꿔요. 새벽 두시 반에 깼는데 날이 훤하게 샐 때까지 잠이 오지 않는 거야. 나 원 참”
기장 출신 노인은 항상 명랑하고 더러는 떠들썩 하기도 하지만 속은 역시 외롭고 공허한 것 같았다. 같이 실버타운에 들어온 아내가 들어온 지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나는 그의 꿈을 잠시 생각하다가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갔다.
“천국 보험을 들 때가 되신 것 같아요.”
“천국 보험이라뇨?”
그가 되물었다.
“우리가 죽으면 육신에서 영이 빠져나오잖아요? 그 영이 떠올라 천국으로 가야 하는데 이륙을 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맴돌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 그 꿈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묻지 말고 믿으라는 계시 같아요. 우리의 영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면 귀신이 되는 건 아닐까요?
홈버튼을 눌러 구글에게 귀신이 뭔지도 한번 물어보세요”
옆에 있던 다른 노인이 스마트폰의 배운 대로 스마트폰의 구글 어씨스턴트에게 “귀신이 뭐야?”하고 물었다.
“육체가 없는 영이 즉 사자의 혼령이 세상에 머물면서 생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걸 의미합니다.”
스마트 폰 속의 남자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노인들이 모두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스마트 폰에서는 귀신이 진짜 존재하는지와 귀신의 목소리나 무서운 이야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한 노부인이 끼어들면서 이런 말을 했다.
“어젯밤 유튜브에서 봤는데 천국도 여러 층으로 되어 있다고 설명하더라구요.”
그 말을 들은 나이 구십 대의 남편이 못믿겠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자기가 체험해 보지도 않고 죽었다 돌아온 것도 아니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믿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어땠나?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했었다. 세상의 불공정은 하나님이 없다는 증명이 되는 것 같았다. 심지어는 믿는 사람들을 빈정거리기도 했었다. 나같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면 믿겠다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하나님은 학문적으로나 논리적으로 그리고 사색을 해서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내가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워낙 힘이 드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에게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다.
나는 뭔가에 의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기였던 시절 엄마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려도 까르르 웃었다. 엄마를 본능적으로 믿으니까 바닥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없었다.
그렇다고 엄마라는 존재와 능력을 미리 확인하고 믿은 건 아니었다. 하나님도 그렇게 믿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단한 사람들의 믿음을 읽었다. 스피노자는 하나님에게 도취된 사람이었고 아이슈타인은 스피노자의 하나님을 자기도 믿는다고 했다. 데카르트, 라이프니쯔, 베이컨은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그 존재 및 활동을 증명하려고 필생의 힘을 기울였다. 칸트는 내세가 있고 불멸하는 영혼이 있다고 했다.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 믿는데 먼지 같은 내가 까불면 안될 것 같기도 했다. 하나님은 계시다고 믿고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도 아기가 엄마를 믿듯이 사람들 깊은 내면에 원래부터 심어져 있는 건 아닐까.〠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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