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Corinth)

좌충우돌의 성지순례(10)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9/27 [15:13]
그리스의 수도 아덴에서 고린도까지는 남서쪽에서 8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고린도는 ‘펠로폰네소스'(Peloponnesos)  반도와 그리스 본토를 연결하는 좁고 잘록한 땅의 서쪽 끝부분에 위치한 도시로 남북 육상교통의 요지인 동시에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아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서 ‘고린도’에 도착했다.  내가 내린 곳은 ‘신고린도’였다. 현재 고린도는 ‘신고린도와 구고린도’로 구분되어 있다.

 ‘구고린도’는 계속되는 외세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858년과 1928년에 있었던 대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 되었다. 이후 새롭게 개발된 곳이 ‘신고린도’이고, 이곳에‘바울기념교회’가 있다.

 
바울기념교회 (St. Paul’s Cathedral) 

 
▲ 바울기념교회     ©김환기

교회의 정문 위쪽 좌편에 베드로, 우편에는 바울이 서 있다. ‘어떻게 베드로이고, 바울인가를 알 수 있는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오래전 로마의 ‘베드로 성당’과 ‘바티칸 박물관’에서 많은 그림과 동상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베드로와 바울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16:19)하신 말씀을 근거로 하여 베드로는 ‘천국열쇠’를 쥐고 있다. 

바울은 학자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학문에 능통한 사람이었다(행22:3). 그래서 바울의 손에는 언제나 책이 있다. 문 왼편에는 교회를 담임했던 역대 주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오른쪽에는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이 쓰여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바울이 전도하는 모습, 예수의 사역 그리고 12 사도의 벽화들로 내부가 장식되어 있다. 그곳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약 20여 분을 가니 ‘구고린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구 고린도 (Old Corinth)

 
▲ 구 고린도 (Old Corinth)     ©김환기

‘고린도’는 옛 그리스의 폴리스 중에 하나로 ‘아테네’, ‘스파르타’와 경쟁할 정도로 번성한 도시 국가였다. 기원전 146년 로마에 정복되어 파괴되었으나 기원전 44년에 ‘율리우스 시저’가 다시 건설한 도시로 로마 행정구역인 아가야 지방의 수도였고,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 고린도는 청동제품, 도자기류, 섬유업, 조선업, 건축업 등이 발달했다. 전체 도시 가운데 일부만 발굴된 고린도 유적지에는 BC 6세기에 건설된 것으로 보이는 아폴로 신전을 비롯해, 여러 신전들과 바실리카, 대규모 시장터인 아고라, 극장, 목욕장 등이 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의 남부 아가야(Achaia) 지역의 선교 거점으로 고린도를 선택했다.  바울은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말씀을 전하며 선교의 동역자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부부를 만났으며, 회당장 ‘그리스보’(Crispus)와 그의 가족이 주님을 믿고 바울에게서 세례를 받게 되었다. 후에 바울은 에베소로 떠났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도 함께 했다. 

AD 51년 바울이 그곳을 떠나자, 교회는 고린도의 타락한 분위기의 영향과 그들의 미약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다.  바울은 목회자의 입장에서 당면한 고린도 교회의 문제에 대하여 답변하였다. 그것이 바로 ‘고린도전·후서’이다.

 
고린도 운하 (Canal of Corinth)

 
▲ 고린도 운하 (Canal of Corinth)     ©김환기

 ‘고린도 운하’는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와 함께 세계 3대 운하에 하나로 꼽히고 있다.  운하가 건설되기 전에는 에게해 쪽에는 ‘겐그레아 항’이 있었고, 이오니아해에는 ‘레헤온 항’이 있었다. ‘겐그레아 항’에서 ‘레헤온 항’까지 해로(海路)로는 무려 320Km가 되나, 육로는 6Km 남짓한 거리이다. 해상을 통해 가면 320Km를 항해를 하여야만 되기에, 소형 선박들은 고린도의 바다와 바다 사이의 제일 좁은 부분, 지협(地峽)에 통나무를 깔고 그 위에 배를 올려놓은 채 통나무를 굴려 육지를 건넜었다고 한다. 이 같은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로마황제 네로’는 운하 건설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했다.

그 후 1800년이 지나서야 프랑스에 의해 1881년에 착공하여 12년 후인 1893년에야 운하가 개통된다. 운하의 길이는 6.3Km, 폭 25m, 바닥은 21m, 수심 8~10m, 다리에서 수면까지의 높이가 약 80m나 된다.  프랑스는 고린도 운하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기 위해 ‘파나마 운하’에 도전했지만 중도에 손을 들고, 결국은 풍부한 자본과 기술력을 가진 미국에 의해 완공되었다.   

 
아프로디테 (Aphrodite)

 
▲ 아프로디테 (Aphrodite)     ©김환기

고린도는 ‘아프로디테’(Aphrodite) 숭배의 중심지였다. 아테네의 고고학 박물관에서 ‘여신숭배 사상’이 고대에 있었다는 글을 읽었다. 그러고 보니 에베소 사람들이 섬겼던 ‘아데미’가 여신이고, 아덴 사람들이 섬긴 ‘아테나’도 여신이며 고린도의 ‘아프로디테’도 여신이 아닌가! ‘그리스 신화’에서 ‘아프로디테’를 ‘로마신화’에서는 ‘비너스(Venus)’로 부른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그리스의 밀로’에서 발견된 ‘비너스 상’이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미의 기준이 되는 여신상이다.  글을 쓰며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한 번 보았다. 두 팔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마 당시 신전 안에도 이런 여신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신전은 말할 것도 없고, 그곳을 기억할 만한 물품 하나 남아 있지 않다.   

고대에는 어느 지역에서나 가장 높은 곳에 도시를 만들고 중심부에 신전을 세웠다. 고린도에는 해발 575m에 ‘아크로폴리스’(높은 곳에 있는 도시)가 있다. 도시는 요새처럼 성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고린도 박물관’과 7개의 기둥만 남은 ‘아폴로 신전’에서 성까지 대중교통이 없어 걸을 수밖에 없었다. 올라가는 도중, 성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만나 차를 타고 편하게 올라갔다. 성의 길이는 2,000m에 이르며 안에는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다. 이곳에서 종사했던 제관과 천여 명의 제녀들은 ‘종교의식’이란 이름으로 음행을 공공연하게 자행했다고 한다.

고린도의 도덕적 타락은 너무도 널리 알려져서, ‘고린도인이 되다’란 헬라어 동사 ‘코린티아조마’는 ‘성적으로 부도덕하게 되다’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바울은 이곳에서 로마서를 썼다. ‘타락한 곳’에서 ‘성화의 서신’을 기록하였던 것이다.

좌충우돌의 글을 시작하며 ‘여행은 만남’이라 정의했다. 나그네 같은 인생길은 ‘만남의연속’이다. 악연 (惡緣)으로 길이 막히는가 하면,  선연 (善緣)으로 탈출구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빌립보’로 떠나기 전 나는 아덴에서 ‘새로운 만남’을 가졌다.

 

김환기|호주구세군 다문화 및 난민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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