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과 행복(幸福)의 차이

홍관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1/12/26 [11:56]

새해가 되면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인사가 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한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새해에 행복하십시오”라고 인사한다.

그런데 복과 행복에는 개념의 차이가 있다. 동얀인의 복 개념은 물질적인데 비해 서양인들의 HAPPY 개념은 정신적인 면이 강하다. HAPPY의 의미에는‘복을 누리는 기쁨과 평안’이다.

한국 표준어 국어사전에 나타난 복의 의미는 ‘아주 좋은 운수, 오봇한 행운’이라고 정의하였는데 운과 수가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복의 개념은 불교와 유교의 종교적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본다.

불교의 삼재팔고(三災八苦)에서 벗어나는 것이 복이요, 유교의 오복(五福)을 얻는 것이 복이다. 물론 사업이 잘되고, 건강을 되찾고, 좋은 일자리가 얻어지고, 자녀가 없던 가정에 자녀가 태어나고, 셋방에 살던 사람이 자기 집을 마련하고, 차가 없던 가정에 자동차가 생기고, 자녀가 원하던 학교에 진학하게 될 때, 그런 것들이 복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운과 수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현세적인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기에 축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복 받기를 빌어도 비는대로 되었으면 좋겠는데 바라는대로 되지 않은 것이 통례이다. 오히려 바라는 것들의 반대일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의 행복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행복의 사이비(似而非)한 것에 두면 사주팔자의 운수로 풀어야 한다. 이런 쪽으로 복을 추구하면 신발 한짝이 뒤집혀도 재수가 없다고 하고, 단추 하나가 떨어져도 재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사람이 들어와 3년 안에 집안에 안좋은 일이 생기면 재수가 없는 사람이 들어왔다고 하여 공연히 새색시를 구박하고 심지어 쫓아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복이 나에게서 떠나지 않기 위해 온갖 미신에 사로잡혀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산다. 결혼을 할 때도 궁합을 봐서 날짜를 잡아야 하고, 이사를 해도 날을 받아야 한다. 현대 서구 문화권에 와서 살면서도 아직 악귀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는 ‘부적’을 몸에 지니고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런 것들이 행복의 열쇠가 될까? 사람은 미래를 모른다. 내일, 아니 다음 시간에 일어날 일도 모른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점이다. 그래서 인간은 요행을 바라게 되고, 여기에서 미신이 생겨나게 되고, 자유를 잃게 된다.

우리는 복의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 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데서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의 복의 개념은 ‘행복’이다. 돈이 없어도  사업이 안되도 마음에 평안을 누리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복이다. 그래서 믿는 신자는 언제나 은혜받고 행복한 것이다.

복이란, 히브리어로 ashar(아사드)라고 하는데“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임재하여 계실 때 그것이 복이라는 말이다. 그러기에 세상적인 것을 다 받고 살아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개인, 가정, 사회는 불행이요, 화가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ashar의 복을 누리면서 2012년을 숭리와 행복의 해가 되게 하자. (딤전 6:7,8 참조) 〠

 

홍관표|크리스찬리뷰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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