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운데엔 네 몫도 있어

정기옥/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1/30 [12:31]

 “이 가운데엔 네 몫도 있어!” 나는 이 한 마디에 무한한 감동과 용기를 얻은 적이 있다. 우리 부부는 지난 해 휴가기간 동안 약간의 모험을 해보기로 작정했다. 물론 아내는 이 여행이 내가 경험한 이런 강도 높은 모험을 포함하고 있는 줄은 생각하지 못하고 따라 나섰다.

이 계획은 이미 일 년 전에 짜인 연중 일정 중의 하나였다. 나로서는 큰 기대를 갖고 기다리던 아주 흥분되는 여행이었다. 그래서 나름 준비를 하느라고 새벽기도를 마치고 규칙적으로 달리기를 하며 체력을 관리했다. 왜냐하면 이 모험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년 전 타스마니아에서 6일 동안 강행했던 Overland Track의 경험을 통해 극단 스포츠가 얼마나 많은 인내와 체력을 필요로 하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멤버는 함께 Overland Track을 마쳤던 Tim Abbey 목사 부부와 학교 교사인 그의 사위 James 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였다.

Bathurst에서 시작된 일정은 Broken Hill을 지나 Wilpena Pound와 Lake Eyre의 남단을 지나는 구 Stuart Highway 비포장도로를 따라 캠핑을 하며 Alice Springs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모래 태풍 때문에 텐트를 세우지 못하기도 하고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텐트가 물에 잠겨 한밤중에 피난을 가야 하기도 했던 힘들고 피곤한 여행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그런 짓을 왜 하지?”하고 물을 만한 불편한 휴가였다. 아마 이런 여행이 주는 역경 극복의 기쁨과 희열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 여행의 즐거운 위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Northern Territory에서 가장 높은 산인 Mount Zeil을 등반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였다. 내 목표는 아니었지만 Tim과 James의 목표는 호주의 각주에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을 밟아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거기에 합류해서 함께 한 것이다. 흔히 말하듯이 무식하면 용감하다. Mount Zeil 등정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도전한 무지가 초래한 극단의 실수이면서 극치의 희열이었다.

드디어 D-Day가 되자 여자들은 숙소인 텐트에 남아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남자 세 명은 아침 일찍 산을 향해 출발했다. 각자의 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물은 개인이 2리터씩을 두 개의 병에 나누어 가지고 가는 것이었다. Alice Springs에서 산 밑에까지 도달하는 데만 두 시간 반이 걸렸다. 사륜구동이 아니면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을 지도를 보며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며 찾아갔다.

그 주변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주인들에게 신고를 하고 허락을 얻은 다음에만 입산이 된다. 높이는 그리 높지 않다. 1531미터. 일 년에 겨우 30명 미만의 산악 스포츠맨들만 찾아오는 외형적으로는 매력이 전혀 없는 산이다. 단지 주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것이 산사나이들의 도전을 부추길 뿐이다.

심각한 실수는 등정 바로 직전에 산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두 병으로 나누어 담아 두었던 내 물병 중 하나를 텐트에 두고 온 것이다. 두 동료가 염려를 했지만 나는 별로 염려가 되지 않았다. 내심 금식하며 기도하지 않는 호주 목사와 성도들과 나는 다르다는 자신감에 “그까짓 것 하루 참는 건데!” 하며 당당하게 말했다.

“괜찮아. 금식기도 할 때는 물 한 모금도 안마시고 3일이상도 쉽게 견디는데 뭘!”

“정말 괜찮겠어?”

“물론이지! 걱정하지 마!”

등정은 시작되었다. 길도 없는 산을 등고선만 표시된 지도에 의지해서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이다. 온 산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최근에 있었던 산불로 그나마 민둥산이 살아 있는 모든 식물을 전소시켜 버린 것이다. 기온은 30도를 훨씬 웃돌고 지열은 얼굴을 확확 달구며 몸의 수액을 증발시키며 땀을 뽑아냈다.

다리에는 쥐가 나기 시작하고 갈증은 가슴까지 타들어가는 듯했다. 등정 총 예상시간은 12시간, 이 시간 안에 등산을 마치고 산 아래에 도착하지 못하면 큰 낭패를 보게 된다. 갑자기 변하는 일기에 추위 속에서 물도 없이 산 속에서 밤을 지내야 한다.

정상은 저 멀리 아득하기만 하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세상에, 이런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지! 뒤처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며 한 발짝씩 무거운 발을 옮긴다. 목이 마르다. 타는 듯 마르다. 한 병밖에 없는 물의 유혹은 너무 강렬해서 통째로 다 마셔버리고 될 대로 되라고 포기하고 싶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되지.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며 계속 격려한다. 마음 같아서는 포기하고 산 아래로 돌아가서 동료들이 등정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한 것이 나는 돌아가는 루트에 자신이 없다.  

정말 도저히 더 이상은 움직일 수가 없다고 생각이 되었다. 극단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인내하며 정상 바로 앞의 봉우리에 서서 손짓하는 동료들을 향해 천근보다 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그들과 합류, 휴식을 겸한 점심시간이다. 각자 싸 온 점심을 먹는다. 하지만 도저히 먹히지가 않는다. 오직 목이 타 들어갈 뿐이다. 가슴까지 느껴지는 기갈에 한 방울의 물도 남기지 않고 모두 마셔버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나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와라. 나는 이곳에서 쉬면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들이 나를 설득했지만 나는 자존심을 구기면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고 설명하고 땡볕을 피하기 위해 바위 그림자에 머리를 숨기고 죽은 듯 잠들어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동료들이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와 나를 깨웠다. 다시 하산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사실 이제부터다. 이제까지 올라온 만큼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내게는 물이 없다. 다섯 시간을 다시 견딜 수 있을까? 불가능하게만 느껴졌다. 눈치를 보니 Tim도 James도 물이 거의 바닥이 난 것 같았다. 험한 길을 걷기도 힘이 드는데 마실 물마저 없다니....

그때 Tim이 말한다. “기옥, 나는 물이 약 500ml 남았어. 이게 우리의 생명수야!” 그렇겠지! 그게 바로 생명수지. 누가 그걸 모르나! “기옥, 이 가운데엔 네 몫도 있어!” 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온 몸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전율이 느껴졌다.

뭐라고? 사방 수백 Km 구간에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 이 사막의 산 정상에서 자기를 위해 아끼고 아꼈던 그 작은 양의 물 중에 내 몫이 있다고?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실수를 한 것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한데 아무 말 없이 나의 절대 필요를 생각하고 있는 그 마음이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맙고 감사했다.

갑자기 예수님 생각이 났다. 실수와 죄로 얼룩진 인생을 살아가던 사마리아 우물가의 목마른 여인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이 가운데엔 네 몫도 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이 주님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Tim이 나의 빈 물병에 자기가 아끼고 아꼈던 물의 절반을 나누어 주었다. “이게 네 몫이야! 물을 구할 수 있을 때까지 이것으로 생존해야 해!” 그 순간 햇볕에 빨갛게 달구어지고 숯검정과 선크림이 범벅이 된 Tim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순간 마음에 진심을 담아 간절히 다짐을 해 본다. 나도 누군가를 향해 내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누어 주면서 말해봐야지. “이 가운데엔 네 몫도 있어!” 예수님처럼! 저 친구처럼! 〠

 

정기옥/안디옥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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