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는 한국의 최고 자산입니다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09/08/28 [17:33]
특이한 신문발행인

▲ 재외동포신문 이형모 발행인은 뿌리깊은 신앙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그는 69년부터 현재까지 37년 동안 새문안교회에 다니고 있고 안수집사이다.     © 크리스찬리뷰
월드옥타(World-OKTA)가 주관하고, 한국 지식경제부와 KOTRA가 후원하는 제7기 차세대 무역스쿨(7월 31일~8월 2일) 강의차 호주를 방문한 재외동포신문 이형모 발행인(새문안교회 안수집사)은 참으로 특이했다.

무엇보다 해외동포들이라고는 거의 없는 한국에서 해외동포신문을 발행한다는 자체가 계산기를 두드려도 한참 잘못 두드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더구나 그가 어느 직종 못지않게 현실감각이 뛰어나야하는 동안 은행에서 16년 동안 근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망해먹기로 작정하지 않는 이상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그의 소명을 들어보자. 

 “시민의신문 사장할 때 해외언론인협의회분들이 찾아와서 재외동포신문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첫마디로 그랬지요. 잘못 찾아왔다. 조중동에 갔어야지, 조그만 주간신문에 온 것은 잘못이다라고 했더니 거기도 기웃거려봤는데 할 생각을 하지 않더라고 해요. 돈이 안되니까 당연한 반응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하겠다고 하여 시작된 것입니다. 2003년 4월에 창간하여 지금까지 6년 4개월 동안 지탱해왔습니다."

 신문이든 잡지든 모든 언론은 발행하기에 앞서 충분한 소구대상(독자층)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독자들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제호 재외동포신문이라 했으면, 당연히 재외동포가 독자들이어야 할 것이고, 재외동포가 제일 많은 LA 정도에 신문사가 있어야 당연할 것이다. 그래야 가까이 있는 재외동포들의 가려운 부분을 순발력있게 긁어줄 현실감있는 기사를 실을 수 있을 것이고, 독자들에게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될 이동거리를 최대한 단축시켜줄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도 굳이 한국에서 발행하고 있는 것이다. 

 “예, 우리 신문의 독자 대상은 오피니언 리더들입니다. 절반은 재외동포들이고, 절반은 청와대, 국회, 정부종합청사, 관계 기관단체 지방자치 단체들의 리더들입니다. 해외는 대사관, 영사관, 한인회, 한인단체, 한인 모이는 식당 그리고 원하는 구독자들에게 보냅니다. 처음에는 무료로 보내주면서 인심을 많이 썼다가 최근에는 우송료가 너무 비싸 1년에 100불 우송료 내는 사람에게만 보내고 그렇지 않으면 줄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명함 뒤에는 특이하게 재외동포신문을 구독해 주세요. 지금 구독료(우송료 포함) 100불과 명함(주소)을 주십시오, 재외동포신문은 "당신의 사랑을 소중히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의 영수증이 인쇄되어 있었다. 필자도 처음에는 재외동포 재단이 동포신문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런 오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구독료를 내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외 동포생활 즉, 이민생활의 경험도 없는 그가 재외동포신문을 발행한다는 것도 특이한 점에서 빼놓을 수 없다.

▲ 이형모 발행인은 16년 동안 은행에서 근무하다 89년도에 경실련이 설립되면서 그의 인생행로가 바뀌었다. 시민운동으로 인생노선을 바꾼 것이다.   © 크리스찬리뷰

서경석 목사와의 만남

그는 뿌리깊은 신앙적인 배경을 갖고 있었다. 그의 조부가 이종열 목사로서 창립된 용산구 만리현성결교회에서 일제 때부터 해방 후 6.25사변 때까지 시무했다. 해방 직전 신사참배 반대 등의 이유로 일제에 체포되어 용산경찰서에 수감됐다가, 성결교회에서 교단해산 성명을 발표하자 풀려났다고 하였다. 그의 부친은 성결교단의 장로 부총회장을 지낸 이극호 장로이고, 백부, 숙부 모두 장로들이었다.

그의 신앙생활은 중고등부도, 청년부 성가대도 하면서 교회생활 틴에이저 땐 방황 없이 교회생활을 잘 하였다. 그러다 고려대 법대에 입학하면서 신앙의 전기를 새롭게 맞았다. 이때 그는 성결교를 떠나 학생운동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던 유서깊은 새문안교회로 이적했다. 69년부터 지금까지 37년 동안 계속 다니고 있으면서 안수집사가 되었다. 

“한국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장로교회로, 개신교로서는 어머니 교회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새문안교회에는 60~70년대의 지성인들, 학자들이 많이 다니셨어요. 그리고 오래된 교회이기 때문에 지적으로 신앙심도 토대가 있는 편이고요. 

70년대 유신시절에 새문안교회 청년회 대학생회 젊은이들이 반유신, 반독재 항거를 많이 해서 경찰서나 교도소에 많이 갔어요. 당시 교회 어른들은 많이 걱정하셨어요. 얘네들은 신앙심이 없다, 혁명이니 사회개혁에만 관심 있지 가짜 크리스찬이라고 비난을 하셨죠. 그런데 지나고 보니 당시 사고를 많이 낸 청년들이 지금은 전부 대학교수, 목사, 신학자, 시민운동가가 되었어요. 

경찰도 새문안교회에 오면 대단히 조심했어요. 당시 강신명 목사님이 경찰들에게 경고를 많이 하셨거든요. 하지만 청년회원들이 자꾸 경찰서에 잡혀갔기 때문에 목사님이 경찰서에 찾아가시는 일이 많았어요. 

제가 새문안교회 청년회장을 하면서 참여한 단체 중에 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라는 게 있었는데요. 74년에 청년들 3천 500명을 모아서 CCC회관부터 영락교회까지 행진을 한 적이 있어요. 본격적인 반독재 데모는 못하는 대신 신앙수련회라는 이름으로 이동하는 대열에서 피켓에 '독재 물러가라'를 써서 피켓팅을 했고, 임진각까지 가서 통일 기도회를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이것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죠. "

새문안교회에서 그는 학생운동하던 서울대생 서경석 목사를 만났다. 

“서경석 목사는 69년에 제가 교회를 나갈 때부터 얼굴을 봤죠. 2년 후배에요. 서경석 목사는 후배들과 다방에서 수근수근을 많이 했어요. 작전 모의를 한 거죠. 그렇게 수군수군하고 나면 꼭 무슨 사건이 터졌어요. 그러나 잡혀가는 건 후배들이었어요. 서경석 목사는 언제나 앞에 있지 않았어요. 다음 일을 모의해야 하기 때문에 바쁘거든요. 나중에는 민청련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들어갔지만, 하여튼 그 때부터 서경석 목사는 동료나 후배들을 설득하고 일을 기획하는 역량이 탁월했어요."
 
▲ 옥타 시드니지회가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 개최한 제7기 차세대무역스쿨이 블루검 롯지에서 25-40세 동포 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옥타 시드니지회

지식사회의 지식가치

대학 졸업후 그는 은행에 취업했다. 친구들은 3년도 못하고 나올 것이라고 했지만 16년이나 근무했다. 그러다가 서경석 목사를 중심으로 89년도에 경실련이 설립되면서 그의 인생행로가 바뀌었다. 예의 운동권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시민운동으로 인생노선을 바꿨다. 그리하여 10년 동안 경실련 이사회 상임집행위원회 부위원장, 위원장을 했다.

“경실련은 한국의 제대로 된 시민운동의 효시가 됩니다. 정부나 사회를 비판하면서 반드시 대안을 갖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경실련은 정치 민주화 운동으로서의 시민운동이 아니고 경제 사회적 시민운동의 효시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경실련이 깃발을 내걸 때 목표한 것은 토지 주택에 관한 투기 근절 등이었는데, 결국 실패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공공 임대 주택을 30%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정부는 끝내 듣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공공임대주택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말입니다. 경실련의 가장 위대한 공적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실시할 수 있도록 정책 캠페인을 계속한 것입니다. 금융실명제는 대한민국 나라의 격을 크게 끌어 올린 제도입니다. 세계는 금융실명제 실시하는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후진국으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경제발전 성과를 당연히 세금으로 거둬들일 수 있는 것도 금융실명제 덕분입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10년, 20년 전 탈세나 뇌물, 정치자금도 다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강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런데 그 돈을 엉뚱한데 쓰고 있습니다. 엉뚱한데 쓴다는 것은 시멘 콘크리트에 투자하는 것은 현명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의 지론은 21세기는 후기자본주의 사회로, 피터 드러커가 말한 지식사회이다. 지식사회는 지식가치를 담고 있는 그릇이 사람이다. 지식가치를 지닌 지식인과 노동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승패의 관건이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나라보다 지식가치를 가진 인재를 키워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은 미․일․중․러 사이에 끼어있는 조그만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부동산에 투자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차별화된 강점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한국이 가진 자산 중에 가장 뛰어난 자산은 바로 사람입니다. 거기에다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걷힌 세금을 미래를 위해 집중 투자를 해야 합니다.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는 범위에는 재외동포도 포함됩니다.

참정권과 관련하여 재외동포에 많이 관심 가질 것이란 생각은 부분적인 생각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재외동포에 대한 관심이나 태도는 세금 낸 국민입장에서 재외동포가 21세기 한국이란 국가의 번영에 크게 도움된다고 생각하면 돈을 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재외동포는 자산이라고 말하지만 그 사람들이 충분히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은 재외동포는 21세기의 한국이란 국가, 한민족이란 공동제의 번영과 생존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결정적인 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재외동포가 한국이란 나라의 최고자산이란 신념은변함이 없다고 하였다. 이것이 그가 재외동포신문을 발행하며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한다.

“20세기에는 재외동포가 특별한 자산입니다. 우리 동포들은 기가 세고 용기있고, 세계 어느 민족보다 특출합니다. 뛰어나가서 자기 생존을 창출해낸 특별한 용기있는 삶을 살아온 분들입니다. 현재 21세기의 대한민국 20대, 30대는 모두 3년에서 최대 3,40년 해외 나가서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작년 7월 동경에서 개강한 차세대 무역스쿨 수강생 108명 중에 재일동포 자제 3명이고, 105명은 한국에서 건너간 남녀 청년들이었습니다. 대학 2학년부터 중소기업 사장까지 한국 청년들이 폐쇄적인 일본 동경에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이 2,30대의 한국 청년들은 정부로부터 아무런 관심도 못받고, 자기 자신이 알아서 미래를 개척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부나 사회가 어떤 배려를 안해도 그들은 나라밖으로 뛰어나가 자기 앞길을 스스로 개척할 준비가 끝났습니다. 관광, 워홀 등 어떤 명분을 만들어서라도 해외로 나갑니다. 21세기는 재외동포가 특별개념이 아닌 보편개념이 되었습니다."

▲ 이스트우드 한인상가 지역에서 시드니 옥타 서원교 부회장(오른쪽)을 만나 담소하는 이형모 발행인 © 크리스찬리뷰

재외동포는 보편개념

대한민국 정부는 재외동포가 특별존재란 개념을 버리고,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의 삶의 보편적인 흐름을 이해하여, 수십 억을 풀어서라도 20, 30대 청년들을 해외로 풀어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21세기는 대한민국 영토의 개념이 바뀌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한다에서 한반도 안에서 살거나 밖에 사는 모든 한국인의 공동체 위에 대한민국이 있다는 개념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21세기형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20 30대에 투자하고 그들이 만들 공동체 위에 국가가 있어야 합니다. 

해외로 이민 나갈 때 빈손으로 내보내지 말고 이민에 필요한 글로벌 비즈니스에 필요한 지식과 훈련, 적절한 보조금을 호주머니에 넣어서 내보냄으로써 부상당하거나 전사할 가능성을 줄여야 합니다." 

그는 한국 정부와 호주 정부가 토론하여 호주 시드니에 100만 한인사회, 세계 3대 이민 거점도시로 시드니가 추진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한국의 사람이나 기술이나 돈이 왔을 때 호주 정부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한국 사람은 자질이 뛰어나기 때문에 착한 마음씨만 갖추면 됩니다. 배달한국이 처음 시작될 때 국가의 이념을 홍익인간, 즉 인간 세상을 두루 이롭게 하겠습니다하는 서원으로 시작된 나라 아닙니까? 나라를 세우면서 하나님께 그런 약속을 하고 세우는 민족은 없습니다. 

 이 오래된 약속은 아주 특별한 약속이고, 그 DNA는 한민족의 몸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풍요해진 다음에 방향을 잘못 찾았습니다. 잘살지 못할 때는 새벽기도 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풍요롭게 잘살게 되자 한국교회가 지금 자기 역할을 상실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기업을 하는 장사꾼들조차도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장사를 못할 것인데,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교회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가? 기대가 높은 때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빈부격차, 양극화가 심화되고, 많은 중산층 무너지고. 사회적 약자가 많아지면 교회가 할 일이 많은데 그 부분을 한국교회가 못보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해외동포사회도 지속적인 이민사회 성장발전을 도모하지 못하게 됩니다."


회당과 랍비같은 역할을!

그는 유대 디아스포라도 그들의 회당과 랍비가 공동체가 유지되었듯이, 한인 교회 목회자들이 유대인 커뮤니티의 랍비역할을, 교회는 회당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인교회가 유대인 회당처럼 종교 교육의 본산지가 되면 안되는가? 목사가 랍비처럼 신자와 비신자를 위하면 안되는가? 이 말입니다. 솔직히 그런 훈련을 한 사람은 목사님들밖에 없지 않습니까?"

잠시 동안의 시간에서 속사포처럼 재외동포관, 교회관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새로운 교회상, 목회자상을 말할 때 사뭇 도전적이었다.

“입술이 부르트고 20년 동안 시민운동, 바른말 하는 습관, 바른말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인기가 없죠. 이제 나이 먹으니 덜하게 되고 안하게 되더군요. 제직회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바른 말하면 불편해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금 이야기 하고, 좀 참고 그래야지요. 그래도 일이라는 것은 좀 다릅니다. 

한국 정부가 이제까지 재외동포를 의식하지 않고 있다가 최근에 관심 가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해외로 나가면 입 많이 덜었다고 생각한 정도였지요. 본국이 경제발전하니 그것을 확인하러 들어왔다가 관계가 빈번해지면서 정부도 동포들에게 관심을 가진 정도지요."

중학교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한 그는 변성기 시절인 고등학교 1학년 때 토르나 아 수리엔토, 오 솔레 미오, 스테파노나 마리오 델 모나코 같은 이태리 테너 가수들의 테이프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다가 지금까지 목이 풀어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웃었다. 노래와 관련된 가장 즐거운 추억도 하나 들려주었다. 

“뚝섬에 서울숲 만드는 걸 벤치마킹하기 위해 센트럴파크와 밴쿠버에 간 적이 있는데요. 밴쿠버의 퀸엘리자베스 공원 내의 고급식당에서 캐나다 산림청 공무원들, 학자들과 저녁식사를 했어요. 그곳이 굉장히 점잖은 식당인데요. 갑자기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여기 가수가 있는데 노래를 한 곡 해도 괜찮냐'고 하면서 박수를 치고, 웨이터를 불러서 다른 테이블에 양해를 구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노래를 부르게 됐어요. 그랬더니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앙코르를 청했어요. 이게 왜 특별한 기억이냐면요. 당시 동행했던 캐나다 사람들이 우리를 조금 낮춰보고 무시했어요. 숲에 대해 벤치마킹하기 위해 한국에서 배우러 왔다고 하니까 명함 교환 때 명함도 안 주더라고요. 명함을 안 갖고 왔다면서요. 근데 제가 노래를 하고 났더니 헤어지면서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 주는 거에요. 그때 민간 외교로서의 노래의 위력, 사람을 존경하게 만드는 교양이나 유머 같은 게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풍류와 여유도 갖고, 어느 누구 못지않게 치열한 삶을 살아온 그는 분명 시대의 기인이었다. 
 

글/송기태 (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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