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영광

소강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2/27 [12:11]

요즘은 제가 문득문득 신학교 시절에 설교 하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던 때가 생각나곤 합니다.

신학생들에게 주일학교에서 설교할 기회를 가끔 주었는데 다른 신학생들은 다 하는데 저만 양복이 없어서 못했습니다. 오죽 양복을 입고 설교를 하고 싶었으면 야유회 가는 날을 예배드리는 날로 착각하고 양복을 빌려 입고 갔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동광주노회에서 토요일에 주일학교 설교 대회를 하는데 남의 양복을 빌려 입고 나가서 난생 처음으로 1등을 하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설교를 했기 때문에 당당하게 했지만 어쩐지 수줍고 어색했습니다.

1등을 해서 상을 타는데도 수줍고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무언가 잘해 놓고도 요즘말로 하면 쪽팔리는 그런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영광스러웠습니다.

그 이후부터 저는 설교를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최고의 사명이고 특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할 때 마지막 설교라고 생각하면서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합니다. 지금까지 설교를 대략 준비해 가지고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도 많이 하다 보니까 때로는 아주 가끔 그러지 못할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주일 낮 설교나 철야기도 만큼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몇 년 전에 성대 수술을 했습니다. 성대 수술을 하고 나면 일주일은 정말 한 마디도 안 해야 합니다. 잘못해서 성대 부위가 염증이 생기거나 터지면 다시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칠판과 녹음기를 가지고 심방을 다녔습니다.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고 찬송도 못 부르고 기도도 못하니까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제가 얼마나 설교를 하고 싶었으면 수술한지 2-3일도 안 되어 가지고 꿈속에서 소리를 질러 버렸다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꿈에서 “할렐루야!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오늘도 큰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큰 소리를 질러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집사람이 깜짝 놀라서 저를 흔들어 깨우며 소리 지르지 말라고 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제가 보아도 저는 설교 인생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제가 3주 만에 첫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하려고 생각하니까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그때는 소리를 지를 수 없으니까 조용조용하게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이상하게 설교가 영광스러운 시간인데 어쩐지 수줍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안면마비가 온 후로는 그 수줍음은 더 큰 수줍음으로 변한 것입니다. 설교는 4주째부터 했지만 강단에 서서 축도하고 광고하는 것은 2주째부터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줍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아무리 마비가 풀려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얼굴 반쪽을 여전히 마비의 위력이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정면돌파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4주째 설교를 하는데 너무나 설교가 영광스러워서 나도 감격에 겨웠고 성도들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눈물 흘리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첫 설교가 사명에 대한 설교였기 때문에 모두가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만약에 제가 중풍이라도 맞아 버렸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안면마비가 6개월, 1년 가는 경우도 있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이렇게 4주째에 설교를 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영광과 감격은 수줍음이 넘치는 영광이었습니다. 저도 애써 태연하게 보이고 성도들도 “목사님, 말만 안하면 안면마비 온 것을 모를 정도로 좋아졌다”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저의 단점을 잘 잡기로 유명한 우리 집사람까지도 “방송에 나가도 아무 지장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어쩐지 수줍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이었습니다. 그때도 정말 은혜스럽고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누가 봐도 완벽하다는 것입니다. 영상으로 보아도 외모가 언제 안면마비 온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너무나 완전한 사람으로 비춰졌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수줍고 어색한 것입니다. 이것은 철야기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는 설교하다가 가끔 재밌는 강단 유머를 써도 자신 있게 했는데 요즘은 유머를 할 때도 조심스럽게 합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웃어버리다가 나도 모르게 균형 감각이 깨질까 싶어서 아주 조심스럽게 합니다.

이번에 필리핀에 가서도 설교를 아주 조용하고 차분하게 했습니다. 왜냐면 나도 모르게 너무 오버하다 보면 두 눈에 균형이 깨지고 얼굴의 모양이 한쪽으로 쏠릴까 싶어서 얼마나 조심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까 선교사님들 앞에 설교하는 내 자신이 어쩐지 수줍고 어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설교가 끝나자 “정말 은혜 받고 감명을 받았다,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문제를 쉽고 감동적이며 도전적으로 증거할 수 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세 번 설교하는 동안 어색하고 수줍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줍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또 영광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저는 한 마디로 수줍은 영광, 아니 수줍음이 넘친 어색한 영광 속에서 말씀을 증거하고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더 절절하게 깨달아지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동광주노회 때 처음으로 양복을 빌려 입고 설교를 하던 그때의 순수함과 설레임, 그리고 두렵고 떨림 속에서 말씀을 증거하던 영광으로 되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험으로 터득되고 성숙된 저의 설교가 제 목회를 위한 하나의 도구요, 수단으로 전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주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수줍은 영광으로 말씀을 준비하고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소강석|새에덴교회 담임목사, 2012 시드니성시화대회 주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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