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검 승부는 아름답다

정기옥/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6/25 [11:45]

<때 빼고 광내고 가는 콘서트>에 다녀왔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활발하게 활약했던 가수들을 초청해 오페라 하우스를 대관해서 연 콘서트였다. 기대하지 않았던 입장권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호주라는 이국의 문화 속에 살아가는 이민자로서는 흔치 않은 좋은 기회였다.

모처럼 통속적이며 대중적인 문화에 친밀하게 접촉했던, 말 그대로 추억으로 떠나 본 여행이었다. 대중예술의 가치는 그 대중성에 있다. 그때 그 사람들이 좋아했고 즐겼던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다.

나는 대중 문화를 얕잡아 보거나 경박하다고 경시하며 우아한 체하는 인물이 못 된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대중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서성이고 뒤섞이며 같은 시대를 살았고 또한 살아가고 있는 보통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마치 서양적이거나 고전적인 것만 품격이 있고 고상한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중 문화 속에는 당시의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고 나 자신의 모습, 심지어는 유치하게 느껴지는 구석까지 함께 흐르고 있는 동반자적 정감을 느끼게 하는 한 조각의 거울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몇몇 대중 가수들의 귀에 익은 노래를 들으며 보낸 두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노래와 함께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게 행복했고 흥얼거리며 따라 부를 수 있는 감성의 곡조가 아직도 내 가슴에 살아있다는 게 은근히 기분을 돋우었다. 게다가 노래를 좋아하는 아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목회자의 아내인 사모로 살아가야 하는 사랑하는 한 여인에게 품고 있던 무엇인지 정확하게 규명할 수 없는 막연한 부채감도 약간은 탕감되는 듯한 느낌도 있어서 더 좋았다.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가수들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해 보았다. 노래를 하는 가수는 노래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담이나 만담만으로는 안 된다.

때에 따라 적당한 말은 향기로운 입맞춤과도 같고(잠 24:26)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의 금 사과와 같은 게(잠 25:11) 사실이다. 하지만 노래하는 가수가 말재주로 노래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춤도 중요하고 의상이나 무대 매너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수에게 있어서 진검은 노래이다. 노래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다. 배우도 마찬가지이다. 요즈음 일부 여자 연예인들은 자기의 누드 화보를 내는 것이 명성과 부를 얻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배우는 결국 연기로 승부해야 한다. 배우에게는 연기가 진검이기 때문이다.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은 제품으로 승부해야 한다. 식당은 음식 맛으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다. 학생은 공부로 승부해야 한다. 이렇게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 고유의 진검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자기의 진검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진검을 갈고 닦아서 진정한 승부수를 던질 줄 아는 진검 승부의 법칙을 적용할 때 그 사람의 가치는 빛이 난다. 진검 승부가 아름다운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성도는 영적 삶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승부를 가르는 것이다. 잡다한 사회활동이 아니다. 혀의 재주가 아니다. 그럴듯한 신앙의 잔재주가 아니다.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세상과 구별되는 진실한 삶의 모습과 경건의 능력이다. 삶으로 실천되는 영성과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든 믿음의 행위가 성도들의 진검이다.

교회의 지도자도 마찬가지이다. 영성으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섬김이든, 전도이든, 선교헌신이든, 말씀의 권세이든, 기도의 능력이든 영성으로 승부할 때 인정을 받게 된다. 그게 영적 진검 승부이다. 세상에는 이런 진검 승부사 성도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마치 엘리야의 때에 여호와가 숨겨 두었던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7,000명의 남은 자들처럼….(왕상 19:18) 바로 예수님이 세상에 뿌려 놓은 소금들이고 어두운 세상을 위해 밝혀 둔 거룩한 빛들이다.

며칠 전 이런 진검 승부사 중 한 분을 만나서 진검 승부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격을 경험했다. 우리 교회에 간증을 하러 오셨던 항공선교에 헌신하신 장로님이었다. 이분은 전도와 영혼 구원에 온전히 헌신된 분으로 평생 1만 명 이상에게 복음을 전하신 분이다.

또한 몽골과 한국의 항로를 여는데 주역을 감당했던 분이었다. 몽골 조종사들 훈련을 비롯해서 비행기 인도를 주도했다. 항공기 인수식으로 몽골에 머물 때 모든 일정을 하루 남겨 놓은 날 몽골 항공사에서 귀빈에게 베푸는 예식을 준비해 놓았다며 안내자가 그분에게 말했다.

“기장님, 오늘 참 좋으시겠습니다. 정말 최고의 선물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아니, 무슨 선물이기에 그렇게 좋습니까?”

알고 보니 몽골 전통 텐트에서 아가씨의 대접을 받으면서 마음대로 술을 마시며 하루를 쉬도록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그 장로님이 단호하게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기독교 신자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계명을 어기며 누릴 수는 없습니다.”

단호하게 거절한 것이다. 그리고 대신 헬리콥터 관광으로 대치했다고 한다. 그 후 귀국해서 항공사 사장에게 보고할 때 그 사장이 은근하게 물었다고 한다.

“S기장, 마지막 날 좋았지?”

“네? 아! 아닙니다. 거절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저는 교회 장로입니다.”

“어, 그래! 우리 항공사 기장 중에 장로가 얼마나 많은 데 자네는 뭐 특별한 존재인가?”

은근히 화를 내며 놀리더랍니다. 그렇게 보고를 마치고 돌아서 나오는데 그 장로님의 등 뒤에서 자기들끼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고 한다.

“저 자식은 진짜야!”

“그 순간 저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쁜 승리의 감동이 온 영혼을 진동시키더군요.”  장로님은 이렇게 간증했다.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며 내 영혼이 진동했다. 저거다! 저게 바로 성도의 진검 승부의 아름다움이다.

성도로서 나의 삶을 뒤돌아 볼 때이다. 무대에서 노래대신 재담으로 때우려는 가수가 진정한 가수일 수 있을까? 배우가 연기 외에 다른 것으로 승부하려 든다면 진짜 배우일 수가 있을까?

식당이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 식당이 진검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학생이 공부를 게을리한다면서 다른 것에 몰두하고 있다면 그 핑계가 합리화 될 수 있을까? 성도가 영성 생활을 게을리하고 믿음을 삶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정당화될 수가 있을까?

믿음이 삶으로 실천되지 않는다면 그 성도는 진검을 빼앗긴 성도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진검으로 승부를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 싸움을 힘있게 싸울 수 없는 무력한 그리스도인일 수밖에 없다.

당신은 믿음의 진검을 가지고 있는가?
삶의 모든 분야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진검으로 승부를 해서 승리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당신은 영적 전투의 현장인 삶의 자리에서 영적 전쟁을 위한 진검을 바르게 사용하고 있는가? 진검 승부의 아름다운 승리의 환희에 젖어 본 적이 있는가?

 
 
정기옥|안디옥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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