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의 중요성

홍관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3/09/30 [11:19]
기독교는 가정을 중요시하고 가정문제에 모범을 보여왔다. 가정은 교회와 함께 하나님이 직접 창설한 기관으로 사회 어느 단체보다 귀중한 가치성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께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말씀하셨는데 그 두세 사람이 모인 곳이 어디일까? 가는 그곳이 바로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가정은 부부 두 사람으로 구성되지만 거기에 자녀가 태어나면 두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가정은 부부와 자녀들이 모인 곳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시작은 가나 혼인집이었다. 삭개오를 향하여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고 그의 집으로 가서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라고 선포하셨다.

나는 노아의 가정을 생각해 본다. 노아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120년간 방주를 지을 때 그의 부인이나 아들들과 자부들이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노아를 도와 협력했다는 사실 앞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너는 네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가라” 하셨을 때 온 가족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방주에 들어가서 구원을 받았다. 이러한 신앙의 일치가 쉬운 일이겠는가? 그래서 “노아는 당대에 완전한 자라”(창 6:9)는 평가를 받았다.

노아의 가정과 롯의 가정을 두고 보면 참 대조적이다. 소돔성의 멸망을 앞두고 빨리 도망가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도 롯의 가정은 다 구원을 받지 못했다. 사위는 농담으로 받다가 망했고 부인은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것이다. 롯은 자진해서 나오지 못하고 겨우 천사의 손에 끌려서 나왔다. 그리고 부끄러운 후손을 남겼다.

내가 아는 목사님들 중에 존경심이 가는 목사님이 계신다. 그 목사님은 얼마 전에 은퇴하신 분이다. 그분은 평소 조용히 지내시며 기도를 많이 하시는 목사님이시다. 그분은 연세도 많고 목회 연륜도 상당히 많으신 분인데 총회장이나 노회장이나 노회 임원도 된 일이 없으시다.

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자녀들을 중심한 가족목회에 충실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은퇴하셨다.

내가 목사님의 은퇴예배에 설교를 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그의 진실된 목회였다. 자신의 자녀들을 철저한 신앙인으로 세우는 목회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얼마 안되는 교인이었지만 어린 아들까지 수입의 십일조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그 교회는 비록 작은 교회였지만 전교인 100% 십일조 생활을 하는 신자라고 하니 그야말로 알곡 교인으로 하늘 곡간에 채워진 교회처럼 보여서 한편 부럽기도 하고 목사님의 목회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그 목사님의 손자들은 어느 학원에 과외를 시킨 것도 아니고 부모의 강요로 공부한 것도 아닌데 자신들이 착실하게 공부하여 시드니 의대 수석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목사님의 가정교회 목회의 결과로 그 자손에게 하나님은 축복의 문을 여신 것으로 안다.〠

 
홍관표|크리스찬리뷰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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