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령기념일과 양귀비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3/10/28 [10:48]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부터 4년 4개월간 계속되었던 최초의 세계전쟁이다.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로 시작되어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났다. 이 전쟁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연합국’(Allied Powers)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동맹국’(Central Powers)이 중심이 되어 싸운 전쟁이다. 유럽에서 시작된 전쟁은 미국과 호주를 비롯한 영연방 국가가 연합군으로 참전하고, 불가리아와 오스만 터키제국이 동맹군에 합류함으로 전쟁은 세계대전으로 확산되었다.

전쟁의 배후에는 제국주의 정신이 깔려 있었지만,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은 사라예보에서 울렸던 한방의 총성이었다.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시프’(Gavrilo Princip) 청년이 사라예보를 순방중인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드’(Franz Ferdinand)와 부인을 암살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굴욕적인 10개 조항을 제시하고 이를 수락하지 않을 경우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했다. 세르비아가 제시한 모든 조항이 수락하지 않자, 오스트리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1914년 7월 28일 전쟁을 선포하면서 1차 대전의 서막이 올라간 것이다.

전쟁은 동맹군 세력의 팽창을 막으려던 ‘연합군’이 개입하게 되면서 전선은 유럽 전역으로 확대된다. 이후 독일이 잇따라 잠수함을 이용한 선박의 무차별 공격을 시작했다. 오랜 침묵을 깨고 1917년 4월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세는 급격하게 역전된다. 이후 동맹국의 군대가 차례로 투항했다. 마지막으로 독일이 항복함으로, 약 9백만 명의 전사자를 남기고 1918년 11월 11일에 길고 긴 일차대전의 막을 내렸다.

세계는 일차대전이 끝난 날을 ‘정전일’(Armistice Day)로 정하고, 세계 평화와 인류의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전몰용사, 특히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unknown soldiers)들을 ‘기념하는 날’로 정하였다. 이날을 ‘Poppy Day’라고도 한다. 전쟁이 끝난 후 가장 처절한 전투가 있었던,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지역에 ‘붉은 양귀비’가 만발하였기 때문이다.

그 후 2차대전이 끝나고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에서는 ‘정전일’(Armistice Day)을 ‘영령기념일’ (Remembrance Day)로 개명하였다. 1차 대전뿐 아니라 인류의 안녕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모든 전몰용사를 ‘기념하는 날’로 지키고자 한 것이다. 이날을 미국에서는 ‘향군의 날’(Veterans Day)로 지키고 있다.

나는 2001년 영국의 국제사관대학에서 ‘Remembrance  Day’를 맞이했다. 11월 11일 오전 11시가 되자 우리는 하던 공부를 멈추고 ‘영령기념일’ 행사를 가졌다. 담당 교관은 바닥에 커다란 세계 지도를 펼쳤다. 우리는 양귀비 한 송이씩 들었다. 한 사람씩 차례로 나가 들고 있던 양귀비를 자신과 관계된 국가 위에 올려 놓고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차례가 되어 양귀비를 뉴질랜드 위에 올려 놓았다. 나는 1996년 뉴질랜드에 교환 사관으로 갔었다. 어느날 은퇴한 스미스(Smith) 사관이 자신의 집으로 저녁 식사를 초청했다. 식사를 하면서 그가 직접 촬영한 영상을 보여 주었다.

스미스 사관은 한국전쟁 때 군목으로 참전했다. 영상을 통해 한국 전 당시의 비참한 상황들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이미 80세가 훌쩍 넘은 스미스 사관은 “이 영상은 나보다는 자네에게 더 의미가 있으니 가져가게나”하며 주셨다.

그날 고인이 된 그분이 불현듯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뉴질랜드 위에 양귀비를 올려 놓고 그분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며 잠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Lest we forget”〠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 한인사역(Korean Ministry) 및 수용소 담당관(Chaplain, Detention Cen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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