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나의 교회, 나의 사역장(하)

프레드 나일 목사 간증집회

프레드 나일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6/28 [16:22]
이 글은 두란노선교교회(담임목사 송기태) 창립 10주년을 맞아 기독민주당 총재 프레드 나일 목사 (NSW주 상원의원) 초청 간증집회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서 지난 달에 이어 연재한다.<편집자 주>

 
제가 국회로 출근하는 첫날 경비원이 제게 말하길 “나일 목사님, 이 건물이 과거에는 교회였던 것을 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서 제가 역사 기록을 조사해 보았더니 국회 상원 의사당이 교회당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주철을 떠서 조립식으로 만든 성공회 교회 건물이었는데,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져 빅토리아 금광지역에서 사용되다 금광이 다른 곳으로 옮길 때마다 교회 건물도 따라서 옮겨 다녔고 더 이상 필요 없어지자 팔려고 내놓은 것을 NSW 주의회 상원에서 1856년 1,835파운드에 구입한 것입니다.

두 번째 기도의 응답은 이렇게 왔습니다. 회의 중이었는데 사람들이 제게 “목사님, 이 국회 회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요청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세 가지 기도 제목 가운데 두 가지를 비롯해 국회를 위해서 기도로 결정해 주시고 사인을 보내 주셨습니다.

▲ 기독민주당 총재이며 NSW주 상원의원인 프레드 나일 목사(오른쪽)가 두란노교회 창립 10주년 초청 집회에서 간증하고 있으며, 박웅걸 목사가 통역을 맡았다.     ©이관희
 
그 당시 저는 목사였고, 정치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국회에 등원해서도 제가 앉을 지정된 좌석이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국회에 소속된 목수가 제가 앉아야 할 특별좌석을 만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만들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수가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프레드 나일 목사님이 설교할 설교단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하나님의 뜻 한가운데 서있다는 것을 확인하셨던지, 기적적으로 세 번째 기도응답까지 하심으로써 세 가지 사인을 보게 해주셔서 모든 혼란과 의심이 사라졌던 기억이 납니다. 

 
호주는 처음부터 기독교 국가

저는 그리스도인이자 정치가로서 호주의 기독성(영적 순결성)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이 큰 특권인 것을 자부하고 있습니다. 호주가 기독교 국가라고 말할 때 놀라는 분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호주 헌법을 기초한 존 다우너라는 분이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호주 정부는 초기부터 기독교 국가였다”

놀랍게도 이 기록이 문서로 남아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호주의 헌법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하나님 신앙을 고백하는 문구가 처음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세계의 어떤 나라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이란 말로 헌법의 초두부터 기록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호주 헌법에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구절이 있다는 사실을 저는 퍽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겸손하게 의지합니다”라는 문구가 헌법에 실려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호주 연방정부는 6개 주정부가 모여 이룬 하나의 통합정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는 호주 정부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을 늘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며, 아브라함과 다윗과 야곱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헌법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는 세상에서 통속적으로 말하는 ‘신’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신 것을 아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기독민주당은 호주 정부 위에 계속적으로 존재하면서 호주는 기독교 국가라는 것을 계속 상기시켜 주는 커다란 책무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기독민주당은  기독교가 갖고 있는 기독가치관을 계속 확립하고 그리고 보호하기 위해서 정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정당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킹스 크로스에서 인생출발

개인적인 간증을 잠깐 나누고자 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킹스크로스에서 주로 활동하셨던 택시 운전사였습니다. 어머니는 킹스크로스에서 웨이츄레스로 일했고, 두 분이 사랑하셔서 낳은 첫아들이 바로 저입니다. 킹스크로스는 호주에서 몇 안되는 악이 가득찬 도시입니다. 조직범죄와 악한 일들이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킹스크로스 같은 지역이 하나님의 의로,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서있는 아름다운 도시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저의 기도이고 꿈입니다. '킹스 크로스'(Kings Cross)라는 말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될 줄로 믿습니다.


▲ 두란노선교교회 담임 송기태 목사(왼쪽)가 강연해 준 프레드 나일 목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관희
 
우리는 킹스크로스에서 뱅스타운 지역에 있는 리비스비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교회는 다니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흥미가 없었지만, 교회에 있는 테니스 코트에서 아름다운 여학생들이 테니스를 치는 것을 보고 저는 테니스를 배우기로 하고 테니스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누구든 테니스 클럽에 가입하면 주일예배에 참석해야만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곳에서 저는 예수님을 만났고, 1958년에 지금의 아내 일레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현재 52년 동안 결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4명의 자녀를 두었고 8명의 손주가 있습니다. 그리고 3명의 자녀가 결혼했습니다. 아들은 목사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은 경찰관으로 일하고 있고, 한 명은 교사로, 그리고 딸은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연한 기회에 복음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다녔던 리비스비 회중교회의 목사님은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처럼 집회 때마다 안믿는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시고 믿는 이들은 앞으로 나오게 하는 초청을 꼭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가능한 한 뒷쪽에 앉아서 눈에 띄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저의 마음에 계속적으로 도전을 주면서 신앙을 가질 것을 강하게 요청하며 다가오셨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후에 나는 예수님께 굴복하여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동생 짐과 함께였습니다. 그런데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목사님께서 "오늘 저녁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게 된 것을 너무 기쁘게 생각한다"는 얘기를 하셨고, 제 동생을 향해 "너는 어떤가?"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제 동생은 오늘 저녁에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거부했습니다.  그 이후 제 동생은 아직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혀 다른 여정이 그 순간부터 현재까지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저의 동생은 뱅스타운에 있는 클럽에서 회계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저는 정치가로서 포커머신이라든지 도박을 금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반대로 제 동생은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저와는 반대의 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동생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고 동생은 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은 장래에 동생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네가 날 위해 죽을 수 있느냐?

예수님을 영접하고 몇 년 후에 유명한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는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 집회에서 앉아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자기의 인생을 주님께 드려서 사역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는 도전을 하셨습니다. 그날 저녁 성령님께서 제게 강권하여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고 있는 모든 사업들을 그만두고 네 인생 전부를 주님께 바치라고 하는 강한 말씀으로 제게 도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 저는 제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에 온몸을 떨면서 성령님께 이런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길 원합니까? 선교사, 목사 어떠한 일로 주님을 섬기기를 원하십니까?'하는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기치 않았던 이런 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프레드야 네가 나를 위해서 죽을 수 있겠느냐?"는 이상한 질문을 제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이런 대답을 한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죽을 생각은 없지만 하나님 위해서 살 생각은 있습니다."

결국 저는 하나님께 굴복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위해서 죽겠노라'는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앞으로 저의 정치 인생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죽음을 예상하는 위협을 경험하게 될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날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는데, 마이클잭슨같이 이상하게 생긴, 특이한 모습을 한 어떤 젊은이가 제 앞에 나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 저녁 당신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는 킹스 크로스에서 남창으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이 오늘 저녁에 한 말은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군요. 당신의 입을 닫혀주기를 원합니다. 우리 일행이 다섯 명인데 누가 프레드 나일을 칼로 찔러 죽일 수 있을까 토의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그 순간 그가 칼을 내게 들이대며 죽이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굉장히 당황했고 놀랬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그 젊은이의 말은 더욱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저녁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저녁 당신에게 칼침을 놓으러 온 것이 아니라 당신을 포옹해 주려고 왔습니다.

그날 칼 대신에 서로 포옹을 주었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느냐?"라는 얘기를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제 인생의 미래를 어떻게 계획하시고 아시는 지를 저는 그때는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날 국회가 끝난 저녁, 의사당 앞에 2천여 명의 동성애자들이 모여 화를 내며 거칠게 제게 항의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반대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구호는 섬뜩했습니다.

 “우리는 프레드 나일의 목을 원한다!”

 “우리는 프레드 나일이 죽기를 원한다!”

이런 구호들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분노가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하나님의 법칙으로 다가가는 용기를 주셨던 것을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더 깊은 헌신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결정한 이후 저는 신학교에서 정식으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1964년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청소년 선교 단체(기독면려회)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1968년 시드니에서 열리는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를 준비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저는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며 기독면려회의 직위를 사임하고 1967년 5월부터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NSW 주의회(국회)에서 상원의원으로 일했습니다. 저는 국회가 저의 교회이고, 저의 사역장인 것을 믿습니다. 28년 동안 국회의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국회로 보낸 선교사로 믿고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교단은 다르지만 여러 교회들을 통해 만난 친구들과 형제들을 통해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특별히 감사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민자 교회들을 통해 귀한 우정을 나누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와 시드니성시화운동을 함께 할 수 있음도 크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읽고 계신 '크리스찬리뷰'는 '프레드 나일의 크리스찬리뷰'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주에 있는 한국교회 성도들과 아름다운 우정과 친분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저는 한국과 친밀한 관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콥틱교회(정교회) 지도자들과도 좋은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라크의 시리아 교회와 중동의 아랍교회와도 좋은 관계를 갖고 있고, 아르메니안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과도 좋은 우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와의 귀한 만남

저의 인생에 한국을 다섯 번이나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서울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참석했던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호주로 입양된 한국 청소년들과 그들의 부모들과 한국을 방문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젊은 그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한국의 문화를 경험하기를 원했습니다.

특별히 마산에 있는 창신대 강병도 총장님께서 저를 초청해 주셔서 창신학원의 7천여 명의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한 번은 강 총장께서 저를 초청하여 허허벌판인 땅을 보여주면서, "이 땅에 새로운 캠퍼스를 건축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현장에서 강 총장님은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제게 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설계 계획서를 보여 주셨습니다. 일 년 후에 다시 창신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기도한대로 훌륭하게 대학 캠펴스가 세워지게 된 것을 보고 감격했습니다.

2001년 8월, 강병도 총장님은 1911년 30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에 가서 26년간 일하다 한국땅에서 숨진 맥피(한국명 미희) 선교사 묘지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마산지역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도 가졌습니다.

한국의 정치인 민주당의 김영진 의원(5선의원, 전 농림부장관)과도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데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사당에서 말씀을 전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놀라운 기억이 있습니다. 북한(개성)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남한  기업들이 세운 여러 공장들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에서 개최된 PPP(부산·판문점·평양) 십자가 대행진에도 참석했습니다. 그 행진을 통해 남북한의 통일을 기원했습니다. 김영진 의원께서 요청하셔서 선두에서 십자가를 메고 행진대열을 이끌고 나갔습니다. 아주 큰 십자가였고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판문점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자유의 다리까지 행진을 계속했고 도라전망대에서 북한을 향해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대한민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통성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한국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방문하여 말씀을 전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저의 집에는 한국 성도들이 준 선물들로 가득 차있고, 국회 사무실에도 진열되어 있습니다. 한국을 방문했던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데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열정적인 신앙에 늘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불교국가가 기독교 국가가 된 것입니다. 한국을 방문하여 새롭게 지어진 많은 교회들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두란노선교교회는 학교 강당을 교회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나 한국에 있는 대형교회들은 거대한 빌딩을 갖고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어마어마한 강당이 예배실로 사용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목격하며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한국에서 본 것과 같은 놀라운 일을 호주에서 네가 하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절망하지 말아라. 네가 호주를 변화시킬 수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국에 있는 여러분과 같은 훌륭한 형제 자매들을 호주로 보내 주셔서 호주의 영적전쟁에 참여하고 도전하라고 하심을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호주에서 생활하고 있는 삶과 신앙은 호주인들이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 소수민족교회에도 같은 얘기를 합니다. 최근에는 중국 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신앙을 갖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중국으로 돌아가는데 그들이 중국을 변화시킬 선교사인 줄로 믿습니다.

기독민주당과 저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드는 일꾼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축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간증/프레드 나일 목사 NSW주 상원의원, 기독민주당 총재
통역/박웅걸 크리스찬리뷰 영문 편집장 
사진/이관희 크리스찬리뷰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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