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인들이 선호하는 작은 트럭, 유트(Ute)를 디자인한 루이스 반트Louis (Lewis) Bandt (1910-1987) vehicle manufacturer
1924년에 루이스는 한 자동차 공장(Duncan & Fraser Ltd)에서 견습생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 자동차 공장은 포드 회사의 T모델 자동차를 개조해 고객에게 판매했다.
1927년에 멜번에 있는 한 자동차 회사(Melbourne Motor Body & Assembling Co. Pty Ltd.)가 루이스의 명성을 듣고 그를 스카우트 했다. 루이스는 이 회사에서 일을 하기 위해 아들레이드를 떠나 멜번에 정착했다.
2년 후에는 포드(Ford) 자동차 회사에서 그를 스카우트 했다. 그는 질롱(Geelong)에 있는 포드 자동차 생산 공장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다. 포드 자동차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그의 가족들도 아들레이드를 떠나 멜번에 정착하였다.
한편, 1932년에 한 농부의 아내가 포드 자동차 회사에 보낸 편지 한 통이 루이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깁스랜드(Gippsland)에 거주하는 농부의 아내는 짐을 실을 수 있는 작업용 차량의 장점과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승용차의 장점을 결합한 차를 농부들을 위해 만들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편지를 써서 포드 자동차 회사에 보냈다.
그녀가 이러한 조언을 하게 된 이유는 그녀가 주일에는 차를 타고 교회에 가야 했고, 월요일에는 돼지를 싣고 시장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조언에 따라 루이스는 자동차 앞부분에 사람들이 편안히 탈 수 있는 객실을 만들었고, 자동차 뒷부분에는 짐을 쉽게 실을 수 있는 목재 트레이(tray,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를 만들었는데 이곳에 약 544kg의 물건들을 실을 수 있었다.
1933년에 루이스의 주도하에 첫 번째 모델이 만들어졌는데,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자동차를 유틸리티 자동차라고 불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짧게 유트(Ute)라고 했다. 한편, 루이스가 디자인 한 유트는 1935년 미국 디트로이트 자동차 전시회에서 선을 보였는데, 포드 자동차 회사의 회장인 헨리 포드(Henry Ford)는 유트를 ‘캥거루 추격 자동차’라고 불렀다.
미국에서는 유트가 처음에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호주에서는 유트가 생산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호주의 시골에서는 농부들이 유트를 몰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호주 농부들은 유트 뒤에 농작물을 싣거나 작업 장비들을 싣고 다녔다.
1960년대에는 루이스가 포드 자동차 회사의 캐나다 지사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 후에 질롱(Geelong)에 있는 포드 자동차 호주 지사로 돌아와 차체 생산 담당자로 일했다. 또한 그는 호주 자동차 협회의 질롱 지부 회장으로 일하면서 자동차 업계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한편, 루이스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전투기용 보조 연료 탱크 생산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1948년에 열린 대영제국 자동차 디자인 대회에 참석해 동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루이스는 1941년 9월 6일에 아들레이드의 프로스펙트 노스 감리교회 (Prospect North Methodist Church)에서 음악 교사인 넬리 알리스 (Nellie Alice)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루이스는 어려서부터 감리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열심히 했다. 그는 그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했다.
안타깝게도 루이스는 1987년에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호주의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루이스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비록 루이스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디자인 한 유트는 호주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정지수|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캄보디아 지사장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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