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 사이의 인연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8/28 [22:21]

‘우연’이란 아무런 인과 관계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이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측면에서 볼 때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고(Omni-scient) 전능하시고(Omni-potent) 무소부재하신(Omni-present) 분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차이점은 ‘우연과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과 필연 사이에는 ‘인연’이 있다. 인연(因緣)은 사건이 일어나는 직접적 원인인 ‘인’과 간접적 원인인 ‘연’이 어우러진 말이다.

 

인이란 단어는 필연을 닮았고, 연이란 단어는 우연을 닮았다. 어리석은 자는 인연을 우연으로 전락시키고, 지혜로운 자는 인연을 필연으로 승화시킨다.

 

필연은 섭리(providence)이다. 섭리란 창세기 22장 8절에 이삭에게 "내 아들아 번제할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다'(provide)"란 의미이다.

 

길르앗 라못

 

여호수아서의 땅 분배와 관련하여 실로에서 있었던 마지막 조치는 레위인들의 거주도시를 선정하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와는 달리 레위인들에게는 생활의 기반이 되는 토지가 분배되지 않았다. 그들은 땅을 분배 받은 다른 지파들이 바치는 십일조를 받아 생활하였다.

 

레위인에게 주어진 48개의 성읍 가운데 6곳이 도피성이다. 요단강 동쪽에 세 개(바산골란, 길르앗라못, 베셀) 요단강 서쪽에 세 개(게데스, 세겜, 헤브론)가 있다. 도피성의 목적은 원한 없이 부지중에 살해한 자를 그곳으로 도피시켜 생명을 보호하도록 하는 것이다. 길르앗 라못은 도피성이 있었던 중요한 곳이다.

 

길르앗 라못의 1차 전쟁 - 아합과 여호사밧 동맹

 

남유다왕 여호사밧은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를 아들 여호람의 아내로 삼게 하였다. 아합은 유다 여호사밧 왕과 동맹을 맺은 후 길르앗라못을 치자고 제안한다. 아합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한 여호사밧은 길르앗라못을 치러 올라가기 전에 아합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자고 한다.

 

아합은 자신에게 속한 선지자 사백 인을 불러 모아 물었다. 모두가 이길 것이라고 했다. 여호사밧은 그들의 말이 의심스러웠던지 아합에게 다른 선지자는 없느냐고 물었다. 이때 참 선지자 미가야가 등장한다. 아합은 죽을 것이고, 전쟁에서 질 것이라고 했다.

 

아합은 왕복을 벗고 변장까지 하였지만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맞아 전사하게 된다.(역하 18:33, 왕상 22:34) 우연이란 단어를 썼지만 출정전에 선지자 미가야는 아합이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우연이 아니라 섭리이다.

 

길르앗 라못의 2차 전쟁 - 요람과 아하시야 동맹

 

아달랴의 아들 유다왕 아하시야는 다윗의 길로 행치 않고 아합의 길을 좇았다. 외삼촌인 이스라엘 왕 요람과 매우 친밀하게 교제했다. 그는 요람과 군사적인 동맹을 맺어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왕 하사엘과 더불어 전투를 벌였다.

 

이것은 그의 조부 여호사밧의 실수를 재연하였다. 요람은 큰 상처를 입고 퇴각하고, 아하시야는 무사히 도망쳤다. 아하시야가 외삼촌 요람의 병문안을 갔다가 예후에 의하여 둘 다 죽는다.

 

북이스라엘은 오므리 왕조가 무너지고 예후 왕조가 세워지고, 남유다는 아합의 딸 아달랴가 손자들을 죽이고 여왕이 된다. 6년 후에 혁명을 일으켜 아달랴는 죽고 요시야가 7살에 왕위에 올랐다.

 

시공간의 한계를 가진 인간이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섭리를 믿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자신의 백성을 불꽃과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니 아니하시며, 시험을 당할 때 피할 길을 예비하여 주시는 분이다.〠

 

김환기|본지 영문편집위원, 구세군라이드교회

▲ 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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