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의 천사, 캐서린 햄린

정지수/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8/28 [23:01]
▲ 에티오피아의 성자로 알려진 캐서린 햄린 여사가 환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녀는 1959년부터 61년 동안 에디오피아에서 헌신했다. ©CHFF     


캐서린 햄린(Dr. Catherine Hamlin, 1924. 1.24-2020. 3.18) 여사는 에티오피아에서 여성 환자들을 위해 60년간 헌신한 호주 내과의사이다.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며 헌신적인 삶을 산 그녀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전을 주었다. 이번 호에서는 그녀의 헌신적인 삶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12살 때 품은 의료 선교의 꿈

 

캐서린 햄린 여사는 1924년 1월 24일에 시드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시드니에서 성장한 그녀는 1946년에 시드니 의대를 졸업하고 내과 의사가 되었다. 내과 의사로 환자들을 치료하던 캐서린 여사는 1950년에 산부인과 의사인 레지날드 햄린 (Reginald Hamlin)과 결혼해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행복한 삶을 자신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했다.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의료 선교를 감당하길 원하셨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서 에티오피아에서 고통당하며 살아가는 많은 여성 환자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갖고 계셨다. 그래서 두 사람이 결혼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기 시작했다.

 

1958년 어느 날, 캐서린 여사는 우연히 의학 잡지에 실린 광고를 보았다. 그것은 에티오피아 정부가 산부인과 의사를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이 광고를 보는 순간 캐서린 여사의 마음속에는 그녀가 12살 때 품은 의료 선교의 꿈이 다시 한 번 꿈틀거렸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 같은 느낌은 받았다. 에티오피아로 달려가 환자들을 치료하라고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명령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에게 3년 동안만 에티오피아로 가서 봉사활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녀의 남편은 며칠을 심사숙고한 후에 그녀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들은 1959년에 6살이 된 아들 리처드와 함께 에티오피아로 떠났다.

 

▲ 산부인과 의사인 레지날드 햄린 (Reginald Hamlin)과 1950년에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았던 캐서린. ©CHFF     

 

에티오피아의 병원을 방문한 그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들이 큰 충격에 빠진 것은 열악한 의료시설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큰 충격에 빠진 이유는 호주에서 본 적이 없는 ‘산과 누공’(Obstetric Fistula) 병에 걸린 환자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병에 걸린 여성들은 가족들과 사회에서 버림을 받았다. 에티오피아 병원도 치료법을 몰라 그들을 도와주지 못하고 그냥 방치했다.

 

▲ 에피오피아에서 신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고 생각했던 ‘산과 누공’ 환자들을 치료하고 보살핀 캐서린 햄린 여사. ©CHFF     

 

신의 저주를 받은 여성들?

 

‘산과 누공’(Obstetric Fistula)이라는 병은 산모가 출산할 때 의사나 조산원의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해 산모의 방광이나 질, 요도, 자궁, 직장 등이 손상되어 구멍이 나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온갖 오물들이 구멍을 통해 새어나와 몸에서 심한 악취가 나게 된다.

 

산모들이 이 병에 걸리면 남편과 가족들에게 버림받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버림을 받았다. 당시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이 병에 걸린 산모들을 신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고 생각해 자신들의 마을에서 쫓아내곤 했다.

 

이 병에 걸린 여성들이 병원을 찾아가도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에티오피아의 의사들이 이 병의 치료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이 병에 걸리는 산모들이 거의 없었다. 산모들이 산부인과나 조산원의 도움을 받아 출산하기 때문에 이 병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산부인과나 조산원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후진국에서는 많은 산모들이 이 병에 걸려 고통을 당했다.

 

▲ 입원실 회진을 돌며 환자들과 대화하는 캐서린 햄린 여사. ©CHFF  

 

이 병에 걸린 여성들 중에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런 비참한 현실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캐서린 여사와 그녀의 남편을 에티오피아로 부르신 것이다.

 

두 부부는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 위치한 왕립병원에서 의료 활동을 시작했다. 3년 동안 환자들을 돌보면서 그들은 ‘산과 누공’병에 대해 연구했다. 서양의 산부인과 전문 의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치료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고 치료법을 연구했다. 이 모든 사역을 감당하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았다.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고 3년이라는 시간도 너무도 빠르게 흘러갔다.

 

약속한 3년이 지난 후에 그들은 호주로 귀국하려고 했다. 하지만, 환자들이 그들을 붙잡으며 ‘우리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눈물로 애원했다. 두 부부는 그들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곳에 남기로 결정을 했다.

 

두 부부는 치료법을 발견해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산과 누공’이라는 병은 신의 저주가 아니라 가난과 열악한 의료 환경 그리고 영양부족과 무지가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설명했다.

 

▲ 햄린 조산사대학 졸업생들과 함께 한 캐서린 여사. 전액 장학금으로 운영되는 이 대학은 2007년에 설립되었다. ©CHFF    

 

▲ 젊은 시절 에피오피아 간호사들과 함께 한 캐서린 햄린 여사. ©CHFF   


그리고 그들에게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많은 환자들이 완치의 희망을 품었고, 그들의 희망은 현실이 되었다.

 

캐서린 여사가 사역하는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 중에는 마하부바 무하마드 (Mahabuba Muhammad)라는 나이 어린 여성이 있었다. 그녀가 13살 되었을 때, 그녀는 60살 먹은 늙은 남자에게 팔려갔다. 그리고 곧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녀는 혼자 숲 속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출산 과정에서 그녀는 ‘산과 누공’병에 걸렸다. 그녀는 남자 집에서 쫓겨났다. 마을 사람들도 그녀가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믿어 돌보지 않았다. 그녀는 캐서린 여사가 있는 병원에 가면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 왔다.

 

험난한 길을 헤치고 병원을 찾은 그녀를 캐서린 여사는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었다. 그녀는 완치가 되었고 건강을 회복했다. 그 후에 그녀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간호사가 되어 자신처럼 ‘산과 누공’병에 걸린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나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 캐서린 햄린 여사가 설립한 ‘캐서린 햄린 누관 재단’ 포스터.<참조 : hamlin.org.au>     

 

캐서린 여사에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93년 에티오피아에서 함께 사역하던 사랑하는 남편이 사망했다. 그녀는 큰 슬픔에 빠졌다. 모든 사역을 접고 시드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캐서린 여사는 그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두고 무책임하게 떠날 수 없었다. 그녀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의료사역에 전념했다.

 

그녀의 헌신적인 의료사역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었고, 후원금을 보내 주기도 했다.

 

▲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여 인사를 나누는 캐서린 햄린 여사(왼쪽)  ©CHFF  

 

▲ 캐서린 햄린은 캔버라 주정부 청사에서 엘리자베스 여왕과 쿠엔틴 브라이스 호주 총독과 함께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CHFF     

 

2004년에는 캐서린 여사가 미국의 유명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다. 그녀의 의료 선교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후원금도 많이 모금되었다.

 

2005년에는 오프라 윈프리쇼 담당자들이 에티오피아를 방문해 에티오피아 현지에서 캐서린 여사의 일상을 촬영해 방송에 내보냈다. 방송이 나간 후에 약 3백만 달러가 모금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캐서린 여사를 에티오피아의 성자 또는 에티오피아의 천사로 불렀다. 심지어 그녀의 삶을 소재로 한 ‘A Walk to Beautiful’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칭송했지만, 그녀는 이러한 칭송이 자신에게 너무 과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종종 “나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겸손히 말했다. 또한 그녀는 그녀의 사역을 후원해 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 사역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름답고 충성스러운 삶을 산 그녀는 2020년 3월 18일에 사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녀는 약 60년 동안 에티오피아에서 약 6만 명의 ‘산과 누공’ 환자들을 치료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삶의 모범을 보였다. 그녀가 뿌린 사랑의 씨앗들이 자라나 에티오피아에서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 세상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출산과 관련된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 캐서린 의사와 남편 레그 햄린의 동상. 햄린의 에티오피아 도착 6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공개되었으며, 캐서린의 손자 두 명과 증손자 두 명 등 가족들이 참석했다. ©CHFF    

 

UN 보고서에 의하면 한 해 동안 약 30만 명 정도의 산모들이 출산과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있다. 이는 하루에 약 830명이 사망하는 것이고, 100초에 한 명씩 사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망자들이 가난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부유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제2, 제3의 캐서린 여사를 찾고 계신다.〠

 

정지수|본지 영문편집위원, 캄보디아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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