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송영민/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9/26 [11:27]
 ©micheile.com    


호주 온지 3년쯤, 공휴일. 예쁜 배들이 있는 바닷가 선착장에서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이 기억난다. 당시 유학생으로 호주에 살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새벽이면 일어나서 일을 하러 나가고 낮에는 학교에 가고 주말에는 사역하였다.

 

아내는 아이를 키우며 조금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 하숙을 하였다. 이제는 빛 바랜 사진이지만 그 속에는 힘든 이민자의 땅에서 가족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행복했던 순간이 담겨져 있다.

 

세월이 금방 지나갔다. 호주에 정착도 되고, 교회도 성장하고 있고 삶도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위기가 찾아왔다. 아내에게 이른 갱년기 증상이 시작되면서였다. 여자의 갱년기가 무섭다고 했던가? 아내의 갱년기 증상은 우울증과 불면증을 동반했고 남편에 대한 원망은 갈등으로 이어졌다.

 

목회자의 아내의 역할이란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희생만이 요구되는 자리였다. 그런 아내에게 브랜드 화장품 하나 사주지 못했고 옷 한 벌 제대로 사주지 못했다. 자녀들과 함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 한 번 제대로 못했고 가족여행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 버린 것이었다. 거기다 시부모님까지 모시는 상황까지 ….

 

목회자로 주신 사명을 위해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가정을 가꾸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찾아왔다. 목회를 하는 목사의 가정이 본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고 기댈 곳도 숨을 곳도 없는 외로운 이민자의 땅에서 희생만 요구한 것 같아 아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회복을 위한 피난처

 

회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목회자 부부가 함께 마음을 열고 나눌 수 있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내는 거침없이 자신의 아픔을 눈물을 흘리며 쏟아 놓았다. 우리 부부의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마구 쏟아 내기 시작할 때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아내의 회복을 위한 피난처였다. 그동안 목회자의 아내로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 놓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공감해 주고 함께 울어주었다.

 

회복의 절정은 부부가 서로를 축복하는 시간을 가지면서였다. 아픔과 갈등은 있었지만 가족이기에 서로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있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예배당에서 서로를 위해 축복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마음은 여전히 축복하고 싶지 않는 복잡한 감정들이 남아 있었지만 의지적으로 축복하며 기도했다. 서로를 위한 축복의 기도로 우리는 살아났다.

 

목회자들을 위해 간증의 기회가 있어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사모님들이 찾아와서 많이 위로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알았다. 이 시대에 가족이 아픈 가정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그건 목회자들의 가정이라고 예외가 아니라는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

 

왜 그렇게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플까? 그것은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아프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가족이기 때문이다.

 

호세아를 읽다 보면 한 가정의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포기할 수 없는 아픈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은 호세아가 고멜이라는 한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게 하셨다.

 

그런데 고멜은 아이도 둘을 낳고 살다가 가출해 버렸다. 호세아는 고멜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지만 돌이키지 않는다. 호세아는 하나님께 이제는 포기하고 싶다고 기도한다, 그때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하나님의 대답은 포기하지 말고 “다시 사랑하라” 이다.

 

“너는 다시 가서,…. 그 여인을 사랑하여라”(호세아 3:3, 새번역)

 

우리 부부의 회복은 아픈 가정을 향한 사명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제까지도 사역적으로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픈 가정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의 아픔을 보게 된 것이다.

 

이미 가정의 해체를 경험한 사람들을 나무라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나님이 그분들의 고통을 모르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이 “얼마나 아프니 ….얼마나 고통스럽니 …” 하실 것 같다.

 

가족의 아픔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그런 결정을 내렸겠는가? 얼마나 많은 아픔과 눈물로 밤을 지새웠을까? 아무도 이해 할 수 없는,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아픔 가운데 눈물로 보낸 수많은 시간들 “내가 기억해 줄게”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우리 인간의 연약한 죄의 결과인 줄 알아야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벼랑 끝에서 갈등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래도 다시 사랑하라”고 말하며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피난처이다. 교회는 이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주일이면 예쁘게 차려 입고 예배드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목회자의 상담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아픔을 들어 주며 다시 사랑하자고 울어 줄 수 있는 공동체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리 부부의 아픈 이야기는 다른 가정을 치료하는 약재료들이 되었다. 오랜 갈등으로 힘들어 하던 자매가 한마디를 한다. “ 생각해 보니 불쌍합니다” 서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회복의 시작이다. 이제는 병든 남편을 긍휼히 여기며 살아가는 여인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포기 할 수 없는 사랑을 본다.

 

한바탕 다투고 출근한 어느 날 아내가 어느 목사님의 인터뷰 영상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목사님 부부가 평생을 의좋게 살아오신 비결이 뭐예요?”

 

“서로 긍휼히 여기며 산 것이죠.”

 

“부부는 감정도 식어버리고, 서로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지고, 내가 뭐하러 이렇게까지 사나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서로 불쌍히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 밖에서 돈 버느라 얼마나 힘들겠나…?”

 

“그래 없는 살림에 살림하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런데 여기까지면 안되고 의지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감정적 느낌이 다 살아져도 “긍휼히 여기며 의지적인 사랑으로 사는 것”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다았다.

 

아내에게 ‘꽃보다 당신이야’ 이모티콘을 보냈다. 아내는 ‘사랑해요’라고 쓰여진 커다란 하트 모양의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송영민|시드니수정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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