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는 김정호, 섬에는 이재언

글/김환기 사진/권순형·이재언 | 입력 : 2022/10/24 [16:05]
▲ 섬 탐험 전문가 이재언 목사. 그는 446개 한국의 유인도 섬을 직접 배를 타고 선장 겸 항해사가 되어 30년 이상 다니면서 한국의 섬 시리즈 13권을 펴냈다.     © 크리스찬리뷰


육지에 ‘김정호’가 있다면, 섬에는 ‘이재언’이 있다. 조선 후기, 나라의 산하를 꼼꼼하고 효과적으로 담은 지도 하나가 탄생했다.

 

지도를 만든 이는 고산자 김정호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지도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만들었다. 2017년, ‘한국의 섬’ 시리즈로 13권을 완간한 사람이 있다. 이섬 이재언 목사이다. 이 목사는 1991년부터 전국의 유인도서 446곳을 직접 배를 타고 3번 이상 순회하면서 섬에 대한 탐험과 연구를 했다.

 

아무도 가보지 않았고 경험해 보지 못한 것 남들이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전국 유인도를 답사한 것은 불가능에 도전한 인간 승리이다. 그는 25년 동안 섬을 탐사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숱한 고난을 이겨냈다.

 

절대 긍정의 이재언

 

이 목사는 노화도 출신이다. 노화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읍에 속한 섬이다. 섬의 동쪽으로는 소안도가 위치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보길도와 접하고 있다. 보길도와 노화도는 보길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가 이곳에 유배되어 남은 생을 보낸 곳이다. 노화도는 전복 생산량에서 으뜸가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전복의 70%가 노화도에서 생산되니 노화도는 ‘전복의 섬’이다.

 

▲ 이재언 목사는 섬 전경 촬영을 위해 드론 촬영 기술을 익히는 과정에서 드론 6대를 물 속에 떨어트리는 등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재언     

 

이 목사는 초등학생 때 아버지를 따라 우연히 육지인 목포에 왔다가 도시의 매력에 푹 빠졌다.

 

“전기가 들어오고 수많은 자동차와 기차가 달리는 모습, 맛있는 음식을 파는 가게 등 모두 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는 육지로 갈 것을 결심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였다. 구두닦이, 중국집 배달, 우유배달, 신문배달 등을 하면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밑바닥 생활을 하던 그에게 한줄기 빛이 찾아왔다. 예수 그리스도였다. 다니던 학교 친구의 권유로 조용기 목사께서 담임하던 서대문순복음교회를 다녔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주께서 도와 주실 것이다”란 절대 긍정의 신앙이 체질화되었다.

 

해결사 이재언

 

▲ 20여년 전 헤어졌던 동생을 찾기 위해 골드코스트로 무작정갔던 이재연 목사. 동생 이름과 한국이라는 영문 외에는 자필 한글로 쓴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내용을 적어 택시 기사에게 보여 주었는데 극적으로 동생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이재언     

 

이 목사의 별명은 해결사이다. 그는 어떤 문제이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사전에는 문제란 단어 자체가 없다.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란 말을 들어 보았는가? ‘호주에서 영어를 못하는 한국사람이 동생 찾기’란 말은 어떤가?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보다 아마 더 어렵지 않겠는가?

 

이 목사는 20년 전 헤어졌던 동생이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택시 운전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동생을 찾아 골드코스트로 떠났다. 가족이 극구 말렸지만 그를 이길 수는 없었다. 이 목사는 골드코스트에 도착하여 당일 동생을 바로 찾았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이 목사는 자신이 예수를 믿게 된 사건을 BC와 AD의 사건으로 비유한다.

 

▲ 골드코스트에서 만난 동생(오른쪽)과 이재언 목사. ©이재언     

 

▲ 이재언 목사가 사람(동생)을 찾는다고 자필로 쓴 전단지.     © 크리스찬리뷰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BC와 AD가 구분된 것처럼, 제 삶의 터닝 포인트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옛 사람이었으나, 믿은 후에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구두닦이 할 때 저와 비슷한 처지의 노화도 출신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죽은 사람도 있고 감옥에 간 사람도 있고 병든 사람도 있습니다. 그때 저는 예수를 믿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목사가 되고, 책도 13권을 출판하고, 지금은 광운대학교 해양섬정보 연구소 공동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통영 연화도 전경.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연화도를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봉오리 진 연꽃을 떠올리게 한다. 연화도는 유독 불교와 인연이 깊은 섬이다. ©이재언     

 

▲ 한국의 섬 홍보물  ©이재언 


섬 탐험 전문가 이재언

 

이 목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섬 탐험 전문가이다. 섬이 싫어서 섬을 떠난 그가 다시 섬을 찾게 된 동기는 칼빈신학교의 섬 선교 활동에 참여하면서부터이다. 이듬해부터 섬에 매력을 느껴 본격적으로 선교와 섬 탐사 활동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지금까지 446개의 모든 섬을 직접 배를 타고 선장 겸 항해사가 되어 수차례 답사했다.

 

그 많은 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섬의 기본 현황과 문화, 역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했다.

 

최초의 섬 탐사는 1991년 겨울부터 조도 지방을 시작으로 등대호를 타고 혼자서 전국의 섬을 순회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무모한 도전이라며, 가족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이 일은 반드시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여 혼자서 배를 타고 다녔다.

 

▲ 한국의 섬 책 홍보를 위한 전단지(왼쪽). 통영 소매물도(위 왼족)와 충남 보령시 외연도. 한국의 섬 전 13권의 개정판을 출간한 이재언 목사(아래 왼쪽). 호주 방문 중 칠순을 맞은 이재언 목사가 아들 집에서 축하연을 가졌다. ©이재언     

 

그 와중에 목포 근처 무안 복길항에서 배가 침몰되기도 하고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배 사고로 벌금 때문에 교도소를 가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섬 탐사 전문가에 가까워지던 무렵인 2009년 지인의 소개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연구원이 됐다. 도서문화연구원 측 지원을 받아 ‘한국의 섬’ 시리즈 출간을 준비했다. 58세의 나이에 새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이 목사의 ‘한국의 섬’ 시리즈는 한국의 446개의 유인도 섬을 3차에 걸쳐 발표하였다. 먼저 2015년 6월 10일 신안군의 74개 섬을 1·2권으로, 진도군 48개 섬을 3권으로, 영광군과 무안군, 목포시와 해남군의 29개 섬을 묶어 4권으로, 고흥군과 장흥군, 강진군과 보성군의 28개 섬을 5권으로 묶어 1차로 출간하였다.

 

2016년 7월 27에는 경남과 경북의 38개 섬을 6권으로, 통영시의 42개 섬을 7권으로, 그리고 충남의 32개 섬을 8권으로 묶어 2차로 출간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17년 5월 29일에 전북의 31개 섬을 9권으로, 인천, 경기의 43개 섬을 10권으로, 여수시의 48개 섬을 11권으로, 완도군의 57개 섬을 12권으로, 제주도의 13개 섬을 13권으로 묶어 출판하며 ‘한국의 섬’ 시리즈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꿈을 꾸는 이재언

 

이 목사는 ‘북한의 섬’ 책 2권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북한의 섬을 직접 방문할 수는 없었지만 ‘한국의 섬’ 13권을 집필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와 북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책자를 통하여 정보를 입수하여 마무리할 수 있었다.

 

“북한은 1천45개의 섬 중에 70개 정도 유인도서가 있습니다. 이 일은 북한을 직접 방문할 수 없었기에 아주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난관을 넘어 ‘북한의 섬’ 책이 완성되고 시중에 나오게 되어 문헌적, 지리적, 학문적으로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목사는 올해 고희다. 그에게는 아직도 이루어야 할 꿈들이 있다. ‘우리나라 섬 구석구석’이란 앱을 만들어 IT에 첨단 기술을 접목한 섬 문화 콘텐츠를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싶다.

 

가진 것이 없는 그가 소망하는 건 전 국민을 상대로 모금을 통해 배를 장만해 섬 마니아들과 다시 한 번 전국 섬을 순회하는 것이다.

 

이 목사는 자서전도 집필할 예정이다. 자신과 같은 ‘흑수저’도 예수를 믿으면 이렇게 변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섬사람을 가슴에 품고 시작한 사역이 30년이 지나서 이렇게 큰 열매를 맺게 될 줄은 그 자신조차도 몰랐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니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돌려드리고자 한다.〠

 

김환기|본지 영문편집인

권순형|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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