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문을 여는 법

강승찬/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2/27 [14:18]

문명의 발달로 인해 더 풍요롭고 아름다워진 세상은 아직도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 지진과 홍수 같은 자연재해, 전쟁의 위험, 그리고 고금리 시대를 맞이하여 물가 상승과 렌트비 상승으로 인해 사람들은 이미 미래에 대해 더 불안해 하며 살고 있다. 3포 세대, 5포 세대, 흑수저, 헬조선 등 절망의 소리로 물들어버린 시대에 우리 모두 어떻게 살아야 희망의 문을 열 수 있을까?

 

하나님은 예언자 호세아(주전 8세기 북이스라엘에서 활동)를 통해 하나님은 절망에서 희망의 문을 여는 비밀을 알려 주신다. 창녀인 고멜과 결혼한 호세아 예언자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자신의 삶으로 증언했다.

 

첫 아들을 낳고 ‘이스르엘’이라고 이름을 짓는다. “하나님이 씨를 뿌리신다”는 뜻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당연한 이름이지만, 당시 문화에서는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스르 바알’ 즉, ‘바알이 씨를 뿌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이스르엘’이 아니라 ‘이스르 바알’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물질주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자기에게 돈이 되면 온갖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지만 돈이 안되면 안면 몰수하고 돌아서는 것이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요즘에 사람들은 ‘이스르 돈’을 고백한다. ‘돈이 씨를 뿌린다’ 즉, 돈이 모든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세아는 ‘하나님이 씨를 뿌린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이 모든 물질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맡은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호세아는 둘째 딸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부른다. ‘긍휼이 없음’이란 뜻이다. 긍휼은 ‘자궁’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레헴’에서 나왔는데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모성애적 사랑’을 가리킨다. 그래서 호세아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사라졌다고 외친다.

 

호세아는 셋째 아들을 낳고 ‘로암미’라고 이름 짓는다. ‘내 백성이 아님’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과 언약 관계였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내 백성이 아님’을 선포한 것은 그 언약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었다.

 

왜 하나님이 심판을 선언했을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선택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보다 바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돈에 눈이 어두워져서 더 잘 살게 해 준다는 바알 신을 하나님 대신 남편으로 섬겼기 때문이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지만, 돈 때문에 진짜 중요한 가치는 내팽개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돈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고, 돈 때문에 부모와 원수가 되고, 돈 때문에 형제들과 동업자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를 우리는 수 없이 볼 수 있다.

 

결국, 호세아가 관찰했던 절망의 뿌리는 ‘물질주의’였다. 물질적 풍요는 우리에게 많은 이익과 편리함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결국은 우리의 영혼과 몸을 망가뜨린다. 이런 자본주의적 삶에는 희망이 없다. 진정한 생명과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희망의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철저한 ‘바알 제거’에 있다. ‘물질 중심의 신앙’을 버리는데 있다. 물질 대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선택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볼 때 희망이 있다(히12:2).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도록 인도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돈)이 주는 편리함보다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뜻밖의 축복을 주실 것이다. 일용할 양식으로 날마다 부족함 없이 채워 주실 것이다.〠

 

강승찬|시드니새생명교회 담임목사

▲ 강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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