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교회를 향한 기억 (하)

조향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2/27 [16:31]

▲ 엄청난 규모의사데교회. 아데미 신전 기둥들이 아직도 기세등등하게 서 있다.©AC     

 

잠든 영혼 잠든 교회 (계 3:1-6)

 

이른 아침, 깔끔하리 만큼 작고 정돈된 터만 남겨져 있는 사데교회를 방문했다. 엄청남 규모의 아데미 신전 기둥들이 여전히 기세등등이 서 있고 근처에는 매운 큰 유대인 회당과 체육관 터도 발견되어 복원 중이란다.

 

현재 인구 10만이 살고 있는 사데지역은, BC 6세기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당시 금가루가 흘렀다는 시내와 깎아 지른 절벽 위의 요새를 이 터의 맞은편에 위태하게 품고 있었다.

 

사면이 절벽인 요새는 아크로폴리스(높은 지역의 도시)에 위치해 있으니 누구도 감히 점령할 수 없다고 믿고 있다가 두 번이나 점령 당했단다.

 

어쩌면 그 드높은 요새 안에서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깨닫지 못하고 흐르는 금으로 동전을 만들고 부를 누리면서도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와 같이 정작은 온전한 것을 찾을 것이 없는 책망의 말씀이 콘크리트와 같은 단단한 권력과 명예, 돈과 아름다움을 좇는 오늘 우리 시대의 자화상 같다. 무너진 도시와 교회의 터 위에서 온전한 것 없는 나의 모습을 본다.

 

도심에 버려진 교회 (계 2:18-29)

 

두아디라교회는 자주 장사 루디아의 고향이다. 유럽 땅에 도착한 바울이 빌리보에 회당이 없어 강가에서 예배드리고자 할 때 만난 한 여인 루디아가 바로 두아디라 출신이다.

 

루디아의 직업이 자주 옷감 장사였듯이 두아디라 지역은 염직이 발전하여 부를 축적하였고, 이 염직 작업 전후에 우상을 향한 제사 의식이 있어 이것이 기독교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다고 한다.

 

▲ 두아디라교회는 두아디라 출신의 루디아가 옷감 장사를 했던 지역이다.©AC     

 

이세벨과 같은 자가 이를 합리화해서 신앙과 생활을 분리시키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음행’이라고 하셨을까. 생업과 직결된 우상숭배를 외면하고 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우리도 세상과 타협할 온갖 이유를 찾아 우리의 신앙을 변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끝까지 굳게 주의 일을 지키는 것,” 도시 한 켠에 덩그러니 버려진 교회의 터가 그 해답을 담고 있는 듯하다.

 

▲ 터키에 있는 요한 계시록의 일곱교회 중 마지막 유적지인 버가모 원형경기장 ©AC     

 

산 위의 ‘위’ 사단의 ‘위’ (계 2:12-17)

 

이제 터키에 있는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마지막 유적지 버가모로 향한다. 버가모는 로마제국 당시의 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며 행정수도였다고 한다. 유적지 입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390m 높이의 가파른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아크로폴리스다.

 

▲ 터키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차나칼레의 야경 ©AC     

 

올라가는 길은 좁고 골목골목 이어져 70년대의 한국의 시골을 연상시켰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동안 바람이 살짝 불어 묘미를 더한다. 물론 바람이 심한 날엔 운행을 못 한다지만, 산 정상에 도시가 건설되어 있고, 지금껏 보지 못한 가파르고 깎아지른 듯 높은 원형극장은 웅장함보다 위험함을 느낄 정도다.

 

밑에서 한 사람의 박수가 바로 들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위로 올라 가니 제우스 신전과 트라안 황제 신전들을 볼 수 있었다. 높은 산 위에 더 높이 올려진 하얀 대리석의 신전 기둥은 어두운 하늘에 먹구름을 배경으로 깔고 화려하고 웅장함이 도도해 보이기까지 하다.

 

“사단의 위”가 있다는 말씀은 이 우뚝 솟은 언덕과 거기에 세워진 신전들 그 자체를 일컬음이 아닐까. 그리고 높은 지대 위에 올려지는 크고 높은 기둥들, 그 옛날 귀족들의 특별의식과 교만 그리고 그 밑에 수없이 쓰러져 가야 했던 노예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터키의 마지막 밤이 깊어 간다. 번화한 항구도시 차나칼레는 관광객들과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데리고 온 현지인들의 휴일 나들이로 붐비고 있다. 터키와 한국은 형제 나라라는 가이드의 계속된 이야기가 세뇌되어 작동되는 것인지, 이 도시의 번잡함 마저 정감이 있고 삶의 냄새가 나고 끈끈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7일간 익숙해진 것인지 내일 떠난다는 아쉬움이 새로운 감정을 엮어내는 것인지 이렇게 터키의 마지막 밤은 깊어간다.

 

▲ 영화 ‘트로이’에 사용되었던 목마. 트로이 목마는 트로이아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장치이다. 나무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이 그 안에 숨을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일부 컴퓨터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가리키기도 한다.(차나칼레) ©AC     

 

가는 곳마다 역사요 밟는 곳마다 유적이요 듣는 것마다 새롭지만, 오랜 세월 동안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 없는 터 위에서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솔로몬의 외침이 새삼 가슴에 남는다.

 

대대 손손 남은 자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이며 어떤 역사로 남겨질 것인가 묵상하게 된다.

 

내일, 드디어 유럽 땅을 밟는다는 기대와 설렘이 다가온다. 한편으론 계획하지 않은 유럽 땅에서 “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는 환상을 보고 걸음을 옮긴 사도 바울은 이 드로아의 밤바다에 서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지 궁금해진다.〠 <사진= 알파크루시스대학교>

 

조향희|크로스네스트 일본인 크리스찬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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